23년 3월 독서정산


① 칼 포퍼 저, 허영은 역,『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포레스트북스(2023), 완독


한국에서 번역된 칼 포퍼의 책 중에서 유명한 것으로 "추측과 논박"과 "열린사회와 그 적들"이 있다. 전자는 그의 과학 철학을, 후자는 그의 정치 및 역사 철학을 살피기에 좋은 책이다. 그래도 분량도 좀 되는 데다가 마냥 쉽지는 않아서 몇 가지 입문서를 거친 후 붙잡아보는 게 좋은데, 그 입문서로 추천하고 싶은 책이 이 책 "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다. 에세이 및 강연 모음집이어서 포퍼의 사상 개략을 일괄하기에 이만한 책도 없다.

구획 문제에 대한 그의 반증주의 기준, 진화론적 지식론 등 거창한 이야기는 차치하고 그의 낙관적 태도와 문제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간략하게 언급해 보고 싶다. 개인적으로 두 태도가 제일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우선 첫 번째, 문제를 대하는 그의 태도. "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삶에서의 문제를 디폴트 값으로 전제한다. 그에게 중요한 건 문제를 대하는 태도다. 문제를 직시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잘못으로부터 배울 수 있어야 과학이든 사회든 더 나아질 수 있다. 문제를 직시하지 않으면 변화는 시작되지도 않는다. 계속 반복되는 문제를, 새롭게 등장하는 문제를 보면 한숨을 짓는 나인데, 그는 졸수(卒壽)의 나이에 행한 교토상 수상 강연에서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문제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니, 그는 이렇게 까지 말한다. '평생을 바칠 만한 멋진 문제를 하나 찾으라고.' 멋진 말이었다. 내가 평생을 바쳐 고민해보고 싶은 문제가 뭘까란 고민을 하게 됐다.

두 번째, 낙관적 태도. 전부터 한국 사회에 만연해지고 있는 냉소주의, 비관주의적 시선에 뭔가 불편한 감정을 느끼곤 했는데, 내가 보기엔 어쨌든 현재는 정말 살기 좋은 시대가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완벽이라는 형용사는 인간과 어울리지 않으니 그렇다 치고, 어쨌든 계속해서 좋아졌고 좋은 건 사실 아닌가. 스티븐 핑거가 2018년 TED에서 "Is the world getting better or worse?"라는 강연을 했을 때 무척이나 공감했던 이유였다. '완벽하지만 나아졌고, 나아지고 있고, 우리가 노력하면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그는 아래의 책 - Enlightment Now - 에서 이 주장을 자세히 개진했다)

포퍼가 말하는 바도 이와 유사하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우리는 과거에서 배울 수 있고, 함께 노력하면 세상이 더 나아질 수 있다. 그리고 그런 희망을 품을 수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를 디폴트로 여기면서도 냉소주의, 비관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 문제를 사랑하고 낙관적 태도를 유지했다는 게 대단하다.
그의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다만, 지금까지는 분명 나아졌고 노력하면 더 나아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감사해야 할 것들도 많다. 앞선 세대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많은 것들 말이다. 평화나 경제적 풍요로움같은 것들. 물론 우리는 완벽할 수 없기에 우리가 마주한 사회와 세상엔 아직도 많은 문제가 산재해있다. 비관주의나 냉소주의에 빠질 바에 주어진 것에 감사해 하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충만한 삶을 사는 데도,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사는 데도 도움이 되는 태도 아닐까.

한 달을 돌아보며

붙잡고 조금 뒤적인 책은 여럿 있었으나 완독한 것은 포퍼의 책 한 권. 진짜 바쁜 한 달이었기에 이 정도로도 만족한다. 하릴없이 쳐다보느라 많은 시간을 쏟은 유튜브 또는 shorts 영상을 삶에서 없애고 그 자리를 독서나 영어공부, 명상으로 대체만 할 수 있다면 더 좋았겠다. 관심과 욕망이 분산 되어 흩어진 에너지를 한 곳으로 모으면 몇 권의 책을 더 읽을 수 있지 않을까, 란 생각도 했다. 그런데 그 집중을 위한 선택이 참 어렵다.

4월에 읽고 싶은 책

읽고 싶은 책이 참 많다. 그런데 시간은 얼마 없고 욕심은 많아서 오히려 책을 잘 붙잡지 못한다. 그래서 '문제'에 집중해보기로 했다. 내가 지금 해결하고 싶은 문제는 뭐가 있을까?

 - Erich From의 The art of loving : 소유 중.
 - 칼 뉴포트의 디지털 미니멀리즘 : 전자책으로 읽다가 말았는데 도서관에서 빌리기.

나머지는? 심리학 책을 읽을까, 철학 책을 읽을까, 뇌 과학 책을 읽을까, 소설 책을 읽을까. 심리학 책은 새로운 것도 좋고 기존의 읽은 것을 다시 읽는 것도 좋다. 브런치에 전에 깊이 읽은 심리학 책들을 소개하는 글을 쓰고 싶었으니. 새로운 책은 어떤 분야가 좋을까. 불안과 명상 정도면 좋겠다. 철학 책은? 지적 쾌락 용도면 구미가 당기는 어떤 책도 좋지만 문제의식과 연관된 거라면 내재성을 키워드로 삼는 게 좋겠다. Mof도 좋고. 뇌 과학은? 집에 쌓인 거만 봐도 벅차다. 소설 책은? 쿤데라, 로스, 소세키 전집을 보고 싶은데, 아니면 책 읽어주는 남자. 이렇게 쭉 적어보니 너무 많다. 그냥 땡기는 거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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