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독서정산
4월에도 이것저것 많이 붙잡은 거 같은데 근래에 서평이나 독서 단상을 잘 안 남겨서 그런지 머릿속에 든 게 없는 거 같다. ( 그래도 아쉽게 흘려보낸 시간이 많았던 1~3월보다는 알차게 보냈다. 이 느낌, 이 관성 천천히 유지하며 읽고 쓰는 일을 조금 더 습관화하자.
① 로버트 프리츠 저, 박은영 역,『최소 저항의 법칙』, 라이팅하우스, 1판(2022), 완독
이번 달에 읽은 책 중에 하나만 꼽자면 이 책을 꼽고 싶다. 이 책을 읽고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을 살게 될지는 장담 못하겠지만, 내 삶에 왜 그렇게 혼란이 가득했는지, 왜 내 삶은 내가 진정 원하는 삶과 그토록 괴리가 있었던 건지에 대해서는 좀 더 이해하게 됐다. 러프한 이유는 간단했다. 원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문제를 해결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프리츠가 이야기 하는 '원하는 삶을 사는 방법'에는 특별한 게 있진 않다. 그가 이야기하는 원리는 간단하다. 1) 원하는 삶을 계속해서 구체화하고 2) 그 구체화한 원하는 삶을 정말로 살기 위해 내가 처한 현실에 대해 객관화하고 3) 원하는 삶과 나의 현실 사이의 격차를 가능한 효율적으로, 잘 좁히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 보면 간단해 보일 이 원리와는 동떨어진 삶을, 나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도 살고 있다. 원하는 삶보다 '문제'에 집중한 삶을 사는 탓이다.
개인적인 예를 들자면, 나는 사람을 만날 때 '내가 정말 친해지고 싶은 사람은 누구인가?'라고 묻기 보다 '저 사람이 나를 미워하면 어떻게 하지?'라고 묻는 게 더 익숙하다. 프리츠의 관점에서 보면, 나는 창조지향적인 질문(원하는 삶을 살기 위한 질문)보다 문제해결을 위한 질문에 익숙한 것이다. 내가 인간관계에서 쉽게 피로함을 느끼고 공허함을 느꼈던 이유는, 내가 원하는 삶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문제(누군가와 사이가 틀어짐 등)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문제에만 집중한 삶을 살다 보니,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에 대한 흐릿한 느낌만 존재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런 느낌에 대해서조차 확신하지 못해 어리바리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관성에서 벗어나는 게 쉽진 않겠지만 꾸준히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② 윌리엄 포크너 저, 하창수 역,『에밀리에게 바치는 한 송이 장미 외 11편』, 현대문학, 1판(2022), 완독
번역이 좀 아쉽긴 했지만(ㅠㅠ, 포크너 글 자체가 좀 난해하고 만연체라 번역이 힘드셨나보다...) 재밌게 읽었다. 이렇게 유명한 포크너를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 나도 참 ㅎ..
좋았던 작품들을 꼽자면, 아 좋았던 작품이 더 많으니 차라리 그나마 덜 와 닿았던 작품을 꼽자면, '그날의 저녁 놀', '여왕이 있었네', '마르티노 박사' 정도? '마르티노 박사'는 정말, 내용도 그렇지만, 번역이 너무 안 읽혀서....
'에밀리에게 바치는 한 송이 장미'는 오토모 카츠히로 감독의 옴니버스 영화인 '그녀의 추억'을 떠올리게 했고(과거,변화,상처,생성,변하지않음,집착과 같은 키워드는 내 주요 관심사다) '헛간 타오르다'는 영화 '버닝'을, '메마른 9월'은 수전 손택의 '나이 드는 것에 대한 이중적 기준'이라는 글을, '반전'은 '오만과 편견'을(로멘틱한 관점에서가 아닌), '브로치'는 필립로스의 '포트노이의 불평'을 떠올리게 했다. 이렇게 특정 작품이 떠올랐다는 건 해당 작품이 지닌 어떤 문제의식, 주제가 내 관심사의 연장에 있다는 뜻이겠다. '곰'은 뭐랄까, 이상적인 삶의 태도의 한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이었고, '붉은 나뭇잎'이나 '신전의 지붕널'은 조금 더 곱씹어봐야 알 듯한 묘한 느낌을 많이 주는 작품이었다.
③ 신형철 저, 『몰락의 에티카』,문학동네, 1판(2008), ~407쪽
사 놓고 책장에 고이 모셔두던 걸 독서 모임 덕에 읽고 있는 중. 좋은 글도 있고 아닌 글도 있고, 지금까진 나쁘진 않지만 주로 딱 꽂히던 그의 글을 골라 읽던 버릇 탓에 아쉬운 점이 꽤 많다. 정기적으로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이 겪을 수밖에 없는 문제겠지만, 정말 우러나와서, 진실하게 쓴 글과 추상적인 개념 뒤로 숨어 뭔가 말하는 척 하는 글은 어쩔 수 없이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시와 시 평론은, 안 그래도 무지한 소설보다 더 무지한 영역인 탓에 몰입하기가 쉽지 않았다. 읽어보지 않은 작품이 대부분이고 서정시라는 장르에서 과감하게 탈주한, 신형철이 '뉴웨이브'라고 명명한 시들이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 마음에 와 닿는 게 없었다는 점 또한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였다.
그럼에도 반복해서 곱씹고 싶은 글, 그리고 문장을 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만족 할만한 독서를 하는 중.
④ 가타오카 이치타케 저, 임창석 역 『라캉은 정신분석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학사, 전자책(2019), 절반 정도
신형철의 평론을 읽다 보니 라캉 이야기가 무지 많이 나오는 바람에, 간편하게 읽을 라캉 입문서를 찾다가 고른 책. 라캉은 6~7년 전 프랑스 철학 수업을 들을 때 잠깐 공부한 적이 있었지만 이 사람이 당최 뭘 하고 싶은 건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 정도로 잘 몰랐고, 배경지식도 없던 나였으나 이 책을 읽으면서 라캉이 무슨 작업을,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했었는지 개략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연구서, 그리고 원서로 나아가는 데 좋은 징검다리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책인듯. 굳이 이런 개념어로 이런 작업을 하는 게 적절한 건지, 괜찮은 건지는 의문이 많지만...
"고통은 자신만의 '사는 방식'을 발견하지 못하고, 진정으로 원하지 않는 '사는 방식'을 선택했다는 부담에서 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증상을 제거하여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사는 방식'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이 점이 바로 정신분석의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⑤ 최은영 저, 『밝은 밤』, 문학동네, 1판(2021), ~186
요즘 트렌드를 쫓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 중 하나. 베스트셀러 소설 읽기. 시간 날 때 30분 정도씩 짬짬이 읽었다. 쉽고, 가독성도 좋고, 그래서 진도는 빠르게 나가는 중이다. 아쉬운 부분도 꽤 있지만(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부분이 여럿 있어서...) 할머니가 사셨던 삶에 대한 긍정적인 상상력을 기른다는 차원에서 접근하며 읽고 있다.
⑥ 가스통 르루 저, 『The Phantom of the Opera』, YBM, 1판(2007), ~211
거의 다 읽었다. 10~20페이지 정도 남은 듯. 이건 아무래도 영화나 오페라로 유명하다 보니 따로 챙겨보면 더 재밌을듯.
⑦ 문학동네 편집부 저, 『문학동네 110호 - 2022 봄』, 문학동네, 1판(2022), ~76
⑧ 창작과 비평 편집부 저, 『창작과 비평 195호 - 2022 봄』, 창비, 1판(2022), ~186
문학 트렌드를 쫓아가기 위해 읽고 있는데 역시 쉽지 않다. 관련 평론이나 작가론은 작품을 읽은 게 거의 없다 보니 글의 맥락을 따라가기가 힘들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위주로, 관심 있는 주제 위주로 읽는 게 답이려나? 2021년 겨울호 발췌도 아직 끝내지 못했는데....
한 달을 돌아보며
- 나쁘지 않았던 4월. 아직 쓰는 일에 관성이 붙진 않았지만 읽는 일에는 슬슬 관성이 붙고 있다. 4월에는 주로 도서관같이 조용한 곳에서 밀도 있게 읽기 보다, 책을 주로 지하철이나 시간이 날 때 짬을 내서 조금씩 읽는 식으로 독서를 했던 게 잘한 점이자 아쉬웠던 점인 듯. 책을 들고 나가 최소 2시간 정도는 앉아서 꾸준히 독서하는 버릇을 들일 필요가 있다. 마스크 쓰기가 귀찮아서 밖으로 나가기 보다 집에서 책을 읽게 되는데, 집에는 방해 요인이 많아 흐름이 뚝뚝 끊길 때가 많으니까. 일단 독서실은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 저번 정액권도 그렇고 이번 정액권도 그렇고 절반도 못 쓰고 날려버렸다. 그냥 가끔 땡길 때 가서 시간권을 끊고 이용하는 게 낫겠다. 슬슬 도서관 거리두기 정도가 약해지면 자전거 타고 도서관으로 나가 책을 읽는 것도 나쁘지 않겠고.
- 예전에 썼던 독후감, 서평 글을 4월에는 좀 많이 올렸다. 지금까지 올릴 글의 절반 정도 업로드 한 듯한데, 이걸 빨리 끝내고 새로운 글로 블로그를 채우고 싶다. 블로그에 업로드가 끝나면 그 글을 알라딘 서재에도 올릴 예정이다.
- 사고 싶은 책이 많지만 계속해서 참는 중이다. 책을 놓을 공간이 부족하다. 먼지도 감당이 안 되고.. ㅠ
- 오랜만에 작년 연말 독서 정산을 짧게 훑으니 내가 작년에 끼적였던 올해의 계획, 방향성을 기준으로 지금까지의 독서생활을 점검하고 싶어졌다.
-> 계획적인 독서 : 인생 참 계획대로 된 게 없었는데 역시 독서도 마찬가지다. 1,2,3,4월까지의 독서는 좀 중구난방이고 마땅한 줄기가 없었던 것 같다. 로스, 소세키, 쿤데라, 부코스키 소설 책은 계속해서 끼고 살고 싶었는데, 로스의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를 2월 초에 거진 다 읽어 놓고 끝장을 못 본 뒤로 따로 붙잡고 있는 작품이 없다. 치유적 독서 및 글쓰기와 철학, 종교, 과학적 관심사와 관련된 도서도 마찬가지다. 아, 너무 욕심이 많은 탓인가..? 이렇게 읽고 싶은 책이 많으면 딴짓을 안 해야 하는데 딴짓도 많이 하니 참...
-> 함께 책 읽기 : 적절히 하는 중. 그런데 아무래도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으려면 내가 직접 독서모임을 만드는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이다. 필립로스 전집 읽기나 로스 책 몇 권 읽기 모임 같은 거.
-> 읽고 쓴 걸 나누기 : 아, 정말 어렵다. 읽고 쓰는 행위는 늘 '나'와 관련된 행위, 범위를 확장시켜도 지인 정도까지와 관련된 행위였어서 그 이상으로 어떻게 확장시켜 나가는 게 좋을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 SNS 독서 기록 : 이건 좀 꾸준히 하는 중. 월간 독서정산 꾸준히 올리는 것만 해도 뭐~
-> 규칙적 루틴 : 그런 거 없다... 이건 마감이 있는 글을 쓰거나 글을 써내야 하는 독서모임에 들지 않는 한 불가능할 듯. 아니, 그런 건 커녕, 애초에 글이 한 참 잘 쓰일 때는 눈에 띄는 문장, 생각을 정말 쉼 없이 메모하고 연결하고 정리하고 그랬는데, 요즘엔 그게 잘 안 된다. 일상부터 글쓰기 친화적으로 만들어야 할 듯
-> 글쓰기 대회 응모 : 기회가 여럿 있었는데 내가 다 날려 먹었다. 이러다 올해도 작년처럼 한 두 개 내놓고 끝나는 거 아닌가. 그런데 그도 그럴게 대상 작품이 내 스타일이 아닌 것도 많고, 읽고 나서도 그와 관련된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게 여전히 너무 어려운 탓도 있다. 서평 대회에 비하면 독후감 대회는 정말 체감 난도나 부담감이 열 배 이상은 되는 듯.
5월에 읽고 쓸 계획
- 일단 "오페라의 유령"을 끝내고 YBM 영어판 "위대한 유산"을 읽을 계획
- "몰락의 에티카"는 독서모임에서 읽고 있으니 완독하겠고
- "창비 계간지"도 스위치 창비에서 모임을 하고 있으니 완독해야 한다.
- "밝은 밤"은 하루에 2~30페이지씩 지금처럼만 읽으면 금방 다 읽을 듯.
- "문학동네 계간지"도 읽긴 해야 하는데, 손에 잘 안 잡힌다.
- "힐빌리의 노래" 한번 훑어볼 것 같고
- 읽다가 말았던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를 완독하자.
- "라캉은 정신 분석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뉴욕 3부작", "숙향의 주식 투자 이야기", "나인"도 읽긴 해야하는데, 여기서는 볼 수 있는 것만 보자.
- 그리고 그냥 땡기는 거 읽기
- 어떻게 보면 쓰는 게 더 중요한데, 가능하면 책 한 권에 대한 독후감이나 간단한 독서 단상이라도 남겼으면 좋겠다. 에세이도 하나 쓰고 싶은데, 일단 이건 '내가 원하는 삶'이라는 주제를 붙여놓고 생각 좀 해보자. 피곤하니 이만 자야겠다. 너무 피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