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독서정산


뒤늦은 2월 독서정산이다. 밀도있게 읽은 책이 얼마 없는 데다가 붙잡았던 책들을 기록도 안 해둬서 뭘 어떻게 읽었는지 많이 까먹었다. 계획한 책은커녕 지난 달에 붙잡았던 책들 갈무리도 안 했으니...


① 토니 모리슨 저, 이다희 역,『보이지 않는 잉크』, 바다출판사, 1판(2021), 완독 


 토니 모리슨이라는 작가를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 『빌러비드』가 대표적으로 유명하며 1993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이렇게 유명한데 읽어본 작품은 전무한지라 이 책을 읽는 데는 좀 애를 먹었다. 자기 이야기를, 특히 자기 소설 이야기를 매우 많이 하는데 읽어본 게 없어서...

 되돌아보니 크게 두 가지가 인상 깊게 남았다. 하나는 모리슨이 기존의 역사를, 서사를 비틀어 독자가 생각하게 함으로써 기존의 생각의 틀, 사고의 틀을 뒤흔드는 소설을 쓰기 원했다는 사실. 다른 하나는 그가 집요하리 만큼 천착했던 인종과 관련된 꾸준한 문제의식이다. 모리슨의 소설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그게 괜찮은 작품일 것이라는 느낌이 드는데, 그건 바로 첫 번째 사실 때문이다. 나 또한 모리슨이 그러는 것처럼 뭔가 불편하게 하는 작품,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을 좋아한다. 책을 읽는 이유는 그 책에서 나의 생각을 찾기 위한 게 아니라, 책을 읽고 내 삶이 변화하고 한층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좋은 책을 읽는 거도 중요하지만 적극적으로 읽는 거도 중요한데... 요즘 그러질 않는다.) 두 번째 사실이 인상깊었던 이유는, 내게도 모리슨의 '인종'과 같은 인생의 주요 키워드가 무엇인지, 그 키워드를 위해 얼마나 발싸심하고 있는가에 대한 자문 때문이었다. 


 허태연 저,『플라멩코 추는 남자』,다산북스, 1판(2021), 완독


 편하게 읽기 좋았던 책이었다. 별 생각 없이 읽었는데 머리를 싸매고 읽을 필요도 없었고, 글도 매우 쉽게 쓰여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다 봤던 기억이 난다.  60대 이상의 남성이라는, 어떻게 보면 쉽게 이해하거나 공감하기 어렵고 때로는 그 꼰대스러움에 기분이 나빠져 가까이 하기 싫어지는 캐릭터에 대한 따뜻한 애정, 이해의 노력이 엿보였다고 해야 할까. 그 캐릭터, 즉 '남훈'의 노력하는 자세, 책임지는 자세도 좋아 보였다. 성장은 아이들만 하는 게 아니다. 어른들도 한다. 아니, 어떻게 보면 성장은 아이들보다 어른에게 더 중요한 것 같다. 내가 옳다는, 틀리지 않다는 자만은 아이들보다 어른들에게 더 가깝고, 그런 자만이 세상의 많은 문제를 발생시키는 원인이기도 하니까.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남훈의 성장 이야기였다.


③ 도스토예프스키 저, Adam Edwards 편역,『The Brothers Karamazov』, The Text a YBM Company, 1판(2008), 완독


 The Text A YBM Company에서 간행한 The Classic House 시리즈의 59번째 책,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영어 편역본이다. 이 시리즈를 알게 된 건 9년 전. 서울 시청에서 공공근로를 했을 때 거기에서 일하던 학과 선배 형이 영어 공부하기에 좋다며 추천해줬던 것이다. 산 건 16년도였던 거 같고 그 해에 한 번 읽었고, 거의 6년 만에 다시 봤다. 올 해 매달 한 권씩 이 시리즈를 보는 게 목표였는데 쉽진 않을 듯하고 적어도 두 달에 한 권씩은 보고싶다.

 읽고 보면 원전의 내용이 무척 궁금해지는 걸 보면 편역 자체도 괜찮게 되어 있다. 나쁘지 않았다.





④ 창작과 비평 편집부 저, 『창작과 비평 194호, 2021 겨울』, 창비, 1판(2021), 완독


 처음으로 읽어본 문학 계간지. 모르는 국내 문학 작품이 많이 다뤄져서 솔직히 글을 따라가기가 힘들었던 부분이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계간지를 읽으니 현재 문학계에서 어떤 부분을 관심에 두고 있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사항은 어떤 부분인지 등 현황을 좇을 수 있어서 좋았다. 

황정아 교수의 글 "'문학의 정치'를 다시 생각한다."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문학적 정치 수행의 까다로움, 협소하게 규정된 PC에 속박된 채로 제대로된 정치성을 탐구하지 않는 문학의 현실, 공적 장소를 개인적 감수성에 예속화한 탓에 사라지는 공공성 등 재미있는 논점이 많았다.




한 달을 돌아보며


 무료하고, 무기력하고, 동기부여가 잘 되지 않았다. 책도 쇼핑만 하고 욕심만 많았지 정작 끈덕지게 읽고 생각을 꼼꼼하게 정리한 적도 얼마 없었다. 뭐가 문제였을까. 아무래도 회사랑 코로나 영향이 큰 것 같지만 그 탓을 하며 자꾸만 아쉽게 허송세월하는 나에게 면죄부를 주고 싶진 않다. 일단은 좀 비우기로 했다. '이것도 해야지, 저것도 해야지, 저거도 중요하고, 이거도 중요하고.' 욕심만 많아지니 부담감만 심해지고, 읽지도 않을 뿐더러 쓰지도 않는다. 

 그래서 일단 책 말고 한 권 가지고 다니는 거로 만족하기로 했다. 내가 무료하고, 무기력하고, 자존감이 낮아지고, 공허해지는 이유는 꾸준히 쓰지 않아서다. 그게 내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인데, 그게 없어서 그런 거였다. 좋은 음악, 편안한 공간에서 노트 한 권이면 족하다. 책은 그 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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