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독서정산


21년 12월 월간독서정산은 21년 연말독서정산으로 갈음했다. 12월은 연말을 정리한다고 책을 거의 보지 않았다. 1월은 인사 이동 후 적응한다는 핑계로 책을 잘 붙잡지 않았고 동기부여도 안 되었으나 사실 이건 다 핑계라는 걸 알고 있기에 그제 독서실을 끊었다. 집에서 책 보겠다는 헛소리는 그만해야지, 망할.


① 허먼 멜빌 저, 김석희 역,『모비 딕』, 작가정신, 1판(2011), 완독


  그나마 이 책은 완독해서 다행이다. 멜빌의 『모비 딕』. 멜빌을 처음 알게 된 건 6년 전,『필경사 바틀비』를 통해서였다. 세계문학 단편선에서 왜 멜빌의 그 작품만을 찾아 읽었는지 기억나진 않는다. 다만, 문학을 거의 읽지 않던 때에 찾아 읽은 얼마 되지 않는 문학 작품 중 하나였고 이런 독특하고도 매력적인 소설을 쓴 멜빌이라는 작가를 뇌리에 새기며 독서 일기를 썼던 기억은 난다. 16년 3월이었을 거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멜빌이 『모비 딕』이라는 대작을 썼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 독서 모임이 아니었다면 계속 몰랐을 테다.

 읽기 쉬운 작품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네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우선, 서사가 약하다는 점 때문이었다. 모비 딕은 서사가 흥미진진하진 않다. 끝내 마주한 결말은 사실 소설 초반부터 충분히 예측 가능할 정도로 멜빌이 힌트를 많이 준다. 서사가 약하니 이야기의 흡입력은 떨어진다. 대중의 관심을 못 받은 이유가 있었다. 두 번째는, 안 그래도 약한 서사의 몰입도를 더 떨어뜨리는, 이야기 중간에 많이 삽입된 고래에 대한 백과사전식 이야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멜빌이 왜 이렇게 많은 고래 이야기를 했는지 명확히 이해하진 못하겠다. 고래를 신비화하면서 이렇게 분석적인 관점에서 고래를 해체해 묘사하는 양가적인 관점을 취한 이유도. 세 번째는, 이렇게 이야기가 전개되는 장들 사이에 백과사전식 이야기를 끼어놓아 장르적 특성이 굉장히 모호해졌다는 점 때문이었다. 특히, 셰익스피어의 영향을 많이 받은 멜빌답게 희극이라는 장르를 상당히 뒤섞기도 했는데, 멜빌이 이렇게 장르를 섞고 뒤틀어 노리고자 했던 효과가 무엇이었는지는 아직도 이해를 잘 못하겠다. 마지막으로는, 멜빌이 소설에서 중요한 문제의식으로 삼았던 신학적 논제들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다는 점이었다. 소설은 신비주의적, 종교적 상징과 그러한 문제의식으로 가득한데, 그걸 많이 짚어낼 정도의 지식은 없던 탓에 멜빌이 도대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는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읽기 어렵게 만드는 부분을 뒤집어 보고 논점을 모아 줄기를 잡아보면 어느 정도 퍼즐이 맞춰지기도 했다. 맞춰낸 퍼즐은 뭐랄까, '이 소설은 19세기에 신정론을 다룬 변형된 욥기다.'라고 하면 괜찮을까. 그러면 이렇게 말해볼 수도 있겠다. 어차피 서사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고. 신정론에 대한 논제는 핵심인물의 고통이 핵심인 만큼 어차피 그는 고통받았고, 고통받을 운명이니까. 그게 바로 에이해브고. 소설 초반에 펠레그 선장은 에이해브가 "좋은 사람"이며 "위엄있고, 신앙심은 없지만 신 같은 사람", "왕관을 쓴 왕"같은 사람이었다고 묘사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은 뒤 행복한 가정을 꾸리자마자 다리를 잃었다. 갑작스러운 비극을 마주한 대부분의 사람이 그 비극의 불가해함 앞에서 분노하다가 결국 체념하지만, 에이해브는 그렇지 않았다. 미쳐버린 핍이 영적인 지혜를 얻은 것으로 묘사되는 것처럼 에이해브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사실 - 신의 이중적 면모 - 을 보는 인물이었고 그는 그것을 끝까지 파헤치고자 했다. 그 면모가 구체적인 사물로 형상화된 게 고래였던 것이고. (흰색이라는 색깔이 상징하는 것처럼) 하지만 고래에 대한 그 수많은 지식이 있음에도 이슈메일이 고래를 알 수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신도 멜빌에게 그런 대상이었던 것 같다. 멜빌은 모순적이고 양가적인, 때로는 말이 되지도 않는 신학적 논제를 들춰내고 그에 대해 분노하고 개탄했을 뿐 명료하게 갈무리한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하여튼, 읽기 힘들었지만 말하자면 할 이야기가 많은 소설이었다. 특히, 에이해브가 매력적이었다. 오이디푸스나 욥, 스네이프를 떠오르게 하는 인물이었다. 선과 악의 저편에 있는 그 욕망에 대해 언젠가 구체적으로 더 생각해보고 끼적여 볼 필요가 있겠다.



 필립 로스 저, 김한영 역,『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문학동네, 1판(2013), ~312쪽


  이 작품은 꼭 다 읽었어야 했는데... 흡입력 있는 대단한 작품이지만 생활을 관리하는 내 능력의 부재로 읽다가 말았다. 여기서도 역시나 더 나은 삶을 위해 발악하다가 결국엔 미끄러지는 인물 - 아이라 - 이 나온다. 단상은 완독 후 남겨야겠다.










 김혜령 저,『내 마음을 돌보는 시간』, 가나 출판사, 전자책(2020), 60%정도


  김혜령 상담사는 유튜브 "놀면서 배우는 심리학" 채널에서 나온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됐다. 지니고 있는 심리적 지식, 생각, 말투 등 사람 자체가 매력적이어서 책까지 찾아보게 됐다. 출퇴근 시간에 조금씩 조금씩 봤는데 심리학 전문서와 대중서 사이에서 저울질을 잘 한, 읽기도 쉬우면서 담고 있는 내용의 깊이도 잃지 않은 보기 드문 양서였다. 내가 관심을 두고 공부했던 심리학적 줄기를 가지런하게 정리해 놓은 느낌을 받았는데, 역시나 인용된 책들도 보면 내가 읽거나 관심을 뒀던 저서들이 많았다. 끌린 이유가 있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 부정적 정서에 휘둘리는 사람, 삶이 괴로운 사람이 읽어보면 좋겠다.




④ 김경미 저, 『이기적인 슬픔들을 위하여』, 창비, 시요일, 부분독

⑤ 『창작과 비평, 2021년 겨울호』, 창비, ~85쪽

⑥ 김시종 저, 이진경, 카케모또 쓰요시 역 『잃어버린 계절』,창비,1판(2019), 부분독

⑦ 허태연 저,『플라멩코 추는 남자』, 다산책방, 초판(2021), ~45쪽 

⑧ 카라마조프 저, YBM 재구성『The Brothers KARAMAZOV』, The Text, 초판(2008), ~102쪽































두 시집은 제외하고 나머지 세 권은 로스의 책과 함께 이번 달 완독 목록에 올렸어야 했으나 실패했다. 김경미 시집은 창비 스위치에서 참여한 시 필사 모임을 통해 주로 읽었고, 이 과정에서 김시종의 시도 몇 편 필사 했다. 처음으로 구독한 창비 계간지는 무척 재미있게 읽고 있고, 『플라멩코 추는 남자』도 마찬가지다. 굳굳 bb


한 달을 뒤돌아보며


 할 일이 많이 밀렸다. 일이 밀렸는데 밀린 만큼 하기는 더 싫어져 많은 시간을 딴짓 하며 보냈다. 위쳐라는 재미있는 드라마 본 건 좋았지만... 코로나 이후 2년 동안 집에서 공부하겠다는 다짐을, 매번 실패하면서도 괜스레 포기하지 않는 정신 나간 짓거리를 해왔는데 이제야 조금 더 확실하게 인정하게 됐다. 나는 집에서 공부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니다. 집에서 만화를 보든, TV프로를 보든, 게임을 하든 상관없다, 잠만 잘 자고 시간 나면 무조건 독서실에 가자, 라며 집 근처 독서실 100시간 권과 사물함을 끊었다. 읽어야 하는 책을 아예 사물함에 넣어놓았으니 읽으려면 무조건 독서실에 나와야 한다. 다행히 작심삼일은 넘겼다. 2월엔 좀 알차게 보내보자.


2월에 읽어나갈 책


 우선, 밀린 책들을 처리한다.『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와 『플라멩코 추는 남자』, 『창작과 비평 계간지 2021년 겨울호』, 쉽게 재구성 된『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독서모임에서 토니 모리슨의『보이지 않는 잉크』를 읽을 예정이고, 2월에 읽을 The Text의 영어책은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이다. 여기에 필립 로스의『미국의 목가1』정도면 괜찮을 듯하다. 일단 이 정도가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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