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독서정산


  정산할 시에 완독한 책만 '상품 넣기' 기능을 사용하기로 했다. 한 권을 여러 달에 걸쳐 붙잡을 수도 있는데, 그러면 책 소개 화면의 마이페이퍼란에 지나치게 자주 노출되는 단점이 있는 탓이다.


① 필립 로스 저, 정영목 역,『포트노이의 불평』, 문학동네 출판사, 1판(2014), 완독

 필립 로스 저, 정영목 역,『울분』, 문학동네 출판사, 1판(2011), 완독

 필립 로스 저, 정영목 역,『굿바이 콜럼버스』, 문학동네 출판사, 1판(2014), ~322쪽















  10월부터 붙잡았던 '포트노이의 불평'을 다 읽었고, '울분'은 금방 읽었으며, '굿바이 콜럼버스'도 거의 다 봤다. 1회독인데다가 발췌독도 끝나지 않아서 이 책들이 내게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흡입력이 있었는지 아직 명확하진 않지만 언어화되지 않은 다양한 감각이 내면에 가득 남은 건 확실하다. 그만큼 공명한 부분이 많다는 거겠지. 대략 정체성, 남성성, 배제와 정상성, 종교, 도덕, 정서적 혼란, 이질감 등의 키워드와 연결될 수 있는 편린인 것 같다. 사실 이런 키워드들은 필립 로스의 문제의식, 즉 '유대인으로서 미국에서 사는 것이 무엇인가'와 뗄 수 없는 것들로 세계 2차 대전 이후 미국 사회에서의 유대담론을 이해하지 않으면 풍부하게 다가오기 어려운 것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유대담론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내게 이렇게 많은 감정을 남긴 걸 보면, 로스가 인기가 많은 이유도 납득이 간다. 굉장히 특수한 문제의식을, 구체적인 언어로, 보편적으로 다가가게끔 쓴달까? 

  포트노이의 가족을 보며 역기능적이었던 우리 가족을 떠올렸고, 포트노이증을 보며 윤리적, 이타주의적 충동과 다양한 강박으로 고생했던 나를 떠올렸다. 도착적인 증세를 보이는 포트노이의 모습에서 도덕적, 윤리적인 판단을 잠시 중지하고, 그 맥락을 캐는 방식으로 책을 읽어 보면 생각할 거리가 참 많은 책이다. 그게 잘 되지 않는다면 포트노이를 보며, '뭐 이런 또라이 새끼가 다 있어' 그 이상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 같다.'울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마커스의 가족과 사촌을 보며 우리 가족과 사촌을 떠올렸고, 다양한(사회적, 종교적, 경제적) 맥락이 얽히고설켜 마커스의 개인적 신념, 판단과 마주했을 때 일어나는 연쇄작용을 보며 지난했던 나의 삶을 떠올렸다. 과거에 했던 아주 사소한 선택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낸 부정적인 결과. 이거만 아니었다면 더 나아질 수 있었을까? (물론 그랬겠지만 별 의미 없는 질문이라고 본다.) '굿바이 콜롬버스'는 아직 이 소설이 하고자 하는 말이 뭔지 명확하게 다가오진 않았다. 다만, 닐과 브렌다를 보며, 닐의 행동과 생각, 그리고 감정을 보며 내가 다른 세계에 산 사람을 볼 때 느끼는 어떤 이질감을 떠올렸다.

 아쉬운 걸 한 가지 언급하자면, '재미도 있고 공감도 많이 되었는데,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는 질문에는 이렇다 할 길을 제시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충분히 구체적으로 잘 '보여'주었으니 이 이상 바라는 건 사치인가?

 

④ 안유경 저, 『성리학이란 무엇인가』, 새문사 출판사, 증보판(2021), 38~116쪽

⑤ 프랑수아 줄리앙 저, 유병태 역, 운행과 창조』, 케이시 아카데미 출판사, 초판(2001), ~31쪽


  성리학 자체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차라리 불교나 각종 고전(논어, 맹자 등)을 읽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니까. 내가 성리학을 좀 이해하고 싶은 이유는, 현재로서는 프랑수아 줄리앙을 읽기 위한 게 가장 크다. 안유경 선생의 저 저작이나 진래 선생의 '송명 성리학'이 입문서의 역할을 아주 잘 해주고 있어서, 내 생각엔 이 두 권과 왕부지에 대한 입문서 또는 연구서 한 두 권 정도만 읽어도 '운행과 창조'를 끝까지 읽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운행과 창조'를 통해 이 질문을 이해해보고 싶었다. "유가의 의식이 그 고유한 논리 속에서 인본주의의 표본일 수 있었던 조건과 그 근본적 특성은 무엇인가?"(16),  


⑥ 장회익 저,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추수밭 출판사, 1판(2019), 33~131쪽

⑦ LEX 저, 강현정 역,『수학으로 배우는 양자역학의 법칙』, 지브레인 출판사, 초판(2020), ~97쪽 

⑧ 김영건 저, 『이성의 논리적 공간』, 서강대 출판부, 초판(2014), ~48쪽


  물리학과 관련된 '통합적 앎'에 대한 관심으로 장회익 선생의 책을 읽고 있는데, 읽다 보니 이제는 그 '통합적 앎'이라는 게 불가능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모든 것의 위에서, 모든 것을 내려다 보려는 신적인 관점을 갖고자 했던 건 아닌지, 이 책에서 말하는 통합적 앎이 과연 정말 통합적 앎인지, 그게 우리의 삶에 말해주는 바가 무엇인지 등등. 떠오르는 의문은 점점 구체적이고 커져가는데 충분히 해명되지 못하니, 전체적인 그림을 다르게 그려야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뭐, 여튼 아직 명확하지 않은 생각들이다. 다만, 장회익 선생의 책을 읽다 보니 되레 샐라스가 이야기하는 '현시적 이미지와 과학적 이미지' 사이의 관계에 더 많은 관심이 생겼다.


⑨ 이호규 외 저, 『한무숙 문학세계』, 새미 출판사, 초판(2000), ~20쪽

⑩ 한무숙 저, 『한무숙 단편집』, 지만지 출판사, 개정판(2021), ~108쪽


  어렵다. '한무숙 단편집'에 수록된 소설이 초판을 기준으로 해서 그런가 옛말, 한자가 너무 많다. 작가가 담아내는 이야기는 흥미롭지만 그래서 썩 가독성이 좋진 않다. 그래도 천천히 완독하고 싶은 책들. 


한 달을 뒤돌아보며


  네이버 블로그를 삭제하며 알라딘에 올렸던 서평도 모두 삭제했었다. 일기장처럼 쓰던 블로그를 조금 바꿔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고, 저품질에서 탈출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서평을 모두 삭제한 이유는, 3년 전 블로그를 옮기는 과정에서 네이버 블로그와 알라딘에 같은 서평을 비슷한 시기에 올렸던 게 저품질에 영향을 준 게 아닌가 하는 의심 때문이었다. 그래서 삭제했던 건데, 얼마 전에 다시 찾아 보니 블로그와 알라딘을 동시에 운영하면서도 방문자 수가 꽤 많은 블로거를 여럿 보았다. 갭만 조금 주면 같이 올려도 크게 상관은 없었다. 오랜 기간 꾸준히 쓰는 게 중요했지... 다 지워버린 게 좀 후회스럽지만 그냥 전에 썼던 글 다시 읽어보며 천천히 올린다 생각하고, 갭을 어느 정도 두고 다시 올려보려고 한다. 이것저것 많이 생각하지 말고 꾸준히나 해보자.

  글로 먹고살고 싶다는 생각도 더 자주 드는 요즘이다. 잘 하지는 못하지만 책을 읽고 글을 쓸 때, 그리고 책과 글을 주제로 남과 소통할 때 나는 가장 안정적이고 행복하다. 하지만 글을 잘 쓰는 것과, 글로 먹고사는 건 전혀 다른 문제라고 한다. 솔직히 내가 글을 쓰고 그것으로 소통하는 방식은 글로 먹고사는 것과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어떻게 글로 먹고 살 수 있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도 얼마 없는 것 같다.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역시나 답은 없다. 꾸준히 고민하고, 꾸준히 쓰는 수밖에. 그리고 사람들 사이로 나아가는 수밖에. 두렵고 무섭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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