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20년 독서 정산


운을 떼기 전 앞선 독서 정산들을 훑어봤다. 17, 18, 19. 그리고 이번이 20. 벌써 4년째다. 4년째가 되니 이걸 왜 하는 게 좋은지 느껴지지만 전엔 이런 걸 왜 하나 싶었다. 굳이 시간을 써서 정리해야 할 필요성을 몰랐달까. 

시작은 막연한 생각과 함께했다. 남들이 쓰는 걸 보고는 나도 ''을 주제로 뭔가를 적고 싶었고 한 해를 복기하면 머릿속도 정리될 것 같았다. 그래서 조금 짬을 내 적어보았다. 개운했다. 막연한 점들로 산개해 있던 한 해가 줄기로 엮여 깔끔해지는 느낌이었다. 그 맛에 18년에도, 19년도에도 독서 정산을 이어갔다.

4년 차가 되니 조금 다른 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름 정리된 한 해 한 해의 줄기가 연결되니 또 다른 의미 있는 더 굵직굵직한 줄기들이 생겨난 것이다. 예를 들자면, 책과 관련한 반복되는 문제의식, 습관들이 보였다. 더 성장하는 데 필요한 데이터가 많아졌달까. 그러다 보니 내가 특히 더 알고 싶은 분야가 뭔지, 왜 알고 싶은지에 대해서도 전보다 구체적인 생각과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책과 관련해 알찬 한 해를 보냈다고 말하긴 뭐 하지만 책을 작년 수준으로 안 읽진 않았다. 내년에는 17, 18년 정도 때의 밀도로 책을 읽길 바라며 올해도 인상 깊었던 책들을 뽑아봤다. 또한, 전처럼 뒤적였지만 완독하지 않은 책은 적지 않았고 20년도의 독서 활동을 정리하며 앞으로 읽어나갈 책들을 좀 구체적으로 적어봤다.


2. 인상 깊었던 책들


(1) 카를로 로벨리,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올 한 해 최고의 책을 꼽자면 이걸 뽑고 싶다. 쉽지 않은 책이었지만 아름다웠고 강렬했다. 물리학자로서는 드물게 문학적인 문체를 사용해 물리적 시간론의 역사, 양자중력의 시간론, 나아가 우주론을 소묘했다. 물리 전공자가 아니라면 읽는 데 꽤 애를 먹을 수밖에 없는 게 300쪽도 안 되는 짧은 분량 안에 저런 굵직굵직한 이야기를 하는 탓이다. 수학까지 자세히 알 필욘 없지만 뉴턴, 볼츠만, 아인슈타인, 양자이론, 나아가 관계론적 사고와 관련한 기본적 지식이 없는 상태라면 읽어도 무슨 말을 하는지 알기가 어렵다. 베스트 셀러고 얇아서 독서모임용으로 골랐던 책인데 판단 미스였다. 책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얼핏 이해한 바로 책의 핵심은 '실체론적 관점이 아닌 관계-사건적 관점에서의 시간론 또는 우주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실체론적 관점은 뉴턴의 F=ma에서의 시간(t)을 생각하면 된다. F=ma를 통해 뉴턴은 물체의 상태를 시간(t)에 따른 함수로 치환하고자 하는데 여기에서 t는 수학적이고 절대적인 실체로서 당연하게 전제되어 있었다. 반면, 관계-사건적 관점에서의 시간은 물질들의 관계가 만들어낸 하나의 효과다. 로벨리는 양자중력이론에서 변화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설명하지 않는다. "사물들이 다른 것들과 관련하여 서로 어떻게 변화하는지, 세상 사물들이 서로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물리적 씨실과 날실이 직조해낸 네트워크, 그게 바로 관계론적 관점에서의 시간이다.

로벨리의 우주는 사건이라는 마주침, 되어감이라는 과정 그 자체다. 또한, 그는 그런 우주를 인간이 재조직화, 개념화하는 과정에 주목한다.

막연하게 지니고 있던 생각을 더 세련되고 심화한 형태로 내놓은 사람을 만나는 일은 즐겁다. 로벨리가 그랬다.


(2) 레자 아슬란, 인간화된 신



18년 독서 정산에서 욥기를 읽고 이런 글을 남긴 적이 있다. 


[나는 욥기에 등장하는 야훼의 모습, , 당시 사람들이 이해하던 신의 모습에 주목했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야훼는 '선한 신', '인간의 고통을 이해하고 죄를 대신 짊어진 신'과 같은 이미지가 아니다. 인격화하기 이전의 신, 거칠고 두려운 자연에 가까운 신이다. 욥기를 보면 신약이 제시하는 예수의 이미지가 얼마나 기발한 지가 느껴진다. '인간과 같은 고통을 직접 느끼고, 그 고통을 헤아리고, 죄를 대신 짊어진 예수'라니!]

 

야훼와 예수 사이에서 느껴지는 간격이 무척 신기하다고 끼적였던 무렵. 2달 뒤에 이 책이 나왔다. 레자 아슬란의 '인간화된 신'이다. 아슬란은 여기에서 우리가 어떻게 ''이라는 개념을, 그리고 '인간화한 신'이라는 개념을 발전시키게 됐는지를 좇았다.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어떻게 신이라는 개념이 생겨났고, 이 신이라는 개념은 어떤 과정을 거치며 변화해나갔을지, 종교적 경험의 실체가 무엇인지 등에 대해 관심이 있었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던 기억이 난다.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저자 자신의 '영적 여정의 궤적'이었다. 저자는 어릴 적 신을 '초인적 힘을 지닌 힘을 지닌 인간'으로 생각했다가 기독교로 개종한 후에는 '완벽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유일신의 개념과 삼위일체 개념 사이의 혼란으로 그는 일신교를 더 밀고 나간 이슬람교로 개종한다. 마지막으로는 수피가 된다. '단일, 영원, 무한이라는 본성을 지닌 신'의 개념을 일관되게 받아들이려면 창조자와 창조를 구분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저자처럼 믿음이 있던 건 아니지만 나 또한 현재 다다른 곳이 저자와 유사한 부분이 많았다. 인간화한 신 개념을 거부할 수밖에 없던 이유나 창조자와 창조를 구분하지 않아야 했던 사실이라던가. 아슬란의 글도 그렇고 얼마 전 읽었던 아인슈타인의 토막글에서 그가 종교를 두려움의 종교, 도덕적 종교, 나아가 우주적 종교로 나눈 후 우주적 종교 감정에 다다르고 싶어 했던 걸 보면, 내가 하고 살아온 생각이 아예 근거 없는 이상한 생각은 아니었던 것 같다.


(3) 임경선, 태도에 관하여



참 많이도 읽은 책이다. 5년 전에 알라딘 신간 평가단으로 처음 접해 완독한 후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일 때마다 토막글을 읽곤 했다. 올해에는 독서모임 도서로 선정돼 오랜만에 완독을 했다.

그동안 책에서 저자의 치밀함, 시니컬함, 현실적인 태도 등에 자극을 받고 위안을 받곤 했다. 하지만 이번엔 좀 다른 것들이 보였다. 중요한 질문을 간과해 왔다는 사실이었다. 태도 attitude를 두고 고민한다는 건 어떻게 how라는 살아가는 방식과 가치관을 탐구한다는 것과 같다. 책에 나온 건 저자가 선정한 태도들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태도를 지녔을 때 가장 나다운 걸까? 어떤 태도를 지녔을 때 나는 가장 충만한 걸까? 이게 내가 놓친 질문이었다.

책을 읽고 나름 구체적인 경험에 기반해 태도들을 선별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지만 다시 읽어보니 아직 많이 부족하다.


[성실함(누구나 원한다고 꿈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말고 꾸준함(그냥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할 뿐이다)


성실함과 꾸준함은 비슷해 보이지만 핀트가 다른 단어다. 성실함은 당위의 세계에, 꾸준함은 그 외부에 존재한다. 

성실함은 학교에서 사용될 때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다. ‘성실하다는 표현은 대개 선생, 부모 등 어른들이 세워둔 규율에 부합하는 학생을 부르는 데 사용된다. 성실의 세계에는 옳음과 그름, 착함과 나쁨이 있다. 통용되는 기준이 있기에 그 기준에 따른 상하 수직적 계열화가 가능하다. 나는 이런 계열화가 어른들이 아이들을 그들이 생각하는 착한 아이로 기르기 위해, 그들이 만들어낸 속물적 세계의 상층부를 향한 욕망을 부추기기 위해 사용된다고 생각한다. 선생님과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고, 학교 숙제를 잘하고, 대입 준비를 열심히 하는 아이가 대개 성실하다는 칭호를 획득하는 이유다.

꾸준함의 세계는 다르다. 이곳에는 나는 그냥 내가 하고 싶어서 계속할 뿐이라는 말만 있다. 기준이 존재하지 않으니 누군가와 나를 비교하는 게 무의미하다. 타인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머리 굴릴 필요 없이 계속 행동하면 될 뿐이다. 아마 저자가 말하고 싶어 했던 성실꾸준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성실한 사람이 누구에게 질문할 필요조차 없고 더더군다나 누가 말린다고 해서 관두지도 않”(35)규칙적으로 일을 하고 그에 대해 책임을 지는”(151) 사람이라고 했다. 이게 바로 꾸준한 사람이다.

나는 꾸준한 사람이 더 멋있다. 성실이란 단어는, 자기감정을 억압하고 타인의 욕망을 우선시하는 느낌이 들어 꺼려진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망가뜨린 관계, 낭비해버린 시간이 내가 성실이란 단어를 꺼리게 만든 원인이기도 하다. 누가 뭐라 하든 상관없이, 아무 생각 없이 내가 하고 싶은 걸 꾸준히 하고 싶다. 꾸준히 해봐야 내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더 좋아하는지도 알게 되는 법이다. 꾸준히 해보지 않으면 51:49 앞에서 계속 어리바리해 하면서 살게 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자면, 이렇게 좀 길게 끼적인 것도 아직 좀 모호하고,

 

[적당함(때에 맞는 자연스러움을 추구한다)

담고자 하는 느낌은 많은데 괜찮은 표현을 찾질 못했다. ‘적당이라는 단어에 담고 싶은 말이 많았다. 이건 뭐랄까,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이나 맹자의 호연지기에 가깝고, 나아가 스피노자의 구원, 불교에서의 해탈에 가까운 개념이다. 세상에 대한 명료한 인식을 바탕으로 상황에 맞는 인과를 따르기에 넘치거나 부족함이 없고, 억지로 마음 쓰거나 할 일 없이 실천하며 평안을 유지하게 하는 태도다. 내가 꼽은 5가지 태도 중, 가장 궁극적이면서도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 태도에 관해서는 앞으로 공부하면서 더 명료화하기로 한다.]


이렇게 다음 기회로 넘기고는 간략하게 끼적인 것도 있다. 

내가 나로 잘 살다가 후회 없이 죽으려면 태도, 가치, 감정 등에 관한 나만의 구체적인 데피니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꾸준히 해나가고 싶은 일이다.


(4) 조셉 골드, 비블리오테라피



글에는 힘이 있다. 글이 세상을 바꾼다거나 누군가를 구원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다. 그런 거창한 말 말고 뭐랄까, 글은 다만 '계기'를 제공할 뿐이다,라고 하면 괜찮을까. 읽고 쓴다고 삶이 퍽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미미한 변화의 기회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굳이 '계기'라는 나름 중립적인 아우라의 단어를 선택하고 싶던 이유는 그 기회를 어떻게 쓰냐에 따라 한 편 더 성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정적인 방식으로 내면에 갇혀 차라리 읽고 쓰지 않는 게 더 나았을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읽고 쓰는 자기 모습을 자주 객관화해볼 필요가 있다.

비블리오테라피는 독서의 긍정적 기능 중 하나다. 독서치료를 뜻한다.

읽고 쓰기에는 치유적 기능이 있다. 삶에서 마주하는 문제에 대한 대응 능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 제대로 해소되지 않은 채로 지나가 계속 삶을 방해하는 부정적 감정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 '나만 그런 게 아니다'라는 느낌을 통해 한 발을 내디딜 용기를 얻을 수 있다는 점, 자기 내외부를 묘사할 언어의 세공 능력을 향상시켜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이해력을 높일 수 있다는 점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책은 독서를 하며 그런 치유적 기회를 제대로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쓰였다.

18년도 독서 정산에 이런 글을 끼적인 적이 있다.


[문학 작품을 주로 읽게 된 것도 추상적인 이론에서 잠시 벗어나 구체적인 맥락으로 들어간 내 모습을 상상하기 위해서였다. 한계가 있긴 했다. 어쨌든 현실은 아니니까. 하지만 여러 문학 작품을 통해 여러 삶을 살아본 일이 자아의 내적 갈등을 봉합하는 데 도움이 됐던 건 사실이다. 책 때문은 아니었지만, 책이 주는 위안을 발판 삼아,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고 목표도 달성했다. 덕분에 과거를 어느 정도 매듭짓고 새로운 미래를 상상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됐다.]

 

개인적으로 문학작품에 도움을 받은 기억도 있는 만큼 이 책을 더 많은 사람들이 읽어 봤으면 좋겠다. 바쁜 사람이라면 1부 만이라도. 딱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문학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지적 게임에서는 느낌에 대한 공포가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다. 우선 느낌을 시인하거나 인정하게 되면 그 느낌을 품은 개인과 대면해야 한다. 제도교육에서 개성은 비효율적이고 또 값비싼 것이다. 만약 정서를 타당한 것, 정당한 반응행위로 인정하게 되면 모든 느낌을 동등하게 대우해주어야 한다. 이것은 권력, 권위, 권한, 교사의 통제권 등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한다. (...)

어떤 독자가 어떤 책을 대단히 요긴하게 읽었다는 것, 또는 생애의 어떤 순간에 그 책이 아주 강한 의미를 주었음을 설명하기는 때때로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 지금이야말로 문학을 삶의 원천으로 가르쳐야 할 때이다. 이제 메시지는 분명하다. 당신이 당신의 독서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교수들의 허가장을 얻을 필요는 없다. 소설을 읽는 것은 당신에게 좋은 일이고 또 당신에게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다. 그러니 지금 당장 읽어나가라. (...) 그것은 문명화한 공동체에서 정상적으로 성장하는 데 아주 유익한 행위이다.]


(5) 볼프강 쉬벨부쉬, 철도여행의 역사



독서모임을 통해 읽은 책이다. 볼프강 쉬벨부쉬는 정신사적 맥락에서 문화사를 연구하는 작가로 한국 입시계에서 꽤나 알려진 작가다. 논술 필독서라고 한다. 부제에서 나오듯 철도라는 기술이 시간과 공간, 나아가 인간의 인지구조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에 관한 내용이 핵심이다.

우리는 다양한 기술품과 살고 있다. 컴퓨터, 노트북, 패드, 핸드폰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기술품들은 우리의 삶을 참 많이 바꿨다. 편의성과 같은 표면적인 부분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그보단 좀 더 본질적인 부분, 인지구조나 인간이 외부 대상과 관계를 맺는 방식 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쉬벨부쉬는 철도가 인간의 인지구조를 '파노라마화'했다고 하는데, 파노라마화가 가져온 '피상성'은 비단 철도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 앞서 말한 기술품의 효과이기도 하다. 인간은 내외부 관계의 밀도를 잃었다. 대충 보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 하지만 나쁜 것만 있는 건 아니다. 기술품에 부정적 아우라를 씌워 볼 필욘 없다.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는 것뿐이지. 좋은 점은 누리되 그게 가져오는 부정적인 부분을 최소화하는 노력이 중요하겠다.


(6) 심강현, 욕망하는 힘, 스피노자



쉬운 글을 쓰는 일은 어렵다. 복잡한 체계와 다양한 개념이 등장하는 고전에 대한 입문서가 특히 그렇다. 맥락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추상적인 사유를 어떻게 우리의 일상 영역으로 끌어올 수 있을까, 어떻게 일반적인 삶에 실용적인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오래 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쉬운 글을 쓰지 못한다.

이 책에는 쉬운 글이 적혀 있다. 나름, 스피노자의 복잡한 맥락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그가 하고자 했던 말을, 지복에 이르는 길을 충실히 설명하고자 했다. 저자는 서문에서부터 말했다.


[엄밀함을 요구하는 철학 전공자들에 비해 저 같은 아마추어 철학 애호가가 가질 수 있는 단 하나의 장점이라면, 아마도 스피노자를 처음 접하는 분들이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단어와 접근법을 선택했다는 차이 정도일 겁니다.]


뇌리에 오랫동안 머문 구절이었다.


(7) 앙드레 코스톨라니, 돈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다루어라



돈에 대한 나의 관념이 많이 그릇됐다는 걸 알려준 책이다. 

코스톨라니는 돈을 '수단'으로 다뤄야 한다고 말한다. 행복한, 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한 수단 말이다. 돈이 목적이 되는 순간 행복도 자유도 없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다루라'.

돈을 통해 진정 자유로운 삶을 누리려면 그는 투자를 하라고 말한다. 투자는 투기와는 다르다. 빚을 내거나 단기적인 관점에서 큰돈을 베팅하는 건 투기다. '자기 돈, 자기만의 생각, 적절한 인내심, 행운'을 지닌 채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성공적인 투자를 할 수 있다.

전에는 돈을 '막연히 아껴 써야 하는 것', '도덕적으로 그른 것'과 같은 식으로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돈은 그 자체로 좋거나 그른 게 아니었다. 모든 일에 양면성이 있듯 말이다. 오히려 돈은 내가 행복하게, 자유롭게 살기 위해 잘 알아야만 하는 대상이었다. 당장 원하는 것을 생각해 보자. 나는 좀 더 자유롭게 살고 싶고, 읽고 쓰는 데 도움이 되는 전자기기도 사고 싶고, 책도 더 많이 사고 싶고, 서재도 갖고 싶고, 홈트도 갖고 싶고... 옷이나 차, 사치품엔 크게 관심은 없지만 내가 더 성장하는 데 필요한 제품들, 경험들을 사고 싶다. 그러려면 적절한 돈이 있어야 한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자. 돈에 대해 더 잘 알아가자.


3. 2020년의 독서를 돌아보며

 

· 책을 별로 읽지 않았다


아쉬운 한 해를 보냈다. 사회생활을 했다, 는 말로 퉁치기엔 심하게 놀기만 한 것 같다. 당연히 책도 별로 읽지 않았다. 독서모임을 하나 직접 운영했던 것, 다른 독서 모임에 몇 달간 참여했던 것마저 없었더라면 책을 더 읽지 않았을 테다.

왜 그랬던 걸까. 루틴을 잡지 못한 것, 내적 갈등이 있던 것,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지 못한 것 등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조금 더 근본적인 건 분명 내가 하고 싶은 게 있는데 두렵다는 이유로 하지 않고 다른 걸 욕망한 데에 있는 것 같다. , 자기중심성이 부족했던 탓이다.

작년에 밀도 있게 공부하고 싶은 분야를 찾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사실 그때도 이미 느끼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막연하긴 하나 내가 더 알고 싶은 분야가 있다는 것을. 다만, 두려웠던 거다. 확신이 부족했던 거다. 실용적이지 않아 보이는 이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게 맞는 건지. 그보단 세속적인 성공을 보장해 줄 뭔가를 해야 하는 건 아닌지.

갈등하고 생각만 하면서 선택하지 못하니 '책을 계획적으로 읽기'는 커녕 놀기만 했다. '당장 내가 마주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책에 관심을 두'지 못했다. 자꾸 쓸데없이 멀리 봤다. 자격증을 따둬야 하는 건 아닌지, 법이나 경제-경영 공부를 해둬야 하는 건 아닌지, 이런 질문 앞에서 어리바리해 하며 시간만 축냈다.

앞으론 그러고 싶지 않다. 멀리 보려는 건 막연한 불안감, 강박, 초조만을 가져올 뿐이다. 그러면 늘 이도 저도 아니게 됐다. 어차피 멀리 보고 계획대로 살고자 해도 살아질 삶이 아니었다.


· 뭘 알고 싶은 건가, 왜 알고 싶은 건가


그렇다면 내가 좀 더 밀도 있게 알고 싶은 게 뭘까. 

스피노자는 지성교정론에서 이런 말을 했다.



[통상의 삶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모든 일이 헛되고 부질없음을 경험이 나에게 가르쳐준 이후 (...) 나는 마침내 결심했다. 참된 선()이면서 전파될 수 있는 것, 그리고 오직 그것만으로도 다른 모든 것이 물러나고 마음이 감응될 어떤 것이 있는지, 나아가 일단 발견하고 획득하고 나면 연속적이면서 최고인 기쁨을 영원히 맛보게 해줄 어떤 것이 있는지 찾아보기로 말이다.]

 

내가 알고 싶은 건 저 이다. 2년 전 독서 정산에서 버린다고 말했던 '좋은 삶'에 대한 탐구라고도 할 수 있겠다. (행복한 삶, 의미있는 삶에 대한 탐구라고 해도 좋다) 그때는 이 탐구 행위 자체가 현실을 사는 걸 자꾸 방해한다고 생각했기에 그만두고자 했다. 어쨌든 현실 속으로 들어가 부딪쳐 보는 게 중요했다.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방구석에서 내 자아만 들여다보는 것도 아니고, 구체적인 현실에 들어가 사람과 타인의 욕망과 부딪히며 벌어먹고 살고 있으니까.

''을 알고 싶은 이유는 일단 느껴버렸기 때문이다. '헛되고 부질없음'을 말이다. 내가 자라온 환경, 배경, 내가 겪은 사건들이 끼친 충격이 나를 계속 이쪽으로 몰고 간다. 그래서 나는 알고 싶었다. 스피노자가 말하듯, 오직 그것만으로도 마음을 감응시키며 연속적이며 최고인 기쁨을 맛보게 할 그런 선이 존재하는지. 어떻게 하면 긍정적인 정서를 더 자주 느끼며 자유롭게 살다가 후회 없이 죽을 수 있는지.

아직 구체적이진 않지만 그 선이라는 길을 어느 정도 제시한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알아보고 싶은 길은 스피노자가 말하는 지복에 이르는 길과 비슷하고, 붓다가 말하는 해탈에 이르는 길과 비슷하다. 또 한편으로는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음(SBNR)'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가려는 길과 비슷하다. 물론 이 길이라는 것들은 앎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꾸준한 실천이 동반되어야 한다. 인연(因緣)에 대한 자각, 역량의 증대를 위한 노력, 자유를 위한 노력, 읽고 쓰기, 명상하기, 봉사하기 등 부단히 해나가야 할 일들이 많다. 궁극적으로는 그 길 자체에 연연하지 않으면서도 그 길이 체화된 상태가 되어야 한다. 또한, 이 길을 가는 데에는 심리학, 뇌과학 등과 같은 현대의 과학적 지식이 필요하기에 이에 대해서도 부단히 공부할 필요가 있다.


4. 앞으로 읽어나갈 책들


· 그렇다면 어떤 책들을 읽어나가야 하는 걸까


1) 큰 줄기에 관하여


큰 줄기는 저 ''이라는 개념을 구체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들일 것이다. 하지만 저 개념은 탐구하고자 하는 사람이 세상과 사회, 타인과 자기를 인식하는 방식 또는 세계관에 따라 구체화의 결과가 달라지는 만큼, 나는 그 길이 스피노자나 붓다가 말하는 길, 종교적이진 않지만 영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가려는 길과 유사하다는 정도로 대략적인 그림을 그려놓아야 했다. 이 길은 초월성, 초월적인 존재를 거부하는 내재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가고자 하는 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메인은 스피노자의 에티카와 붓다의 가르침을 설파한 책들일 것이다. 붓다의 가르침을 설파한 책들로는 많아서 열거하긴 어렵지만 공부의 관점에서는 나가르주나의 중론과 다르마키르티의 인식론 정도를 꼽을 수 있겠다. 하지만 스피노자나 붓다는 우리가 아는 만큼 세상과 인간에 대해 알지 못했기에, 물리학, 생물학, 심리학, 뇌과학과 같은 현대의 과학적 지식이 필요하다. 그들의 생각을 보완하고 수정하고 가다듬기 위해서다. 또한, 초월성을 거부하고 내재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길인 만큼, 초월성 또는 종교가 어떻게 구성되어왔는지, 무엇을 전제로 하는지를 살피고, 반대로 내재성의 역사와 그것은 무엇을 전제로 하는지, 그리고 초월성을 지향하는 삶과 내재성을 지향하는 삶이 어떤 부분에서 다른지 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쪽 분야의 책으로는 들뢰즈나 프랑수아 줄리앙의 저서 등을 꼽을 수 있다.

대강 이런 책들이다. 단기간에 읽을 책들은 아니고 아마 죽기 전까지 반복해서 곱씹고 천천히 읽어나가야 할 테다. 이 거만 종일 보고 사는 삶이 아닌 만큼 오래 걸릴 것이다. 또한, 위에서 대략적으로 그려놓은 그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나와 세상,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더 잘 알아야 하기에 문학, 사회, 정치, 경제와 관련된 책들도 읽을 필요가 있다. 문학은 간접 경험이 가져다주는 여러 이점이 있다는 점에서 관심이 있고, 사회 쪽에서는 빈부격차와 젠더 문제에, 정치 쪽에서는 민주-공화-자유주의와 사익과 공익 사이의 갈등 관계에, 경제 쪽에서는 주류경제학과 폴라니, 포스트 케인지언 쪽에 관심이 있는 것 같다. 아직 구체적으로 내가 뭘 더 좋아하는지 잘 모르는 상황이다. 관심사가 잡다하다.

마지막으로, 지적 호기심이기도 하고 그 ''또는 '좋은 삶'을 살기 위한 수단으로서 재테크 - 특히 투자 쪽을 두 번째 큰 줄기로 삼아 공부해보고 싶다. 돈에 큰 욕심은 없지만 그냥 내 몸과 사랑하는 사람이 누울 따뜻한 공간이 있으면 좋겠고, 읽고 싶은 책 편히 사고 보관해놓을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나를 성장시키기 위한 경험에도 돈이 필요할 테고 말이다. 대강 이 정도로 정리해볼 수 있겠다.


2) 스피노자와 붓다, 초월성과 내재성, 과학








 






우선 메인은 스피노자와 붓다다. 스피노자의 저서로는 에티카, 지성교정론, 데카르트 철학의 원리, 정치론,신학정치론, 스피노자 서간집등이 있고 붓다의 가르침을 설파한 책들에서 주요 목표로 독파하고 싶은 텍스트는 나가르주나의 중론, 도사키 히로마사의 불교인식론 연구, 금강경등이 있다. 그런데 이런 책들은 읽어나가는 데 필요한 씨앗도서가 중요하다. 바로 읽으면 이해도 안 가고 흥미를 잃기 십상. 씨앗도서는 이만교 선생이 글쓰기 공작소란 책에서 썼던 단어인데 여기에서 씨앗도서는 한 개인에게 너무 중요한, 동기를 부여하는, 온갖 자극을 주는 책을 뜻한다. 이 외에도 다른 의미를 더 부여했던 것 같지만 기억은 나지 않는다. 여튼, 나는 이 단어를 좀 더 직관적인 의미로 사용한다. 그야말로 씨앗이 되는 도서다. 뿌리가 자라고 기둥과 줄기를 만들어내는 책. 문학에 한정하자면 내게 온갖 자극을 주는, 영감이 되는 플롯과 문장들이 들어가 있는 책이겠지만 그 외의 분야에서는 특정 관심사를 심화해나가거나 메인 텍스트를 읽는 데 필요한 핵심 구조, 개념어들, 맥락, 연구사 등이 잘 정리되어 있는 책을 뜻한다. 입문서라고도 할 수 있겠다.

스피노자의 저서들을 읽기 위한 씨앗도서로는 손기태 선생의 고요한 폭풍, 스피노자가 대표적이다. 이걸 기준으로 욕망하는 힘, 스피노자 인문학, 비참한 날엔 스피노자,에티카, 자유와 긍정의 철학정도를 읽은 후 좀 더 전문적인 책들을 읽으면 좋은 것 같다. 들뢰즈, 모로, 마트롱, 마슈레의 연구서, 그리고 특히 내들러가 쓴 책들은 스피노자를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다. 21년엔 스피노자의 책들과 관련 논문들을 좀 많이 읽어보고 싶긴 하다. 스피노자로 박사 학위를 받으신 좋은 선생님들이 많기 때문에 이분들의 논문에서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나가르주나의 중론을 읽기 위한 씨앗도서로는 아주 훌륭한 두 책이 있다. 중론 전문가 김성철 선생이 쓴 중론, 논리로부터의 해탈 논리에 의한 해탈과 김영진 선생의 공이란 무엇인가. 이 두 책을 기초로 가츠라 쇼루와 고시마 기요타카가 쓴 중론, 김상환 선생의 용수의 사유, 김성철 선생의 중관사상등을 읽어볼 계획이다. 불교 인식론은 읽어 본 책이 없어서 대충 찾아본 바로는 가츠라 쇼루의 불교 인식론과 논리학, 권서용 선생의 다르마키르티와 불교인식론, 아포하정도를 꼽을 수 있었다. 붓다의 가르침을 설명하는 좋은 책들도 많은 만큼 - 예를 들자면 김사업 선생의 책들이나 홍창성 선생의 책들. 읽어봐야 할 좋은 책들이 참 많다... - 꾸준히 읽어볼 계획이다.












초월성 및 내재성과 관련된 책들은 무지 많다. 쓰다 보니 평생 읽어도 다 읽을 수 있지 모르겠단 생각은 들지만 일단 적어는 봐야겠다. 메인 텍스트는 프랑수아 줄리앙의 책과 들뢰즈의 책이다. 프랑수아 줄리앙의 책들은 번역된 게 많은데, 일단 사물의 성향운행과 창조를 읽는 게 목표다. 동서비교를 다룬 책인 만큼 기본적으로 서양(대략 그리스)과 동양(대략 중국)의 주된 사유의 특징인 초월성(창조)과 내재성(운행)을 읽어낼 수 있는 텍스트를 이해하고 있는 게 중요하다. 예를 들자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이라던가 중국인의 사유방식 또는 왕부지의 철학이라던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범주들. 명제에 관하여와 그라네의 중국사유는 대략적으로 이해하고 가야 할 것 같은데, 사실 몇 가지 텍스트로는 부족하고 큰 흐름을 이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들을 좀 많이 읽어봐야 할 듯하다. 기독교 사상, 교부철학, 종교철학에 대한 지식도 필요할 테고...






















씨앗도서로는 내재성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이 책에서 들뢰즈와 프랑수아 줄리앙이 만난다. 읽고자 하는 들뢰즈의 책으로는 가타리와의 공저보다는 단독 저서, 특히 차이와 반복의미의 논리. 들뢰즈의 책을 읽는 데 도움이 되는 씨앗도서는 꽤 많은 편이라 하나씩 읽어나가보면 될 것 같다.



 









과학은 크게 물리학, 뇌과학, 심리학, 다윈에 대한 개괄적인 지식을 가져보는 게 목표긴 하다. 물리학의 씨앗도서로는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 뇌과학의 씨앗도서로는 김수용 교수의 진짜 나를 만나는 뇌 과학 시간, 다윈에 대한 씨앗도서로는 장대익 교수의 다윈의 식탁정도가 있다. 이걸 기초로 과학자들이 이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우주의 기원을 어떻게 추측하고 있는지, 생명의 탄생 및 인간의 진화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인간의 의식, 기억, 감정, 욕망 등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알아보고 싶다. 특히, 심리학 쪽에 관심이 많은 만큼 이 쪽의 관심사는 앞의 물리학, 뇌과학, 다원 쪽보다는 훨씬 세분화되어 있다. 주로 '감정' 또는 '인간의 특정 상태'를 기초로한 단독 저서들에 관심이 많다. 예를 들자면, 자존감, 낙관성, 수치심, 죄책감, 정서 등. 그리고 행복한 삶, 의미있는 삶과 관련된 뇌와 삶의 의미, 종교의 바깥에서 의미를 찾다, 인생의 모든 의미등도 참고해볼 수 있겠다.





































3) 재테크 - 특히 투자


다음으로 좀 꾸준히 보고 싶은 분야가 재테크 관련 책, 특히 투자 관련 책이다. 아는 게 많이 없기에 크게 할 말은 없지만 가치 투자 쪽을 파볼 생각이다. 씨앗도서로는 최준철 대표의 한국형 가치투자 전략과 이강연 선생의 대한민국 주식투자자를 위한 완벽한 제무재표 읽기, 이래학 선생의 전자공시 100%활용법, 뉴욕주민의 뉴욕주민의 진짜 미국식 주식투자정도를 기본으로 삼아 읽어나갈 계획이다.

찾아둔 필독서는 많다. 전설로 떠나는 월가의 영웅, 주식 시장을 이기는 작은 책, 현명한 초보투자자, 전략적 가치투자, 현명한 투자자, 가치투자, 주식황제 존 네프처럼 하라라던가 위대한 기업에 투자하라, 초과수익 바이블, 워렌버핏 바이블이라던가. 역시나 인생은 짧은데 읽은 책은 참 많다는 걸 다시금 느낀다.



 













4) 문학, 사회, 정치, 경제 등 기타


문학은 강렬한 느낌을 선사했던 책을 재독하거나 그런 느낌을 또 줄 새로운 책을 찾는 게 관건이겠다. 쿤데라의 책, 플로베르의 책, 톨스토이의 책처럼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을 또 어디서 찾아볼 수 있으려나. 찰스 부코스키, 필립 로스, 존 버거, 정세랑, 이기호 작가들 등의 책을 좀 볼까 생각 중이긴 하다. 추상적인 개념을 다루는 책을 읽다 보면 점점 현실과의 매개를 신경 쓰지 않게 되는 경향이 있는 만큼, 일상어를 잃지 않도록, 그 추상적인 구조와 개념이 실생활에서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 그 감을 잃지 않도록 문학은 자주 읽어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일상을 살면서 생각하고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는 쓰기 행위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구체적인 경험에서 길어낸 글을 종종 써줘야 한다.



















 



사회 부분에선 읽는다면 아마 젠더 문제를 1순위로 두고 읽지 않을까 싶다. 사람들을 당위에 굴레에 가두고 자유를 앗아가는 가부장제의 악영향에 관심이 많다. 아는 책은 많지 않다. 벨 훅스의 책과 김미덕 선생의 책을 인상 깊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두 책은 이분법적이지 않고, 우리가 궁극적으로 목표로 삼아야 할 대상에 대해 환기를 해주기도 하고, 조야하지도 않다. 벨 훅스의 책은 일상의 언어로 그 작업을 잘 수행했던 것 같고 김미덕 선생의 책은 학술적인 언어로 그 작업을 잘 수행했던 것 같다. 특히, 김미덕 선생의 이 책은 정말 좋은 데 반해 많은 사람이 읽지 않은 게 좀 아쉽다.







정치는 민주주의-자유주의-공화주의, 그리고 공익과 사익의 갈등이 주요 관심사다. 씨앗도서는 꽤 있다. 민주주의는 데이비드 헬드의 민주주의의 모델들이 훌륭하고 자유주의쪽으론 자유주의에 관한 짧은 에세이들, 현대자유주의 정치 철학의 이해,현대 미국사상이 훌륭하다. 공화주의는 비롤리의 공화주의, 그리고 공익과 사익의 갈등을 다뤘던 논문으로 김도균 교수의 법원리로서의 공익이 기억이 난다. 또한, 이한 교수의 여러 논문도 도움이 될 듯하다. 이 정도를 씨앗도서로 삼고 롤즈나 드워킨의 저서들, 페팃이나 포칵의 저서들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경제 쪽은 문학, 젠더 문제, 정치에 대한 얄팍한 지식보다 더 얕은 수준이라, 경제상식 쪽도 궁금하고, 대학교 저학년 학부 수준에서 배우는 교과서적 지식 쪽도 궁금하다. 주류 경제학 - 특히 거시경제학 - 과 폴라니나 케인즈에 관심이 좀 있다.






















기타 관심사도 꽤 있으나 어차피 다 읽지 못할 책 같으니 일단 이 정도만 써야겠다.


· 2021년을 맞이하며 하고 싶은 다짐


20년도 이제 끝이다. 아쉬운 한 해를 뒤로하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며 내게 하는 다짐이다.


1) 할 수 있는 만큼, 꾸준히 읽자 : 저 많은 책을 한 두해 만에 다 읽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직장 상황에 따라 책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 수도 있고. 제 욕심에 못 이겨 초조해져 생각만 많아지고 이것저것 건드리다가 독서에 밀도가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럴 땐 너무 욕심부리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 짧은 시간이라도 꾸준히 읽자. 긴 호흡으로, 할 수 있는 만큼, 꾸준히가 중요하다. '이것밖에'가 아니라 '이만큼이나 읽었고, 잘 읽었고, 이런 걸 배웠다'라고 말하자.


2) 일상 언어를 잃지 말자 : 철학 책을 많이 읽다 보면 타인의 개념에 잡아먹히는 경우가 많았다. 학문적인 맥락에서 사용되어야 할 특정 개념을 일부만 따와 일상 언어와 섞어 쓰는 경우도 잦았다. 주의해야 하는 부분이다. 내가 특정 학자의 철학 체계 - 나는 이걸 껍데기라고 말한다 - 를 공부했다면, 학자가 아닌 이상 더 중요한 일은 그 체계를 현실적으로 구현 또는 실천, 적용하는 것이다. 알맹이를 채워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상 언어를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 일상 언어는 우리가 평상시에 사용하는, 또는, 세상과 내면을 묘사하기 위한 구체적인 언어다. MBTI의 유형을 빌려오자면, 직관적인 언어보다는 감각적인 언어에 가깝다. 추상적인 개념을 공부했다면 이 개념어들을 일상언어로 풀어보는 일이 필요하다.

감각적인 언어로 나의 내면을 돌아봤을 때, 파봤을 때만 나는 성장할 수 있었다. 나를 더 잘 알 수 있었다. 일상 언어를 잘 벼리자. 문학이 - 소설, 산문, - 중요한 이유다.


3) 중심은 '' : 책과 나와의 관계가 중요한 거지 남의 시선이 중요한 게 아니다. 책이 내게 주는 정서적 자극 - 그게 불편함이든 즐거움이든 - 을 지나치지 말고 음미하며 내 안의 영감을 중심으로 구체화한 후 뼈대를 세워 갈무리해보는 게 중요하다. 처음부터 책을 너무 다양한 방식으로 읽으려고, 다양한 해석을 다 고려하다 보면 나만의 뼈대를 세우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4) 책을 계획적으로 읽는다 : 이번 독서 정산에서 굳이 주저리주저리 읽고 싶은 책을 끼적인 이유였다. 책을 좀 더 계획적으로 읽기 위해서. 적어도 내가 알고자 하는 관심사를 명확히 하기 위해 나아가야 할 단계를 파악하고 그 단계를 착실히 밟아가려면 대강의 계획이라도 있으면 좀 더 효율적인 것 같다. 물론 이 계획은 내가 마주한 문제, 또는 문제의식의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5) 정리하지 않으면 안 읽으니만 못하다 : 입력만 하는 독서를 주의하자. 입력만 하는 독서엔 ''가 없다. 타인의 생각, 영감만을 반복해서 읊조리게 될 뿐이다. 기억에 남는 것도 얼마 없다. 또한, 정리되지 않은 산만한 찌꺼기들만 양산해 머릿속을 복잡하게만 한다. 어느 정도 기본 개념과 맥락을 파악하기 위한 독서, 굳이 정리하지 않아도 될 독서라면 정리가 없어도 괜찮지만, 출력이 필요한 책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럴 땐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내 언어로 정리해보기도 하고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명료화해 메모해보기도 하고, 생각에 어느 정도 체계가 갖춰지면 독후감이나 서평, 요약본을 끼적여보는 것도 좋다. 여튼, 중요한 건 정리하지 않으면 안 읽으니만 못할 때가 있다는 사실.


6) 책 읽는 데 돈을 아끼지 말자 : 전역하고 나서 책을 많이 사고는 그 뒤로 책을 많이 산 적이 없었다. 관심사가 바뀌고 문제의식도 더 심화했는데도 책장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내가 아직 나를 더 잘 모르던 때, 막연한 호기심에 사뒀던 책들. 그런 만큼 책장에는 현재의 내가 없었다. 나름 돈 아낀다고 각종 도서관, 전자책 도서관을 애용했으나 한계가 있었다. 소장할 필요가 있는 책들이 꽤 많았다.

일단 책 사는 데 돈을 아끼지 말자. 책 사는 데 돈 아껴서 좋았던 적이 없었다. 괜히 시간 날리고 생각의 밀도만 떨어지던 때가 잦았다. 좋은 전자책 단말기도 21년에 하나 장만하고 싶다. 올해 아마존 오아시스 킨들을 사서 써본 후에야 알았다. 각종 전자책 도서관 호환이 되지 않는 모델은, 화면이 10인치 정도가 되지 않는 모델은 나한테 잘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40만 원에 20만 원만 더 보탰으면 오닉스 노트3를 사는 건데 경솔했다. 오아시스 킨들 몇 번 쓰지도 않았는데 중고로 팔아야 하나...


7) 집에서 책을 읽을 환경을 조성하자 : 코로나로 카페나 도서관을 가기 어려워 집에서 책을 읽어야 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집은 쉬는 공간이다 보니 자꾸 눕게 되고 TV나 유튜브에 눈이 갈 때가 잦았다. 코로나가 금방 잡힐 것 같진 않으니 어떻게든 방의 일부 공간을 공부가 가능한 환경으로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 아직도 몸이 그렇게 인식을 안 해서 문제긴 한데 더 노력해봐야겠다.


8) 이유를 잊지 말자 : 지적 쾌감도 있지만 자유로운 삶, 인연 따라 사는 삶, 역량을 늘려가는 삶(성장하는 삶), 나를 알고 세상을 알아가는 삶을 살기 위해 책을 읽자. , 그리고 다음엔 독서 정산은 빨리하자..! 적어도 11월 말부터해야 12월 안에 다른 정산도 끝낼 수 있으니.


안녕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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