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요일(3월 26일)에는 대구건축박람회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사람구경 열나게 했다.
박람회를 보고나니,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다.
일요일은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현이처럼 방에서 뒹굴뒹굴 게으름을 피웠다.

3월 28일. 쌈채소 파종한 땅에 물을 주었다. 물을 주면 빨리 싹이 튼다고 한다.

볕좋은 마당에 빨래를 널었다. 바깥에 빨래를 말린 게 얼마만인지.
공부하러 도시로 나온 후 처음인 것 같다.
저녁에 세수하고 바짝 마른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니 땡볕 냄새가 묻어났다.
"언니, 수건에서 햇볕 냄새가 난다!"
이 냄새를 설명할 길이 없으니 그냥 <햇볕 냄새>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언어는 늘 감각을 뒤따른다. 고로 신체는 언어를 포괄한다.

슬레트를 해체하고 바깥에 전기선을 끊었다.
새집을 짓기까지 바깥에서 임시로 쓸 전기선을 다시 설치했다.
비 맞지 않게 지붕도 만들었다. 쓸 수 있는 전원은 세 개. 전기삼총사의 집이다.
"전기삼총사야, 비 맞지 말고, 스파크 일으키지 말고, 집 다 지을 때까지 잘 버텨다오."

이제 곳곳에 해체작업이 시작되었다. 1차로 마당의 시야를 가리고 있던 진돗개집을 해체했다.
스치로폼으로 단열까지 고려한 개집은 얼마나 꼼꼼하게 만들었는지 분리하는데 꽤 시간이 들었다.

2차로 지붕의 나무해체작업에 돌입하기 전, 장독을 윗마당으로 옮기고

염색용 황토흙이 담긴 고무다라이도 한쪽으로 치웠다.

옮기다가 흘린 흙은 따로 담아뒀다. 너무 곱고 예뻐서 그냥 내버려두기가 아까웠다.
이걸로 황토마사지를 해볼까나~~ 저녁에 단체 황토 발마사지 한번 해야겠다.^^

사다리를 타고 지붕에 올라갔다.

바닥에 난방용 왕겨가 수북이 깔려 있었다. 바닥의 나무를 해체하려면 왕겨를 쓸어야 한다.

말끔하게 왕겨를 쓸어낸 모습. 이정도면 왕겨때문에 나무에 박힌 못을 못보는 일은 없겠지.
땡볕을 견디고 먼지를 뒤집어쓰는 것도 불사했으니 오늘은 이것으로 족하다.
갑자기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죄수들이 지붕에서 맥주 한잔 하는 장면이 생각났다.

"제 동료들에게 맥주 세 병씩만 주세요.
야외에서 일하는 남자들은 맥주 한 잔에 더 일할 맛이 난다는게 저의 생각입니다."
그렇게 해서 1949년 봄에 지붕 보수작업을 했던 죄수들 모두는
쇼생크 역사상 최고로 고약했던 간수가 제공한 얼음처럼 차가운 맥주를 마시게 되었다.
우린 마치 자유인처럼 앉아서 햇빛을 받으며 마셨다.
꼭 우리들 집 지붕을 고치고 있는 기분이었다.
우린 부러울 게 없었다. - 영화 <쇼생크 탈출> 중에서
형부와 나는 지붕 꼭대기에 걸터 앉아 맥주를 마셨다.
우린 마치 자유인처럼 앉아서 햇빛을 받으며 마셨다.
우린 부러울 게 없었다.

지붕 위에서는 또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그것은 우리의 시선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각을 갖는다는 것은 이런 물리적인 변화에서 가능하다.
몸의 균형감각이 달라졌으므로 직접적이고 즉각적이다.

평평한 땅이 아니라 지붕의 사선이 주는 감각, 시야, 풍경.
새로운 세상은 그것을 체험하려는 이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형부의 처녀작 '기와 지붕'의 결함이 한 눈에 들어오고

지붕에서 작업하는 내내 지붕 주위를 배회하는 현이.
위에서 내려다보니 더욱 애처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