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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9일  맑다가 흐리다가 바람불다

 

아침밥을 먹고 맨처음 하는 일은 채소밭 들여다 보기다. 땅이 말라있는지, 싹이 돋았는지 관찰한다.

오늘은 땅이 촉촉하다. 헌데 땅밖엔 아무 소식도 없고 조용하다.

 

 

그다음 하는 일은 현이와

 

백이의 간식을 주는 일.

나를 쳐다보는 현이의 눈빛은 애절하고 백이는 기품이 있다.

현이는 애걸복걸 졸라대고 백이는 늠름하게 때를 기다린다.

흑과 백의 차이는 극명하다. 각자 자기 나름의 선택이 있다.

그런 선택도 다 자기 깜냥이 있는 것 같다.

 

내가 지향했고 바람직한 것으로 믿어온 것은 백이의 선택이다.

헌데 지금은 현이의 선택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현이처럼 애걸복걸하지 않으면 아무도 그 마음을 모른다.

어련히 알아주지 않을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그렇다면 나는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고 있었던가?

그랬던 것 같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다.

누군가를 위해 살지 않기로 했으므로.

그런 삶은 내 삶이 아니므로.

 

 

 

밑에선 이불빨래를 하고

 

 

위에선 나무 지붕 해체작업을 했다.

 

 

 

이제, 지붕 위에서 바라본 풍경을 감상해 보시라.

 

 

 

 

 

 

 

 

 

 

일을 마치고 뒷산 산책에 나섰다. 소나무의 잔가지들이 서로서로를 찌르듯이 빼곡하다.

소나무를 너무 밀집해서 심어서 그렇단다.

나무끼리도 거리가 필요하듯이 사람과 사람사이에도 거리가 있어야 한다.

 

 

 

산책길에 만난 산초나무. 뾰족한 가시가 돋혀 있다. 열매를 갈아서 추어탕에 뿌려먹는다.

 

노란꽃이 자잘하게 피는 생강나무.

"저 나무를 캐면 생강이 나는구나."

"아니, 나무에서 생강냄새가 나서 생강나무라고 하는거야."

"......"

아, 나는 너무 무식하다.

 

 

 

토끼가 파놓은 굴도 보고

 

 

산 깊숙히 핀 진달래꽃잎도 따서 먹었다.

 

 

 

 

 

산에는 파릇파릇 새 잎들이 돋아나고

 

 

 

지천에 널려 있는 쑥을 캤다. 저녁에는 쑥국을 끓여 먹어야지.

된장 풀고 들깨 넣어서 한소끔 끓이면 끝.

이른 봄에 처음 캔 쑥은 보약 중의 보약.

산에는 나무도 많고 보약도 많은데 내 눈에는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사람들은 산이라고 하면 오르려고만 하고

산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산을 안다는 건 등산가가 알고 있는 산과는 다른 것일 게다. 

산은 수많은 비밀을 가지고 있지만 캐내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무한정의 보물상자다.

오늘 하나 알았으니 내일 하나 알면 된다.

 

 

 

저녁에 형부가 작은 방에 불을 때주었다. 불땐 방에서 외할머니집 냄새가 났다. 

아궁이에서 타는 불을 보고 있노라니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얼굴이 보인다.

아, 옛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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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3월 26일)에는 대구건축박람회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사람구경 열나게 했다.

박람회를 보고나니,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다.

일요일은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현이처럼 방에서 뒹굴뒹굴 게으름을 피웠다.

 

 

 

 

3월 28일. 쌈채소 파종한 땅에 물을 주었다. 물을 주면 빨리 싹이 튼다고 한다.

 

 

 

볕좋은 마당에 빨래를 널었다. 바깥에 빨래를 말린 게 얼마만인지. 

공부하러 도시로 나온 후 처음인 것 같다. 

저녁에 세수하고 바짝 마른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니 땡볕 냄새가 묻어났다.

"언니, 수건에서 햇볕 냄새가 난다!"

이 냄새를 설명할 길이 없으니 그냥 <햇볕 냄새>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언어는 늘 감각을 뒤따른다. 고로 신체는 언어를 포괄한다.

 

 

슬레트를 해체하고 바깥에 전기선을 끊었다.

새집을 짓기까지 바깥에서 임시로 쓸 전기선을 다시 설치했다.

비 맞지 않게 지붕도 만들었다. 쓸 수 있는 전원은 세 개. 전기삼총사의 집이다. 

"전기삼총사야, 비 맞지 말고, 스파크 일으키지 말고, 집 다 지을 때까지 잘 버텨다오."

 

 

 

이제 곳곳에 해체작업이 시작되었다. 1차로 마당의 시야를 가리고 있던 진돗개집을 해체했다. 

스치로폼으로 단열까지 고려한 개집은 얼마나 꼼꼼하게 만들었는지 분리하는데 꽤 시간이 들었다.

 

 

 

 

2차로 지붕의 나무해체작업에 돌입하기 전, 장독을 윗마당으로 옮기고

 

 

염색용 황토흙이 담긴 고무다라이도 한쪽으로 치웠다.

 

옮기다가 흘린 흙은 따로 담아뒀다. 너무 곱고 예뻐서 그냥 내버려두기가 아까웠다.

이걸로 황토마사지를 해볼까나~~ 저녁에 단체 황토 발마사지 한번 해야겠다.^^

 

 

 

사다리를 타고 지붕에 올라갔다.

 

바닥에 난방용 왕겨가 수북이 깔려 있었다. 바닥의 나무를 해체하려면 왕겨를 쓸어야 한다.

 

 

말끔하게 왕겨를 쓸어낸 모습. 이정도면 왕겨때문에 나무에 박힌 못을 못보는 일은 없겠지.

땡볕을 견디고 먼지를 뒤집어쓰는 것도 불사했으니 오늘은 이것으로 족하다.

갑자기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죄수들이 지붕에서 맥주 한잔 하는 장면이 생각났다.

 

 

 

 

"제 동료들에게 맥주 세 병씩만 주세요.

야외에서 일하는 남자들은 맥주 한 잔에 더 일할 맛이 난다는게 저의 생각입니다."

그렇게 해서 1949년 봄에 지붕 보수작업을 했던 죄수들 모두는

쇼생크 역사상 최고로 고약했던 간수가 제공한 얼음처럼 차가운 맥주를 마시게 되었다.

우린 마치 자유인처럼 앉아서 햇빛을 받으며 마셨다.

꼭 우리들 집 지붕을 고치고 있는 기분이었다.

우린 부러울 게 없었다.   - 영화 <쇼생크 탈출> 중에서

 

형부와 나는 지붕 꼭대기에 걸터 앉아 맥주를 마셨다.

우린 마치 자유인처럼 앉아서 햇빛을 받으며 마셨다.

우린 부러울 게 없었다.

 

 

 

 

지붕 위에서는 또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그것은 우리의 시선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각을 갖는다는 것은 이런 물리적인 변화에서 가능하다.

몸의 균형감각이 달라졌으므로 직접적이고 즉각적이다.

 

 

 

평평한 땅이 아니라 지붕의 사선이 주는 감각, 시야, 풍경. 

새로운 세상은 그것을 체험하려는 이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형부의 처녀작 '기와 지붕'의 결함이 한 눈에 들어오고

 

지붕에서 작업하는 내내 지붕 주위를 배회하는 현이.

위에서 내려다보니 더욱 애처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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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 자고 나니 땅의 물기가 땅 속으로 쏘옥 들어갔다. 대신 땅의 결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야옹이들의 안식처 지붕.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야옹이가 아침밥을 기다리고 있다.

울 주인이 밥을 언제 지붕으로 얹어주려나? 배고파요.~~~

 

 

 

 

일급발암물질이라고 불리는 슬레트 해체작업을 하고 있다.

그것도 모르고 옛날에는 그 위에다 고기를 구워먹었다지?~~헐!!

 

 

 

 

기와지붕으로 피신한 야옹이. 왠지 처량해.ㅠㅠ

 

 

 

졸지에 집을 잃은 고양이. 이제 어디로 가야하나......?

할 말이 없기는 매한가지구나.

 

 

 

 

 슬레트 해체 작업이 끝났다. 앙상한 뼈대만 남은 나무 골조들.

 

 

 

 

 

늙은 진돗개 부부가 살았던 집 위의 슬레트도 사라졌다. 

 

 

 

 

이 모든 걸 모아모아~~수거한 슬레트들이 이만큼 모였다.

 

 

 

 

그러나마나 길 위에는 홍매화가 피고

 

 

 

응달에 하얀 목련도 이제 곧 몽우리를 터트릴 기세다.

 

 

 

 

슬레트가 사라진 보일러실에 임시방편으로 투명루프를 설치했다. 이름이 <썬 라이트>란다.

사라진 것이 있으면 새로운 것이 생긴다. 사는 건 어쩌면 썬 라이트처럼 임시방편인지도 모른다.

땜빵 투명루프~썬 라이트.  땜빵 인생~썬 라이트.

야옹이들아, 어차피 사는 건 땜빵 썬 라이트야. 어찌어찌 살아봐.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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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집 지을 마당 앞에 청매화꽃이 폈다. 

 

 

 

 

그곳에는 손때묻은 것, 지나간 것들이, 뭉쳐진 휴지조각처럼 앉아있다.

 

 

 

 

집아, 너는 이제 부서질 운명인 걸 아니?

 

 

 

 

봄맞이 파종. 상추와 쑥갓, 당귀, 모듬채소씨를 샀다.

일할 때 편하게 신고 벗을 수 있는 쓰리빠도 샀다.

이래봐도 형부의 예리한 감각에 낙찰된 쓰리빠다.

아마 거창시장에서 가장 세련된 쓰리빠가 아닐까?

 

 

 

씨를 뿌리는 세심한 손길. 여기까지 하는데 몇가지 선작업이 있었다.

 

1.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비닐을 걷었다.

2. 삽으로 땅을 팠다. 안에 있는 고운 흙이 밖으로 나오게 하는 작업이다. 일명 밭갈기.

3. 괄쿠리로 파헤쳐진 흙을 일구었다. 흙을 돋우고 평평하게 하는 작업이다. 작은 둔덕만들기

4. 검지손으로 씨를 뿌릴 고랑을 만들어 준다.

5. 이제 고랑에 씨를 솔솔 뿌려준다.

6. 씨를 뿌린 다음 덩어리진 흙으로 고랑을 메워준다.

 

그러니까 씨는 그냥 뿌리는 게 아니다. 

 

 

 

이 씨앗이 여자들에게 그렇게 좋다는 당귀다.

여성의 명약 <사물탕>에 군약으로 들어가는 당귀는 피를 생성하는데 탁월하다.

 

 

 

씨를 다 뿌리고 펜스까지 쳤다. 왜 펜스를 쳤을까요? 도둑놈이 따가지 말라고?!

글쎄요.....?

 

 

 

 

펜스를 치기 전의 현이. 흙에다 코를 박고 있네요.

 

 펜스를 친 후 현이. 시무룩해.^^ㅋㅋㅋ

 

 

 

새로 산 슬피러를 신고 우엉과 한 컷. 우엉을 찾아보세요.

.

.

.

우엉, 찾아보셨나요? 눈을 씻고 봐도 우엉이 안 보인다구요?

슬리퍼 앞에 다섯 장의 잎이 보이나요? 그게 우엉잎이에요. 그걸 파면 우엉뿌리가 있지요.

간장에 조려 김밥에 넣으면 최고의 김밥이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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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나에게 어떤 희망을 갖고 있었다.

아마도 그건 집안을 일으킬 새로운 활력소 내지 돌풍 같은 존재가 될 거라는 믿음이었다.

허나 자식은 언제나 부모에게 배반의 장미일 뿐.

세월이 갈수록 자기 양에 차지 않고 허튼 수작만 하자 희망을 절망으로 바꾸셨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직전 절망상태였다. 그때 아버지의 죽음은 벼락같이 왔다.

내 나이 마흔이 넘고 아버지의 절망이 느껴졌다. 그 절망이 나를 덮쳐 왔다.

자식을 칠남매나 낳고 벅찬 희망을 품었을 아버지에게 해드린 게 아무것도 없었다.

돌아가신 후에 보니 그랬다.

이제야 내 절망을 거울삼아 아버지의 절망이 심장을 짓누르는 고통이었음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이 절망을 다른 식으로 돌리고 싶다.

죽음에 이르는 절망이 아니라 창조적인 절망으로 이끌고 싶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아직은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할 말이 남아 있다.

이것들은 어쩌면 아버지가 하고 싶었던 말일지도 모른다.

나의 말을 복원하는 일. 그것은 곧 아버지의 말을 복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버지와 나는 이렇게 연결되어 있다. 이건 먼먼 사람살이의 한순간이기도 하다.

내 삶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역사인 것.

  

  

집짓기는 구체적인 일이고 몸으로 체득할 수 있는 자기 실천의 양식이다.

무너진 것을 일으켜 세우고, 흩어져 있는 감각들을 응집한다.

집짓기는 재건의 의미가 있다.

말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듯 집짓기는 말짓기다.

몸으로 하는 말의 복원이라고 할까?

집짓기라는 구체적인 활동이 나의 피를 돌게 하고, 아버지를 이끌어내고,

종국에는 내 피로 아버지의 절망을 새로운 기억으로 물들이고 싶다.

아버지의 주름진 절망을 이제 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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