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2일 햇살 가득한 날씨
어제 아침에 비가 와서 공사가 중단되었다.
아침에 잠깐 비가 왔을 뿐인데 공사를 쉰다고 하니 다른 쪽으로 인부를 뺀 게 아닌가 의문이 들었다.
골조를 맡은 사장님은 지금 일을 세 군데 한다.
공연한 의심이 아닌 게 윗집에도 공사를 하는데 그쪽 팀은 일하러 왔기 때문이다.
오늘 날씨는 쾌청하다.
괜시리 하루를 공치고 공사가 재개되었다.
오전에 아저씨들이 터파기 거푸집작업을 끝마쳤다.
오후엔 거푸집에 콘크리트를 넣는 작업을 하면 터파기는 일단 마무리.
아침부터 포크레인이 콘크리트를 실은 레미콘이 들어올 수 있도록 마당 넓히는 작업을 끝냈다.
콘크리트를 거푸집에 골고루 뿌려줄 펌프카도 왔다.
헌데 아뿔싸! 정작 레미콘이 오지 않았다.
골조를 맡은 사장님이 전화를 해보더니 하는 말.
“레미콘이 못 온다네요.”
얘기인즉슨, 어제 공사를 쉬어서 레미콘을 취소했는데, 다시 주문 전화를 하지 않았다는 것.
왜 골조사장님은 주문전화를 하지 않았을까?
대개 전날 비가 와서 공사를 쉬면 그 다음날 공사를 진행하니까 업체가 알아서 자동으로 주문처리를 한다.
기존 업체들은 그걸 아니까 주문전화가 없더라도 레미콘을 배정한다.
헌데 이번에 레미콘 업체는 신규업체다.
골조사장님은 “관행대로” 재주문전화를 하지 않은 것이다.
골조사장님은 싸인이 맞지 않은 업체를 관행을 모르는 미련 곰탱이라고 욕을 한다.
그 앞에서 콜 수사님도, 펌프카 아저씨도 아무 말이 없다.
일이 이렇게 돼버렸는데, 말을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마는 적어도 골조사장님은 콜 수사님과 펌프카 아저씨에게 사과 한마디는 하셔야 했다.
그 한마디를 안 하시니 골조사장님이 사주시겠다는 점심을 뿌리친 펌프카 아저씨는 골조사장님이 가고 나서 십원짜리 욕을 한바탕 하셨다.
내뱉지는 않았지만 그 욕은 아마 콜 수사님도 같이 하시지 않았을까?
이제 이 사회에서 “관행대로”라는 말은 누구나 하는 변명이 되었다.
개인 일이든, 마을 일이든, 직장 일이든, 국가 일이든 “관행대로” 한마디면 유야무야 넘어간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많은 사람들이 관행이 뭔지 모른다.
그러니 그때마다 자기 좋은 대로 갖다 붙이면 그만이다.
정신승리법도 이런 정신승리법이 없다.
‘정신승리법’은 루쉰의 소설 『아Q정전』에서 주인공 아Q의 전략이다.
아Q는 자신이 곤경에 처하거나 굴욕을 당하면 정신승리법을 쓴다.
아Q의 정신승리법은 대개 이렇다.
그는 오른손을 들어 두세 번 자기 뺨을 힘껏 때렸다. 제법 얼얼하니 통증이 왔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평안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자기가 때리고 다른 자기가 맞은 듯했다. 이윽고 자기가 남을 때린 것처럼 ─ 아직 얼얼했지만 ─ 흡족해져 의기양양한 기분으로 드러누웠다.
루쉰전집 2권 『외침/방황』, 「아Q정전」, 그린비, 115쪽
소설 속에서 아Q는 도둑 일당이라는 누명을 쓰고 끝내 공개처형을 당한다.
마지막 순간, 그의 정신승리법은 통하지 않는다.
“사람 살려”라는 외마디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둔하면서도 예리한, 그의 말을 씹어 먹고도 또 육신 이외의 무언가를 씹어 먹으려는 듯 영원히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그를 따라오는 눈길들” 속에서 아Q는 죽음을 맞이한다.
이 사회가 “관행대로”라는 정신승리법을 일삼는 한, 아Q는 언제든 되살아난다.
아니 이미 우리는 아Q 천지 세상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저씨들이 오전 내내 미처 마무리 하지 못한 거푸집 작업을 완료했다.

마당과 이어져 있던 밭을 포크레인으로 걷어냈다. 레미콘이 마당 안쪽까지 들어오려면 차를 돌려야 하기 때문이다.

어둠에 묻혀가는 흙집. 투박하고 불편한 것 투성이지만 나무와 풀, 하늘과는 더없이 자연스럽다.

하늘엔 달이 뜨고 별이 하나둘씩 늘어간다. 고즈넉한 봄밤. 치열했던 낮의 기억을 조금씩 식혀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