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4일 화창한 봄날

 

아침을 먹다말고 느님이 눈물을 보였다.

콜 수사님의 말이 느님을 서운하게 한 것이다.

하고 싶은 것도 많다.”

이 말이 눈물의 씨앗이 되었다.

느님의 눈물을 보고 콜 수사님이 먼저 수저를 놓았고,

참고 있던 느님이 수저를 놓고 숨을 곳을 찾아 나갔다.

나도 수저를 놓고 느님한테 간다.

왜 그래?”

내가 감정 조절을 못해서.”

그 말을 듣자 나도 눈물이 핑 돈다.

느님을 혼자 있게 두자.’

 

콜 수사님은 빨래를 한다.

빨래를 다 하고, 나갔다 오더니 무언가를 사들고 들어왔다.

창문 너머로 보니 방에서 책을 읽고 있는 느님의 어깨를 콜 수사님이 꾸~욱 눌러준다.

사과라도 하신 건가?’

방에 들어가니 느님의 얼굴이 활짝 개었다.

나도 따라 빙긋 웃는다.

 

콜 수사님이 밥을 하신다.

다 된 밥을 넓은 그릇에 담아 가지고 오셨다.

밥을 식히고 소금을 뿌리고 참기름으로 비빈다.

계란 지단과 단무지, 우엉조림, 김치 씻은 것과 취나물 무침.

이 재료로 무엇을 할 것인가?

김밥을 싸려는 것이다.

김밥 싸 가지고 스포츠 파크에 놀러 가자.”

 

김밥이 예쁘게 싸졌다.

가는 길에 어릴 적 소풍가서 먹었던 칠성사이다도 샀다.

스포츠 파크 정자에서 바람을 맞으며 김밥을 먹었다.

그 바람에 귀를 씻고 눈을 씻고 입을 헹군다.

어떻게 인생이 매번 좋을 수만 있는가.

어떻게 인생이 매번 나쁠 수만 있는가.

다만 받아들이되 너와 나의 태도를 바꿔 보자.

 

고통이 삶의 일부라는 건 피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물론 우리는 고통과 문제를 싫어하는 자연스런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의 본질을 바라보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고통이 근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자신은 그런 고통을 받을 이유가 없고 단지 고통의 희생양이라는 거부감이 조금은 누그러질 것입니다. 따라서 일단 이런 진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면, 당신은 고통을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고통의 근본 원인은 무지와 욕망과 미움입니다. 이것들은 마음의 세 가지 독약으로 불립니다. 불교에서 사용할 때 그 단어들은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무지는 흔히 쓰이는 것처럼 어떤 정보를 모른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것은 자아와 모든 현상의 진정한 본질에 대해 근본적으로 잘못 이해한다는 뜻입니다. 사실이 무엇인가에 대한 통찰력을 키우고 욕망과 미움 같은 고통스런 마음을 제거하면, 완전히 순수한 마음의 상태가 되어서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불교의 시각에서 볼 때 삶 속에서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 그런 성찰은 오히려 고통의 근원을 없애기 위해 수행을 하도록 용기를 불어넣어줍니다. 만일 희망도 없고 고통에서 벗어날 가능성도 없다면 고통에 대한 생각은 단지 우울하고 매우 부정적인 생각이 될 것입니다.

달라이 라마, 하워드 커틀러,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 김영사, 156~159

 

무지와 욕망과 미움에 휩싸일 때

김밥을 싸자. 그리고 바람을 맞자.

무지와 욕망과 미움이 그 바람에 날려 가버리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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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6-04-29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밥을 싸는 방법이 있었군요 ^^
그런데 저렇게 예쁘게, 잘 만들 자신이 없네요.

윈디 2016-04-29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너무 예쁘죠. 맛도 끝내줘요.
그래도 김밥을 싸야 할 때 정성들여 싸 보세요.
아마 미움이 싸는 동안 사라질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