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혁명 그리고 퀘스트 - 하드SF 단편선
위래 외 지음 / 구픽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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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래-마젠타 C. 세레스의 사랑과 혁명
수없이 많은 세기가 지난 우주 제국 시대 천재 지휘자 류진.
"류진은 어떤 사람이었죠?"라는 첫 문장을 지나 몇 줄을 더 읽어보면 '당사자가 나서서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냐고 물어보는 게 흔한 일은 아니'라고 답하는 주인공이 나온다.
단순히 기억을 잃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저는 사람을 일곱이나 죽였으니까요."
13페이지의 이 문장을 읽으면 천재 지휘관이라는 류진이 어떤 사람인가 더욱 궁금해지는데.
다 읽고 나면 사랑과 혁명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단편.

남세오-별의 고리
양자역학으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학자들 앞에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라는 시위 피켓을 들고 나타난 미지의 인물에 호기심을 느끼는 상우.
피켓에 적혀 있던 이상한 숫자를 정확히 기억해 낸 상우는 아인슈타인과 양자역학에 대해 계속 파헤친다.
지나친 호기심은 좋지 않다는 걸 느끼게 해준 단편.

해도연-거대한 화구
바다 세상에서 온 사람들에게 우주 세상의 '수많은 별빛은 아득한 미지에 대한 공포에 짓눌려 한참이나 숨을 쉬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118페이지)
얼음 위의 세상, 토야의 표면을 개발하기 위해 꾸려진 조사팀에 표면학자 포니아와 하늘학자 하랑이 누미르교수와 함께 직접 표면 위로 나온다.
바다 세상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교과서에 실린 얼음 표면 위의 하늘 사진을 좋아하지 않는 포니아.
60년전에 표면학, 하늘학이라는 학문이 생겼다는 말로 하랑과 포니아가 바다 세상 사람이라는 걸 다시 알게 된다.
포니아가 '거대한 화구'라고 말하며 공포를 느끼자 포니아에게 하랑이 하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글쎄, 미지의 대상이 두려울 수는 있어. 근데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해. 중략 네가 가진 모습 대부분은 내가 알고 싶어도 결코 알 수 없을 거라는 것도. 그렇다고 네가 두려워지지는 않아. 오히려 더 알아갈 모습이 있어서 기대가 되는걸."
137~138페이지의 이 대화가 어쩌면 바다 세상 사람들에게 너무 무섭게 느껴진 '거대한 화구'에 이름을 붙이고 방법을 찾아가려는 마지막 장에 가까운 말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어쩌면 이건 사랑이며 혁명이고 퀘스트.

이하진-지오의 의지
승화의 머리 위에 떠 있는 달을 지배하는 시스템 지오.
제 3차 대전 발발 후 지오를 이용해 전쟁에서 승리한 연합군. 이 승리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승화는 큰 죄책감에 시달린다.
승화는 원진형대장으로부터 '승전 시대의 권력자가 전 세계를 상대로 하여 목숨을 보전하는 유치한 방법'(213페이지)인 인증 시스템을 받을 것을 권유받지만 사용하지 않는다.
공멸,지배, 자멸을 원하냐는 지오의 질문에 "아니"라고 답변하는 승화.
247페이지에는 송수신을 합쳐 약 3초의 간격을 두고 오가는 질문과 답 하나하나가 인간의 업보를 하나씩 되짚는 것만 같았다. 전쟁에는 승자가 없었다. 비극의 역사는 반복되어선 안 되었다. 그걸 반복하는 것이 미욱한 인간의 본성일지라도 최선을 다해 저항해야 함이 마땅했다.
라고 나온다.
그건 승화가 지오의 인터페이스 첫 줄의 문장을 기억하고 지오에게 말을 걸고 지오의 대전제를 곱씹은 승화이기에 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GIOH, 모든 것은 인간을 위하여.]

포기하지 않은 지오처럼.

그래서 인류에 대한 사랑과 지구에 대한 사랑, 그리고 혁명이자, 지오에게는 퀘스트가 될 수 밖에 없었던 단편.

최의택-아니디우스 레푼도
선경이 엄마가 아닌데 자꾸 엄마라고 부르는 유영.
선경은 '하늘동물'이라는 아니디우스를 조사하던 중 지리산 봉우리에 사는 개체 중 '사람 같은 것'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우연히 마주친 사람을 살리려고 하니 듣지 못하는 남자는 장치의 화면에 입력을 한다.
남자와 같이 다니다가 방화를 한 아이를 마주치고 '그림자 아이는 출생 신고가 되지 않아 시스템상 존재하지 않는 아이이기 때문에 당연히 의료 서비스 적용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하는 공무원을 만난다.(288페이지)
시스템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없앤다는 것.
남자 무영과 선경은 장치를 통해 서로 대화하는데 그것이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선경을 향해 미등록 인간이라고 하는 공무원의 희번뜩거리는 눈.
지워지도 없애려는 없어지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인것 같다.
선경이 유영을 구하고 하는 행동들은 결국 사랑이 아니었을까.

이산화-마법사 에티올의 트루 엔딩 퀘스트
게임 <제브라이아 모험기>의 천재 마법사 에티올을 플레이하는 "나"와 파티원들은 수년만에 나온 후속작 속 캐릭터들이 왜 모두 극단적인 결말을 맞았는지 궁금해한다.
저주인가 아니면 다른 물리법칙이 원인인가.
계속 퀘스트를 하며 그 원인을 생각해본다.
아드레날린 외에도 오컴의 면도날, 서튼의 법칙 같은 처음 알게 된 단어가 나오는데 바로 아래 각주가 있어 읽기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어떤 질병일까 고민하다가 'PTSD, 전염병, 유전병, 암, 독소'가 아닐까 생각하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353페이지에는 '내가 제브라시아로 돌아온 이유가 무슨 대단한 사명감과 탐구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분명 다른 어디로도 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것보다는 사랑하는 게임과 캐릭터들이 더 그리워서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이렇게 캐릭터들과 함께 예전에 했던 퀘스트들을 다시 하는거다.

이 책은 구픽출판사의 하드SF단편선이다.
하드 SF는 과학적 사실이나 법칙에 무게를 두고 쓴 과학 소설을 말한다.
하드SF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더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단편집.

사랑도 혁명도 퀘스트도 한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보일뿐이다.

🎵 함께 들으면 좋을 노래는 김광진-지혜.
그래도 해야만 할 일이 있어
위험한 순간이 올 지도 몰라
호락호락 이대로
물러 선 채 포기하긴 싫은데
라는 가사가 <사랑과 혁명 그리고 퀘스트>라는 제목에 잘 어울린다.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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