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 정보라 환상문학 단편선 2
정보라 지음 / 퍼플레인(갈매나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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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정보라 작가의 소설을 읽었다. 2013년에 낸 작품집 <씨앗> 책 표지에는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탐색하려 노력하지만 쓰고 나서 보면 뭐든지 전부 치정극으로 만들어 버리는 재주가 있다 읽고 나면 마음이 어두워지는 이야기를 주로 쓴다라고 썼다.


이 책이 내게 그랬다.

정보라 소설집 <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는 열 편으로 이루어진 단편집인데 가제본에서는 그 중에 네 편만 먼저 읽어 볼 수 있었다.

첫 번째로 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

나는 집에 있다 그와 함께 있다 기다리고 있다.

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

또한 당신의 원혼과 함께.

책을 첫 문장이 전체를 관통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머지 다른 작품들도 더 궁금하고 기대된다.​​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자들은 대부분 비겁하다. 그들은 삶에서 스스로 만족을 얻을 수 없고 다른 인간을 자신과 동등하게 존재할 수 없고 그러므로 세계 안에서 다른 존재와 함께 상생할 수 있는 더 큰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없다.

중략

소위 '도둑의 의리'란 그런 것이다. 범죄자 사이에 의리란 없다.

서로 다른 사람이 말하지만 반복해서 말하는 말.

" 저거 확 치어 버릴까."

이름도 없이 나오는 첫 번째 남자와 두 번째 남자와 세 번째 남자.

두 번째 소설은 감염.

간신히 모든 것을 손에 넣고 마음이 조금 편해진 남자가 갑작스럽게 동영상을 받아 일어나는 이야기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지만, 아무리 요청해도 그러지 말았어야 했지만 폭력을 보려고 행사했고 그 폭력이 사라진 다음에도 폭력을 할까 생각한다.

수직적인 인간 관계에서 위아래로 서열이 빈틈없이 꽉 짜여서 사람 위에 사람이 있고 사람 아래에도 사람이 있고 위에 있는 사람은 아래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 일종의 권력 같은 걸 휘두르는 관계.

아래 있을 때 위에 있는 사람은 아래 있는 사람에게 무슨 뜻이든지 해도 된다고 배웠고 그대로 행위해 버린 남자는 의식불명 상태로 만들어 버리고.



남자에게 개인적으로 아무런 감정도 원한도 없었기 때문에 더 지독하게 느껴졌다. 단순한 동작은 반복해서 익숙해지고.

나중에는 쾌감까지 느낀다.



리발관의 괴이

청년이 읽을 수 없는 간판.

휴대전화는 동그라미가 뱅글뱅글 돌고 안테나는 하나뿐이다.

연료계의 화살표도 E보다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내 친구 좀비

유학을 떠난 후 동창회에서 오랜만에 만나 그녀에게 들은 선이의 이야기.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똑같은 옷을 다음 주에 입고 나오는 선이.


정보라의 글은 어둡다.

읽고 나면 마음이 어두워지는 글을 쓴다던 그의 말이 맞았다.

처음 시작이 "우리 왜 여기로 들어왔지?"가 아니라 환상문학 웹진 거울을 통해 알게 되고 읽게 되고 책이 나오면 읽게 되고 또 다음 책에 나오면 읽게 되고 다시 읽게 되는... 그래서 사실 오랜 팬이기 때문에 기대치가 더 높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꾸준히 읽게 되는 건 작품집 씨앗 해설에서 정세랑 소설가가 제목으로 쓴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위로>를 받기 때문이다.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리발관의 괴이>는 이미 읽어 보았었는데 다시 읽게 되었다.

연료도 떨어지고 내비도 말을 듣지 않고 휴대전화도 안테나가 한 칸밖에 되지 않는다.

중국집인가하고 들어갔던 청년이 잘 읽을 수 없는 복잡한 한자 간판 리발관은 이발소 벽에는 선반이 붙어 있었고 선반 위에 가발을 씌운 마네킹 머리가 몇 개씩 놓여 있었다.

청년은 그 마네킹 얼굴이 기묘하게 진짜 사람 같으면서 어쩐지 말라부터 쪼그라드는 느낌이라 기분 나쁘다고 생각했다.

가제본 147페이지.

나이가 누렇게 바른 한복 같은 것을 입고 있고 햇볕에 타서 갈색으로 변한 쭈글쭈글한 얼굴엔 아무 표정이 없는 노인.

청년이 짜증을 내며 물었지만 욕조처럼 생긴 기계만 가르친다.

직업적인 시선으로 청년을 두발을 살펴보는 중년 남자는 머리 자르러 온 거 아니라는 청년의 이야기에도 불분명하게 대답하며 계속 샴푸 기계를 사용할 것을 권유한다.

이유 벌어지는 일들은 공포였다가 갑자기 아니었다가 한다.

유쾌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이야기들의 연속이지만 <감염>에서 필요하다면 정말로 곤란하게 될 수 있다고 하는 남자의 말에 진짜로 마지막이죠라며 계속 계속 가는 사람, 주인공.

<감염>속에는 <슬픔과 불안의 여러 이야기>가 나온다.

'악'이란 놈이 목덜미를 타고 올라앉은 뒤이고 죄의 수렁에 허리까지 빠져든 채 악이라는 놈에게 목을 잡히고 쾌락이라는 놈에게 머리를 내 줘 아무리 몸부림쳐도 헤어나올 수 없는 처지에 들어서 절대로 저지르지 말았어야 할 크나큰 잘못을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라고 하는 부분이 잘못된 전화번호로 문자를 무시하지 않고 계속 계속 잘못된 방향으로 떠나는 남자 같다는 생각을 했다.

자기가 만든 멍 자국을 보며 끔찍했다고 할 때는 언제이고 허리띠를 달라고 하고 엎드리라고 하며 괜찮냐고 물어보면서 계속 때리고.

"하고 나면 후회할 테니까."라고 말하는 건 무슨 의미인지.

너무나 태연히 악행을 시작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리발관의 이기>에서는 '적당히 잘생겼다'고 하는 말에 청년이 계속 분개하지만 큰 소리를 낼 수가 없다.

그렇게 약간 웃기는 것 같으면서도 아닌듯한 내용이, 웃어야할지 말아야할지 알 수 없는 내용이다.



<내 친구 좀비> 속 두 사람의 친구 선이는 나에 비해 어린애 같은 구석이 있었다. 조금만 친절하게 대해 주면 아무나 믿었고 언제나 주위 사람이 있어야만 안심했다 그런 몈은 아마 어머니의 영향일 거라고 우리는 짐작했다.

옷차림 겉모습 말투의 표정 점점 불편해지는 선이.

그러나 바꿀 수는 없고 자신도 적당히 푹 낮추고 포기하고 타협할 수 없으면서 그걸 권유하는 그녀 이야기가 무기력해진 자주 요즘 일진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은 마음먹은 대로 된다는게 아니라 최소한 자기가 원하는게 뭔지는 확실히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말을 끝까지 맡길 기회를 주지 않은 사람이라서 어쩌면 더 절박하기 때문에.

그래서 이 소설들은 호러로 읽는다면 호러로 읽을 수도 아니면 삶의 비극적인 이야기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어째서 환상적이면서도 현실처럼 느껴지는지 그것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다시 생각해 보면 <감염>속에서 주인공에게 영상을 문자로 보내준 남자도 처음에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상황 아래에 있을 때, '위에 있는 사람은 아래 있는 사람에게 무슨 짓이든지 해도 된다고 배웠고, 또 그게 옳다는 건 아니지만 아래 있던 사람이 정하기 시작했을 때 놀라기만 하고 떠나기만 하고 위아래에 위와 아래의 관계가 너무 익숙해져서 머리가 좀 이상해진 거'다.

사람이 사람을 가질 수 있다고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술을 핑계 삼아 나이도 어리고 초범이고 술에 취해서 실수한 거라고 술을 마셨다는게 어째서 용서가 받을 이유가 되는지 그런 건 잘 이해할 수 없지만.

맞은 사람은 의식불명 상태로 되었는데도. 그런데 지금도 그런 일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어떤 부분에서는 너무 현실적인 이야기이고 어떤 부분에서는 동영상이 왔을 때 보지 않고 삭제해 버렸으면 되었을텐데 왜 그랬을까.

그래서 단편집 제목 <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 인데 이 네 편만 읽었을 때 이 제목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네 편의 이야기가 모두 죽음과 관련이 있고 그리고 어두컴컴한 이야기들은 그런 제목이 잘 어울리겠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나머지 여섯 편의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서 빨리 읽어 보고 싶다.

부커상 수상 후보였던 저주토끼로 정보라 작가를 처음 알게 된 분이나 나처럼 오랜 팬이나 모두 만족할 좋은 책을 만날 수 있어 기쁘다.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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