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믹 재거를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젊은 나이에 아깝게 죽은 예술가들의 흔적을 발견할 때,
가끔 그것이 유령의 모습처럼 주변을 배회한다고 느낄 때가 있는데요.
그런 것이 가장 강렬하게 느껴질 때는 죽은 이의 음악을 들을 때죠.
거기에다 벽에 그의 젊은 날 사진을 대형 브로마이드로 붙여놓고 바라보아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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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서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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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영정 사진을 바라보다가 문득 앞으로 7년 후면 제가 그 나이에 이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세상에 닮은 꼴 얼굴 둘.
하나는 큰 이변이 없는 한 서서히 늙어갈 것이고,
다른 한 얼굴은 이미 죽은 채 추억이 켜켜이 쌓여가는 벽장 속에서
여전한 얼굴로 그렇게 살짝 미소짓고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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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이나 <도플갱어> 같은 영화들을 보면서.
세상에 같은 존재 둘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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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예술가들에게 자신의 작품이 그들의 분신이라면
그들에게 자식 하나 없어도
그 작품들이 자신의 자식들일 것이므로
(우리 부모가 서서히 늙어 죽어가게 된다거나 하는 그런 일들을 포함해서...우리가 그들의 작품일 것이므로)
혹은 그 자신의 분신일 것이므로 그들이 요절하거나 결국 죽는 것은 하등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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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젊어서 일찍 죽은 예술가들에게서
그들의 분신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그들이 그렇게 자신의 작품에 자신을 너무 많이 나누어 담은 탓은 아닐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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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흐, 그렇다면 믹 재거는 영혼을 나누지 않았던가요?
어쩌면 그는 다른 방식으로 생을 좀더 길게 쪼개 사는 법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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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최근에 이연걸이 주연으로 나온다는 이 우주에 존재하는 200여명의 자기를 죽이면
우주 최고의 권력자가 된다는 설정들을 보면서 사람들의 여전한 자기애를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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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2-12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읽은 SF 단편이 생각나네요. 50년 뒤 50년 전 사람과 통신하게 되는데 그 사람이 어린 시절의 아버지였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