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는 노리개가 아니다

이광호 <진보정치〉 편집위원장  


보수 정파들 사이에 진행되고 있는 사이비 좌파 논쟁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좌파’ 그 자신이다. 피해자는 또 있다. 그것은 ‘진실’이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최근 국회 연설을 통해 여권의 개혁 법안들이 좌파적이며 사회주의적이라고 공격했다. 극우와 수구세력들은 현 정권을 그렇게 공격하고 있다. 물론 이는 거짓말이다.
이런 거짓 싸움이 처음은 아니다. 시도 때도 없이 발호하는 이 색깔론의 약발이 줄어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논쟁이 지속되면서 우리 사회에서 ‘좌파, 사회주의’는 용납될 수 없는 ‘악’이 되어버린다. 이는 특정 정파의 피해를 넘어서 사회 발전을 위해서도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점에서 피해자는 사회 전체로 확대된다.

사이비 좌파 논쟁 와중에 급기야 여당 대표는 “우리 안에 좌파가 있다면 고발하라. 고문당해 주겠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의 위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수준 이하의 발언이다. 좌파는 고발 대상이 아니며 어느 누구도 고문 대상이 될 수 없다.

열린우리당은 스스로 고백하듯 ‘중도우파’ 정당이다. 극우적 색채를 포함하고 있는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을 좌파로 몰아세우며 자신들을 보수 세력의 정치적 대표체로 행세하려 한다. 열린우리당의 386세대 의원들이 전경련 간부 앞에서 “우리는 철없는 좌파가 아니다”라며 자신들을 ‘성숙한 우파’로 봐달라고 사정할 때, 한나라당 의원은 그들을 주사파로 몰아친다. 오른쪽으로 심하게 삐딱한 우리 사회의 ‘슬픈 소극(笑劇)’이다.

행정수도 건설 특별법 위헌 결정 이전까지만 해도 정치권의 핵심 쟁점이었던 국가보안법 폐지는 민주주의의 지표일 뿐 좌우를 가르는 잣대가 될 수 없다. 좌파적 가치는 마르크스로부터 나오는 것도, 주체사상으로부터 나오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노동자 서민의 편에 서서 정책을 만들고 법을 만드는 데서 나온다. 보수 정당처럼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며 이는 진보정당의 몫이다.

혹자들은 좌우를 따지지 말고 민생과 국익을 먼저 생각하라고 일갈한다. 그러나 보수 정당 사이에서 민생과 국익에 관한 의미 있는 논쟁은 거의 불가능하다. 적어도 그 부분에 관한 한 그들 사이에 이견이 없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노동자, 신용불량자 문제 등 민생의 핵심 현안에 대해 그들은 다른 정책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국익’을 위한 이라크 파병에는 한목소리다.

좌파를 제물로 삼는 비겁한 우파들의 허무한 논쟁을 넘어서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좌파적 가치와 그것을 구체화시킨 정책을 가지고 사회적 토론과 논쟁을 진행하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그런 것들을 국회에 법안 형태로 내놓고 있다.

부유세 도입을 위한 사전 입법 성격을 가지고 있는 조세관련법 개정안, 2천만 명에 이르는, 비정규직과 그 가족들을 위한 노동관련 법안, 농민들 편에서 농협을 개혁하는 관련법 개정안 등, 그들의 눈으로 보면 정말로 ‘좌파적’인 법안들이 지금 국회 안에 수두룩하게 쌓여 있다.

전 국토의 기업도시화-경제특구화를 통해서 재벌에 토지수용권까지 헌납하고, 모든 월급쟁이의 비정규직화를 통해서 노동자들을 노예화하는 보수 정당들의 국가 경영 전략을 막아내는 것은 서민과 월급쟁이들의 시급한 당면 과제다.

이번 국회에서 정부 여당은 야당과 함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폭 양산하는 법을 만드는 데 합의할 것이며, 노무현 정권의 ‘뉴딜 정책’은 경기 부양이라는 이름으로 그 핵심적 내용은 보수 정당들의 합의를 기초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을 막아내기 위해 지금 노동자와 농민들이 힘든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최장집 교수는 노동자, 민중의 요구가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못하는 보수 독점 정치구조를 한국민주주의의 중대한 결함으로 지적하고 있다. 이제 의회에 진출한 좌파정당이 이 결함을 고쳐줘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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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11-09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이 기사를 본 기억이 나는군요.

추천하고 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