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생각

말씀하신 글 잘 읽었어요.
 
우리는 슈퍼마켓에 가서 여러 사과 중 한 알을 골라서 자신이 선택했다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가지만 실제로 그것을 선택한 것은 자신이 아니라 슈퍼마켓의 주인이고, 슈퍼마켓의 주인은 다시 중간상의 선택으로, 중간상은 다시 도매상의 선택으로 도매상은 다시 과수생산업자의 선택으로, 과수생산업자는 종자업자의 여러가지 설득과 권유로 선택한 것이지요.

그러다보니 세상에 이름없는 수많은 종자들은 상품성이 없다는 이유로 가차없이 배제되곤 합니다. 물론 선택된 종자는 가뭄에 강하거나, 해충에 강하거나, 당도가 특별히 높다는 이유로 선택된 것들입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 결과 세상에서 사라지는 종자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선택에 따라 선택되고 배제된 결과 만들어진 종자들은 유전적으로 단일해집니다.

단일해진 종자들은 그 나무에 기생하거나 공생하며 살아가는 하부 생태계를 단일하게 변모시키지요. 또 단일해진 종자들은 단일한 벌레, 단일한 질병에 취약하게 되고 결국 생태계가 단순해짐에 따라 교란된 생태계는 갑작스러운 메뚜기 떼의 창궐, 유독 그 종자에 특히 강력한 질병을 퍼뜨리는 병균에 의해 일순간에 초토화되는 결과를 빚기도 합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종자의 문제를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 소비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이처럼 선택의 가능성을 점점 잃어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알고보면 우리가 믿고 먹을 만한 음식 하나 없다는 자탄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디선가에서 도덕적으로 마음에 걸리는 것 없이 소비하고 싶어도 생산자와 유통업자와 같은 거대자본이 꾸려준 매트릭스 안에서 살아가는 한 그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삼성 같은 거대기업의 문제는 무시하면서 왜 그보다 작은 알라딘의 문제를 이야기하는가? 무시한 바는 없지만 말씀하신 대로 제가 그에 대해 글을 통해 제 주장을 편 바는 있지만 특별히 운동에 나서지는 않았네요.

물론 삼성이 생산하는 물건에도 도덕적으로 하자가 있는 것들이 제법 많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삼성이 생산하는 휴대폰 필수부품의 원재료가 되는 콜탄 같은 것들이지요. 이 원료는 콩고 내전 현장에서 전비를 충당하기 위한 강제 노역 등으로 채굴되는 것입니다. 피묻은 다이아몬드와 같은 것이지요.

저도 이런 사실을 알면서 휴대폰을 사용합니다. 아마 제가 휴대폰 없이도 일상생활을 영위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는 사람이라면 과감히 휴대폰을 던져버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네 삶이 모두 도덕적일 수는 없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꿈꾸는 섬님의 갈등이 너무나 잘 이해되고, 저역시 그와 마찬가지라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나선 것은 자존심 같은 문제가 아니라 이것이 제가 책을 구입하고, 커뮤니티가 형성된 곳의 문제, 이곳에서 당사자 중 한 사람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삼성을 비롯한 세계 여러나라의 휴대폰에는 모두 콜탄이 들어갑니다. 필수부품이기 때문이지요. 누군가 그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런 사실조차 모르고 살아갈 겁니다. 모르면 편하게 사용할 수 있지만 알고서는 휴대폰을 사용할 때마다 가끔씩 그런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프곤 합니다. 세계적으로 삼성이나 노키아, 모터롤라 휴대폰의 콜탄 사용에 문제를 제기하는 흐름도 분명히 있습니다. 또 세계적으로 분쟁지역에서 생산되는 원재료 구매를 금지하는 국제협약이나 이를 금지하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삼성의 문제는 참여연대 등 여러 단체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지요.

물론 염려하시는 것처럼 불매 움직임으로 알라딘 측 수익이 일부 줄어들 수도 있고, 그로인해 분쟁지역의 곡물 수입이 줄어드는 것처럼 선의의 피해자들이 생길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분쟁으로 인해 이렇게 벌어들이는 돈의 대부분은 군비로 충당됩니다. 그렇지 않다면 곡물생산자들인 농부들이 기아나 빈곤의 세계적인 주요 희생자라는 모순이 발생할 이유가 없겠지요. 마찬가지로 기업의 경우엔 경영상 이득의 많은 부분이 CEO들의 높은 급료나 주주배당금 등으로 돌아가지요. 제가 알기로 실질적으로 개인기업에 가까운 알라딘은 조유식 사장님이 80% 가량의 주식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물론 이런 수익은 경영개선 및 투자금으로 재투자될 수도 있겠지요.

저는 알라딘에서 일하는 분들이나 알라딘에서 책을 구매하고, 이곳에서 즐거운 일상을 보내는 것은 좋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책이라는 문화상품, 지식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모여 있는 알라딘(이 조건은 굳이 알라디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며 알라딘이 아닌 다른 인터넷 서점에서 벌어져도 좋은 일이지만)이기에 그나마 이런 이야기들을 할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이제는 노동자가 노조를 통해 노동조건을 바꾸기는 매우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노조라는 것이 정규직의 집합체이다보니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는 일정하게 거리를 둘 수밖에 없는 한계도 있는 것이지요. 이제는 소비자의 선택으로 노동조건을 건실하게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까닭도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알라딘에서는 소비자이지만 또 어느 곳에선가는 노동자로 살아가지 않습니까. 그렇기에 우리는 알라딘이 좀더 공정한 노동조건으로 더 많은 노동자들을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꿈꾸는 섬님의 고민에 작은 보탬이라도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 기업이 단기 이익 극대화에 급급하기 보다는 사회적 책임을 존중하는 쪽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의식이 늘어나면서 일부 기업들은 '사회적 책임 국제연대(Social Accountability International)'의 새로운 국제기준 'SA8000'에 부합하는 조건에 부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기업의 역사에서 최악의 기업 중 하나로 손꼽히는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 - 이 기업이 얼마전 기업의 사명을 치키타 브랜즈 인터내셔널로 바꿨습니다. - 가 이 국제 기준이 요구한 수준에 부합한 최초의 기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원래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는 중남미 일대의 군부쿠데타를 지원하고, 노조원의 암살, 아동 및 여성노동, 엄청난 농약 사용 등으로 물의를 빚어온 대표적인 기업입니다. 이처럼 악명높았던 치키타 같은 대표적인 악덕기업이 이렇게 놀라운 변신을 시도한 까닭은 무엇보다 '공정거래에 의한 유기농 바나나 거래 운동' 같은 소비자 운동의 압력 덕분입니다. 'SA8000' 인증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아동노동, 강제노동,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 단체 결성권과 집단 교섭권, 차별철폐, 무리하고 억압적인 징계, 법정근로시간 준수, 임금, 관리체계가 요구하는 수준에 부합되어야만 합니다.  

* 떠나든 남게 되든 제 서재를 통해 앞으로 쌓이는 모든 적립금은 불매선언의 제 기한이 차든, 아니면 중도에라도 만족할 만한 답변을 얻어 멈추게 된다면 그 연후에 한바탕 이벤트 잔치를 하려고 합니다. 기왕지사 책 구입하실 분들은 물론 적립금이 한 푼도 안 쌓이면 더 좋겠지만 굳이 알라딘에서 구입하시려 한다면 '땡스투' 주시는 건 사양치 않겠습니다. ^^ 적립금 안 주셔도 그간 쌓인 적립금과 예치금으로 이벤트는 하고 떠날 겁니다. 흐흐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ephistopheles 2009-12-06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떠난 다...라는 것은 기정사실인건가요??

바람구두 2009-12-06 15:25   좋아요 0 | URL
만족할 만한 답변이 있길 기다리는 중이라 현재로서는 떠난다는 것에 방점을 두고 있진 않습니다. 하지만 불매선언을 하고, 카페를 개설하고, 그에 대해 여러가지 의견을 내고 있습니다. 어느 면으로 보자면 흔히 말하는 것처럼 제가 삽질(뻘짓)하는 건지도 모르죠. 이 일이 일정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마무리된다면 아마 제 스스로 이 공간을 견디지 못할 것 같기는 합니다. 아직은 모르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