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이에자이트님이 "어느 놈이 더 나쁜가? "란 제목의 페이퍼를 올리고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올려놓았다. (음, 먼댓글 같은 기능을 잘 몰라서 그냥 퍼왔으니 이해바랍니다.)

이것 저것 책을 읽는 편이지만 지금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있습니다.다음의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까요? 
1,노예에게 자비롭게 대하지만 정작 노예해방은 반대하는 노예주와, 노예해방의 열렬한 투사이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흑인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나이...누가 더 나쁜가요? 

2.열렬한 페미니스트이지만 정작 자기 올케에겐 철저하게 못된 시누이 노릇하면서 가부장제적인 횡포를 부리는 여인과, 올케에게 따뜻하게 대하면서도  가족법 개정 등에는 반대하면서 보수적인 운동을 하는 여인...누가 더 나쁜가요? 

3.정당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부당한 수단을 쓰는 자와 부당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정당한 수단을 쓰는 자...누가 더 나쁜가요? 

4.구조적 폭력의 희생자와 혁명적 폭력의 희생자...어느 쪽의 희생자 수가 더 많을까요?
 

사실 일상적으로 접하는 문제이면서 쉽게 해법을 내기 어려운 질문들은 세상에 무척이나 많다. 그럴 때 내리는 판단 기준을 우리는 '가치관'이라고 부른다. 그런 점에서 노이에자이트님의 질문은 엄격하게 말하면 질문이 아니다. 모양으로 따지다면 다음과 같은 물음이라 할 수 있을 거다. 


아마도 초등학교 다닐 때 방학과제로 나눠주던 <탐구생활>에서 보았음직한 그림일 것이다.  

이 도형은 덴마크의 심리학자 루빈(E. J. Rubin)이 1921년 '루빈의 잔'이라 해서 만들어낸 이미지이다. 어느 영역이 도형(figure)이 되는가, 혹은 어느 영역이 배경(ground)이 되는가에 따라 서로 반전되는 이미지이다. 흰 부분을 전경(foreground)으로 하면 잔으로 보이고 반대로 검은 부분을 도형으로 하면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있는 형태가 되며 이 때는 흰 부분이 배경이 된다. 

노이에자이트님의 질문들은 마치 '루빈의 잔'처럼  '의사질문, 헛질문, 사이비 질문(pseudo-problem)'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워지는 질문과 유사하다.  게다가 질문은 '누가 더 나쁘냐?' 는 것이다.  이미 가치판단은 '나쁘다'고 내려져 있고, '누가 더'만 결정하면 된다. 자칫  존재는 사라지고 논리와 개념만 남거나 실제 처할 수 있는 개별적 현실은 망각되고 머리로만 생각하게 되는 도덕주의와 분석주의의 함정에 빠지기 쉬운 질문들이다. 당장에 실제 역사 속에서 벌어졌거나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직접 겪거나 보았다면 선택의 양상도 많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심리테스트나 가치관 테스트용 질문들이기도 하다.   

단적으로 열렬한 '페미니스트'라도 올케에게 못된 '시누이' 노릇은 할 수 있다. 이 질문엔 구박받는 올케의 품성에 대해선 아무런 정보도 제공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해줘도 모르겠는 분은 이미 질문에 포섭되어버린 분이다. 질문 같지만 실제로 저와 같은 질문은 친절한(사실은) 질문도 아니며, 선택지는 생각보다 여럿이란 말을 하려는 것이다.

어쨌거나 노이에자이트님의 질문에 대한 글을 썼으니 나도 답을 하자면 1번의 질문에서 나는 '전자'가 더 나쁘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선행과 악행(혹은 위선) 보다 구조적인 개선이 우선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이유로 2번의 질문에선 당연히 '후자'가 더 나쁘다. 3번에 대한 답을 하는 대신에 나는 마하트마 간디의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대신하려 한다. "나는 폭력에 반대한다. 폭력이 비록 선한 결과를 가져온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선은 일시적인 것이며 그 폭력이 행한 악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나의 답변이 조금 비겁하게 느껴진다면 나는 저 질문 자체의 문제로 '정당한'이란 모호한 수사에 대해 지적해야만 한다. 무엇이 정당한가를 결정하는 구체적 원칙과 근거를 질문자가 먼저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4번의 답변 역시 질문으로 성립하기 어렵다. 혁명도 구조의 일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진화가 돌연변이에 의해 일어나듯 말이다.  좋은 질문을 만들 수 있다면 그에 대한 좋은 답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어느 역사책에서 본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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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09-02-26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구두님과 노이에자이트님에게 권하는 책 ; <지식인의 두 얼굴>
저 말고 이런 질문을 바람구두님께 하는 분이 한 분 더 계시는군요.

바람구두 2009-02-26 15:17   좋아요 0 | URL
글쎄요.
노이에님이 제게 직접 던진 질문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제가 이런 류의 질문들은 한 편으론 재미있고, 한 편으론 별로 재미없더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쓴 글입니다. ^^ 그리고 "지식인의 두 얼굴" 같은 책도 역시 별로 재미없어요. 대개는 이미 아는 이야기들이고, 몇 가지 추문으로 이미 죽어버린 인간에게 실망해버리기엔 이미 제가 지은 죄들도 너무 많거든요. ^^

땡땡 2009-02-26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같은 질문에 대해 같은 답(이라고 맘대로 생각)을 이렇게 다르게 하시다니. 그것도 비슷한 시점에! 흥! :P

바람구두 2009-02-26 23:26   좋아요 0 | URL
난 뭐 그렇게 다르게 답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성찰하지 않는 여성주의'란 존재할 수 없다는 그대의 답이나 실제로 질문을 놓고 성찰하는 태도를 보인 내가 그렇게 다른 건가? 흐흐...
게다가 다른 사례를 들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민우회 후원회원으로서 열렬한 페미니스트 문제를 들고 있잖니. 크크, 난 페미니스트냐, 아니냐라고 자문자답할 때마다 정희진 선생에게 야단 맞았던 기억이 먼저 떠올라.

땡땡 2009-02-27 09:17   좋아요 0 | URL
'다르게'란 단지 풀어내는 방식을 의미했던 거임. 메룽.

마립간 2009-02-26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구두님, 독서력이 짧은 제가 바람구두님에 책을 추천하면서 조심스러웠습니다.
따우님, 노이에자이트님에 댓글 잘 읽었습니다. 한편으로 정답이라고 생각되지만 객관화하기가 힘들죠.

바람구두 2009-02-26 23:33   좋아요 0 | URL
아니요. ^^
제가 그 책을 읽었기 때문이라거나 하여 드린 말씀은 아니었습니다.
지식인도 인간이고 인간은 누구나 다양한 얼굴들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라 생각할 뿐입니다. 또 저 책에서 다뤄지는 인물들, 특히 루소의 사생활은 제 어린 시절의 큰 충격이었기도 했고요.

땡땡 2009-02-27 09:19   좋아요 0 | URL
마립간님. 기존의 '객관화'에 대한 문제제기로 시작한 게 여성주의니까요, 생각하시는 객관에 맞지 않는 것은 당연합니다. 함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모든 실천적 주의자들에게는 내 주의를 어떻게 남과 나눌 것인가 하는 문제는 평생의 숙제일 거예요. 마립간님의 한 줄 글에 생각이 많아지는 아침입니다 :)

2009-02-26 2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26 2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