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 여러모로 힘든 일들, 마음 부대끼는 일들 속에 있어서 사실 나 자신이 전적으로 책임질 필요 없는 공간으로서의 알라딘 서재가 한 편으론 좋으면서도 - 왜냐하면 이 공간은 내가 점유하고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론 알라딘서점에서 제공하는 공간이므로, 서버의 상태나 기타 이용자의 기분 같은 거 내 주변 사람이 아닌 한 그렇게까지 신경써가며 있을 필요가 없어서 편한 거다. 즉,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잘못했을 경우엔 마음대로 씹을 수도 있다는 거 - 바로 그런 이유로 한동안 이곳을 닫아두고도 맘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동안에 나는 탁구 라켓을 하나 사서 이틀에 한 번꼴로 직장 동료들과 탁구를 쳤다. 고등학교 다닐 때 학교에서 유도를 배웠고, 대학 다닐 때 어머니의 강권으로 잠시 헬스장을 들락거린 이후 처음으로 운동이란 걸 해본다. 오늘도 2시간 정도 라켓을 잡고 연습을 하다가 한 친구랑 게임을 했는데 3세트 쳐서 1세트를 따냈다. 그 사이 실력이 조금 늘었다. 공부와 운동의 공통점이 있다면 처음 어느 순간까지는 실력 느는 것이 눈에 보인다는 거다. 그런 뒤 일정한 수준까지 오르기 위해선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아마 고수가 된다는 게 그런 걸게다.

"웹2.0"이란 말이 심심찮게 들리더니 알라딘도 서재 개편을 미뤄두었다가 아예 이참에 서재를 블로그화하면서 '2.0' 바람에 동참했다. 기왕지사 늦은 김에 웹2.0 분위기에 동참한 것은 잘한 일이다. 사실 요즘 내가 속상했던 이유는 내가 운영하는 홈페이지에서 작지 않은 분란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혜와 지식은 상당히 다른 것이라 그런 상황에 대처할 때, 내 지식은 거의 소용이 없었다. 늘 느끼는 바이지만 실생활에 인문학적 교양이나 지식만큼 허망한 일도 드물다. 다만 그것이 어떤 상황들을 견뎌내게 하는 힘이 된다면 그건 순전히 과거의 어느 시대, 혹은 인간이 이런 상황을 어떻게 견뎠더라 하는 교훈을 알게 된다는 것 정도다. 그러므로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건 아니다.

하여간 나는 말문을 닫았고, 말문을 닫고 지내는 동안 웹2.0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얼마전 이곳에도 글을 올렸지만 올해 2007년은 87년 혁명으로부터 20년, IMF10년이지만 인터넷의 역사에서도 "웹+로그"가 출현한지도 만 10년이 되는 해이다. 아다시피 나는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라는 초속으로 변모해가는 인터넷 세상의 기술 진보와 비교해보자면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스타일의 개인 홈페이지를 거의 8년째 해오고 있다. 난 아직도 HTML이 무엇의 약자인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히 모른다. 그러므로 RSS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무언가 이야기하고 도모하고 싶어한다. 대책없는 사람이고, 대책없이 게으르다. 그래서 내 다른 별명이 "나무늘보"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별명은 게을러서라기 보다 꾸준해서라고 생각해본다.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이곳을 이용하는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만 내가 알고 있는 한에서 웹1.0과 웹2.0의 차이는 두 가지 정도로 축약될 수 있다. 하나는 "위키"와 같이 누구나 어떤 정보에 접근할 수 있고, 자기 마음대로 참여하여 정보를 수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할 수 있다는 것(웹2.0이라고 해서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위키피디아 같은 경우다. 다른 하나는 RSS라고 해서 일종의 코드를 삽입하는 형태로 알라딘 서재의 예를 들자면 우리가 올린 글이 알라딘이란 하나의 울타리가 아니라 메타블로그라는 좀더 광대역의 다른 플랫폼을 가진 블로그 사이트들과 연결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과거처럼 포탈사이트나 검색엔진을 통해서만 접속 가능했던 정보나 대상을 넘어 좀더 적극적이고 열린 검색, 접속,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이들과 만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아마도 과거 알라딘이 시행했던 외부 블로거들의 리뷰를 함께 읽도록 했던 일을 기억하면 좀더 쉬울 듯 하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편하게 생각하면 사실 "웹2.0"에는 아무 문제도 없다. 이쪽 분야의 운동을 하는 이들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정보민주화나 지식민주화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경우엔 위키를 만능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많은 이들이 참여하고, 자신의 주관을 되도록 배제하고, 객관적인 정보를 입력해 지식의 양을 늘려가는 위키피디아 같은 작업들이 지닌 의미 역시 작은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단적인 사례 한 가지를 들어보자. 지금이 천동설이 지배하던 시대이고, 갈릴레이 갈릴레오가 만약 지금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았다면 그의 지동설은 위키 같은 시스템에선 극히 소수 의견이었을 것이다. 그가 만약 자신의 주장을 담은 글을 논거까지 담아 올렸다면 그 주장이 과연 며칠이나 온전히 위키에서 버텨냈을까. 아마도 누군가의 손에 의해 금세 다시 수정되었을 것이다. 지식민주화나 정보민주화의 뜻이나 의미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때의 민주화가 단순히 다수결에 의한 지배만을 의미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또 한 측면에서 이 같은 광대역의 접속망이 생성된다는 것은 인터넷을 바다에 비유하곤 하지만 알라딘이면 알라딘, 네이버면 네이버 같이 서버 제공회사에 속해있던 사람들과만 접촉할 수 있었던, 어떤 의미에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피곤한 관계를 더욱 무한으로 확장가능하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걸 즐기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내 경우엔 솔직히 그런 것들이 몹시 피곤하다. 기존에 있었던 사람들, 알고 지내던 사람들에게도 신경 쓰지 못하는 판에 어디서 보았는지, 내 글은 어디에서 읽었는지 날 아는지, 모르는지도 모르는 이들이 어느날 돌연 내 글에 트랙백을 하고, 자기 마음대로 이러쿵저러쿵 할 수도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인터넷 세계에서 유명해지는 일이 즐거운 이들도 있겠고, 그걸 통해 사업 모델을 발견하는 이들도 있을 거다. 그러나 나는 어느 측면에선 김규항이 했다는 말, 인터넷의 글쓰기를 통해서는 진지한 담론의 제기나 소통이 불가능하거나 어렵기 때문에 진보담론의 공간으로선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에 동의하는 편이다. (나는 손의 감각을 믿는 편이라 글에 밑줄 쳐가며 읽어내지 않는 글은 이해하기 어려워한다. 아날로그 구닥다리 인간이라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알라딘의 웹2.0에는 다행히도 좀더 넓은 광대역의 세계와 접속하는 방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물론 아직 메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도 있고, 과거와 같이 내가 누군가의 서재에 남긴 댓글을 찾아 보는 기능 같은 것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내가 누군가의 서재에 글을 남겼다면 기억했다가 찾아가야 한다. 아직 어색한 것도 많다. 그러나 과거의 서재 역시 적응의 산물이었던 것처럼 우리는 또 알라딘 서재2.0에도 적응해갈 것이다. 다만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건 과거 알라딘마을이라고 불렸던, 비록 외부의 어떤 이들에겐 배타적이고 폐쇄적으로 보였을 지도 모르는, 작은 책마을 사람들의 풋풋함, 인정머리, 사려깊은 배려는 사라지지 않았으면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엔 거리가 있다.
너무 멀어지면 우리는 서로에 대해 잔인해질 것이다.
그 반대로 너무 가까와지면 우리는 또 많은 것을 오해할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해치지 않고, 참견하지 않으면서도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거리를 만들어내기까지 알라딘 서재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온 셈이다. 이제 우리는 새롭게 관계의 인력을 재구축해야만 한다.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기존의 마을 사람들 사이에 남겨진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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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구두 2007-06-13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이래서 몰라도 과감하게 쓸 필요가 있나봐요. ^^

드팀전 2007-06-14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 대문이 <동사서독>같습니다.아니면 <용문객잔>이던가..^^
하여간 만들어준거 찍..하고 박아 놓은 저보다는 멋집니다.나는 그것도 못하는 ㅜㅜ

아영엄마 2007-06-14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직 어떤 기능이 지속되고 추가되었는지 몰라 이것 저것 눌러 보고 있습니다. 댓글 찾는 것도 처음엔 없어진 줄 알았었네요. 나이드니 모르는 것에 발 담그는 것에 더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데 이 서재에 적응할려면 좀 과감하게 시도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바람구두 2007-06-14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팀전이 원하면 하나 만들어 드리리까?
예전엔 서재 지붕도 만들어 선물하고 그랬었는데...
아영엄마! 그런데 아영이는 많이 컸겠네요. ^^
아이가 크면 어른은 늙는다는 건 참 변치 않는 진리예요. 그쵸?
뵙고 싶네요. 예전에 먼발치에서 인사만 한 적있는데...

향기로운 2007-06-14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 서재지붕이 보다 멋스럽네요^^ 바람구두님의 이미지도 달라졌구요^^

바람구두 2007-06-14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만에 힘 좀 써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