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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의 목소리 -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
로널드 프레이저 지음, 안효상 옮김 / 박종철출판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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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조금 시간이 지난것이지만 흔히 학생운동에서 혁명적 전망을 얘기할 때, 그 전망들은 아주 오래된, 쉽게 얘기해 철지난 구식이었다. 지금은 몸담고 있지 않아서 정확히 모르겠지만, 몇 년전만 하더라도 혁명적 전망을 얘기하고 지향을 제시할때 거론되는 사례들은 거의 100년이라는 시간을 목전에 둔 것들이었다. 내 생각에 아마도 그랬던 이유는, 혁명적 사례들 자체가 오래된 것들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그 사례들이 소련이라는 현실사회주의 국가를 통해 실제로 지지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나 이미 서구에선 소련을 사회주의국가가 아닌 국가독점자본주의로 정의내렸고, 자본주의와의 이념대결 속에서만 유효한 사회주의국가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적 상황에서 그것은 개량적인것으로 치부되었고, 유럽에서 발생한 다양한 '사회주의적' 질서들을 포착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1960년대를 전후로 유럽에서 나타난 다양한 사회주의적 질서들을 소개하고 있다. 로널드 프레이저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각국에서 당시 학생운동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사람들과 인터뷰를 한 결과가 바로 이 책의 내용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주로 서독), 이딸리아, 그리고 아일랜드 등지에서  가장 전투적인, 가장 혁명적인 학생운동이 어떻게 나타나게 되었으며 어떠한 전성기를 거쳐 사라지게 되었는지를, 당시 활동가들의 입을 통해 생생히 담아내고 있다.
 
책장을 넘기며 가장 놀랬던 점은, 너무나도, 너무나도 놀라운 상상력에 놀라움을 금치않을수 없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이전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적인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그들의 상상력은 너무나도 급진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 상상력을 현실로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보여준 활력, 자신들이 살아있음을 느끼고 있다는 그 활력은 활자 하나하나에서 살아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500페이지가 넘는 내용을 간략히 정리하기란 어렵지만, 학생이 아닌 시민으로 인정해달라는 외침, 부당한 인종, 성, 계급 차별을 철폐하라는 요구, 학교가 가르치는 내용이 아닌, 우리가 듣고 싶은 수업은 우리가 만들것이라는 주장, 내가 배운 지식이 기업의 이윤을 높이기 위해, 전쟁에서 사람을 죽이는데 쓰이도록 하지 않겠다는 결심 등은 여전히 유효하다. 오히려 지금 대학생들이 가진 생각보다 더 급진적이며 더욱 공동체적인 생각들이다.
 
흥미로운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구술이라는 특징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점이 이책의 아쉬운 부분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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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제1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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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글은 읽는 이로 하여금 본능을 자극한다. 아니, 욕망이 더 적절한 표현일까. 표현하지 못하도록 억압된 본능, 그래서 욕망으로 전화된 그 욕구를 김영하는 자극한다. 신작 [오빠가 돌아왔다]에서도 그랬던 자극은, 어쩌면 애초 그의 시발점이랄 수 있는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에서 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김영하의 글은 현실이라는 억압체계에서 누구나 가져봤을 만한 욕망, 금지된 본능을 꿈틀거리게 한다. 심사평(들)은 [나는 나를...]이 판타지의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읽는이는 미리 그것에 동의를 해야지 온전한 긁읽기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문학동네 신인작가상 수상작이기 때문에, 책 뒷편엔 간단한 심사평들이 같이 실려있다.) 그러나 소설이라는 것 자체가 허구라는 것을 받아들이더라도 김영하는 오히려 그러한 방식을 통해 본능을 억압하는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또 다른 의미의 현실성을 갖는듯 하다.

[나는 나를...]에서 인물들이 가졌던 금지된 본능은, 사회가 그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바깥으로  드러나선 안되는 욕망이 되었고, 그것을 드러내면 [오빠가...]에서 보여지는 속물근성으로 보여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떻게 보면, 사실 우리 모두가 속물근성이라고 얘기하는 것이 서로 말로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지 누구나 원하고 있는 본능이라는 욕구들이 아니었을까.

과도한 욕망과 자연스런 본능과 부족함을 채우기 위한 욕구, 남들보다 더 큰 욕망으로 나타날 때 핀잔당하는 속물근성이라는 꼬여버린 실타래 같은 측면 때문에 김영하의 글이 나에게 의미를 가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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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와 넓이 4막 16장 - 해리 포터에서 피버노바(FeverNova)까지
김용석 지음 / 휴머니스트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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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前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 철학과 교수.

표지 제일 앞장에 나타나있는 저자의 이력이다. 사실 내가 저자를 처음 본 것-물론 지면을 통해서이지만-은 한 주간지에서다. 서양철학을 전공하는 동양인. 게다가 서양인을 대상으로 서양철학을 강의하는 동양인이라는 점에서 저자는 본인의 흥미(?)를 끌었고 주간지에 간간히 실리는 그의 글은 읽을때마다 작지만 오래가는 충격, 좀더 자세히 말해 조금씩 내 생각을, 시각을 다듬어 주었다. 때문에 누군지도 모를 철학자의 책이라면 전혀 시선을 끌지도 않았을 테지만, 김용석이라는 이름 석자를 보고 책을 고르게 되었다.

이러한 저자 개인에 대한 기대는 페이지를 넘길수록 기대가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철학교수이지만, 많은 문화적 소재에서 철학이라는 딱딱한 질감을 걷어내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면서 한편으로는 절대 가볍지 않고서도 놓치기 쉬운, 그래서 은폐될 수 밖에 없었던 사실들을 드러내며 소재에 대한 새로운 시각들을 제시해주고 있다.

현실과 환상의 관계, 실제 현실의 일부로서 가상현실(virtual reallity)에 대한 시선, 과학과 친구되기, 그리고 함께하기, 공존을 위한 시간과 공간에 대한 제언등은 누구나 한번쯤은 흐릿하게 그려본 내용들에 대한 저자의 구체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밝히고 있듯이 자신을 작업을 시대의 세로지르기와 가로지르기를 넘어서기 위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세로지르기를 통한 전문성 확보와 가로지르기를 통한 내용의 풍부화. 책 이름이 깊이와 넓이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듯히다. 더 이상 깊이나 넓이 하나에 집착해 고립됨을 자초하는 깊이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내실없는 넓이의 벌판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깊이와 넓이를 같이 더해가야 할 것이다.

거대담론만이 세계를 해석하고 변혁의 방법으로 추구되던 시기에서 본질은 변하지 않았을지라도 많은 방법들이 가능한 현재에, 사고의 유연함과 현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배우거나, 그 방법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무겁지 않게, 그러나 가볍지 않으면서도 진지하게, 그리고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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