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 (1.2권 합본) - 우리 소설로의 초대 4 (양장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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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낙관의 근거는 희망이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있을거라는 희망. 그렇다면, 희망의 근거는 무엇인가? 모든 것이 쓰러진 대지위에서, 모두가 떠나 혼자남은 거리에서, 무엇도 할 수 없는 무기력의 끝에서, 모든 것을 빼앗긴 절망의 나락에서 도대체 어떤 근거에서 희망을 말할 수 있는가?

그러나 살아야 한다. 주어진 生이 끝날때 까지 살아야 한다. 쓰러진 대지위에 다시 세우고, 거리에 사람을 불러모으고, 무기력을 타파하며 절망을 기어올라야 한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 내 生을, 내 삶의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 그저 내 生을 내 삶의 끝까지 끌어 놓을 뿐이다.

아, 아, 김훈은, 김훈의 눈에 비친 이순신은 그러했다. 누구를 탓하지 않으며 누구를 의지하지 않으며 그렇게 희망을 기대하지 않고 희망에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몸안에 살아있는 生을 자신의 삶 끝자락까지 밀고 나갔다. 자신의 온 몸을 부딫치며 자기 삶의 끝자락에 닿는 길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서두르지 않고 담담히 큰 칼로 베어가며 그렇게 生을 밀고 나갔다.

칼의 노래는 바로 그런 글이다. 백의 종군하는 이순신. 원균이 칠천량 전투에서 조선 수군을 모두 잃은뒤 처참한 현실을 접한다. 그러나 동요하지 않는다. 오직 적의 敵意 앞에서 자신의 몸을 내 던지며 자신의 敵意로서 무인됨을 다하려 한다. 적의 敵意와 자신의 敵意 사이에서 자신이 죽을 곳을 찾으며 자신의 生을 끌고 나간다. 生이 삶의 끝에 다다르는기 위해서, 임금의 손에 죽기를 바라지 않으며 삶이 끝나는 死地에서 生을 끝마치기 원한다.

절망에 맞선 이순신은 잃어버린 희망을 말하지 않고 자신의 生으로 답한다. 사라져 버린, 보이지 않은, 잡을수 없는 희망이 아닌 자신의 몸안에 있는 生만이 이순신의 유일한 희망이요 희망의 근거였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되리라는 하릴없는 기대에 근거한 희망이 아닌 자신을 존재케 하는 유일한 목숨을 근거로 한 生으로 대답한다.

희망이 사라져 버린 시대에 우리는 근거없는 희망만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유행처럼 번지는 희망이라는 단어는 희망이 사라졌음을 말로써 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각자가 가지고 있는 희망의 근거는 과연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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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자본주의 선언
알렉스 캘리니코스 지음, 정성진.정진상 옮김 / 책갈피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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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반자본주의 운동은 자유, 평등, 연대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른 해석을 제시한다.

그러한 가치들은 오직 세계 자본주의에 반대해,

그리고 세계 자본주의를 대체함으로써 실현될 수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 우리는 쟁취해야 할 세계가 있다.

 

한동안 소설만 몇 권 보다가 오랜만에 사회과학서적을 집어들어서 그런지,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진도 나가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다. 대학원 입학전 한 때 난독증에 시달려 글을 읽지 못하고 문자 사이에서 허우적거렸다. 그 때의 악몽이 떠오르는듯 했다.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로 널리 알려진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신간이다. 21세기의 [공산당 선언]이라고 할만하다는 책표지의 문구는, 책의 정신과 어긋나게 다분히 상술이 포함된 선전문구에 불구하다. 그렇다고 이 책의 내용이 형편없다는 말이 아니라, 너무나도 과장된 수사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글에서 저자는 신자유주의의 실태를 고발한다. 신자유주의는 빈곤과 불평등을 해소하지 못했다. 또한 신자유주의 정책이 경제성장을 위해 필요하다고 얘기되어지지만, 실제로 신자유주의 이후 경제성장률은 7-80년대 호황기의 성장률을 회복하지 못했다.

저자는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반세계화 운동을 반자본주의 운동으로 규정한다. 그러면서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을 해부해 부르주아적, 지역적, 개량주의적, 자율주의적, 사회주의적 반자본주의 운동으로 반세계화 운동을 분류하였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이러한 반자본주의 운동들이 올곧은 대안이 되기 위해서는 정의, 효율성, 민주주의, 지속가능성이라는 4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보이는 저자의 특징 때문인지 책상앞에서 쓰여진 고민과 사색의 향취보다는 거리의 흙내음이 느껴지는 글로 채워져 있다.(물론 저자의 생각의 깊이가 얕다는 말은 아니다.) 거리의 향취 때문인지 글에서 약간의 격앙된 감정이 느껴지고 다소 추상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특히 결국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반세계화운동, 반자본주의운동이 왜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지는 나타나 있으나, 그래서 쟁취할 세계가 어떠한 세계인지에 대해선 설명이 부족하다. 다른 세상을 제시하기 보다는 현재 세상에서 탈주하는 것만이 유일한 목적으로 보인다.

 

대상의 본질에 대한 이해, 비판의 타당한 근거, 방향의 구체적 제시, 과학적 대안의 마련.

이러한 과정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가 말하는 새로운 세계의 쟁취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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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05-09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주의 리뷰에 뽑히신 거, 축하드립니다. 이 리뷰도 퍽이나 마음에 드는군요. 또 뵐께요.
 
오빠가 돌아왔다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이우일 그림 / 창비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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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러저러한 이유로 관심을 갖고 있던 작가 김영하. 그의 신작이 나왔다길래 앞뒤 가리지 않고 책을 샀다. 나같은 인간 때문에 김영하도 먹고 사는 거겠지. 사실 나가 읽은 그의 소설은 이때까지 단 한편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도 단편소설. 하지만 이상하게 나의 주의를 끄는 그였기에, 이번에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을 접하자 말자 바로 구입했다.
"낄낄거리며 즐겁게 쓴 소설도 있고, 인간이란 왜 이 정도밖에 안되도록 생겨먹은 것일까, 갈피마다 호흡을 고르며 울적하게 써내려간 소설도 있다"라는 그의 말처럼 중간중간 키득거릴 정도로 웃음을 짓게 했던 부분이 있었던가 하면, 소설 속의 인물에서 내 안의 속물 근성을 확인했을 때, 소스라쳤던 부분도 있다.
사실 이 책은 한편의 소설이 아니라 그간 발표된 단편들을 한 권의 책으로 구성한 것이다. 그러나, 책의 마지막에 수록된 평문에서 지적한 것처럼, 열정과 냉정이라는 두 단어는 책 전편을 통해 흐르고 있다. 비록 나는 그러한 접근보다 작가의 말에 충실해서, 인간의 속물근성, 내 안의 속물근성, 왜 이 정도밖에 못생겨 먹었을까 하는데 많은 공감을 느끼게 하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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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의 복수 - 자본주의의 부활과 국가사회주의의 죽음
메그나드 데사이 지음, 김종원 옮김 / 아침이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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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과 동유럽이 붕괴한 이후 (사실 그 이전부터 제기된 내용이지만) 현실 사회주의 국가가 실제로는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설득력을 얻었다. 물론,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과 사회주의의 몰락을 등치시키지 않으려는, 사회주의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의 합리화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은 이런 주장의 일면을 담고 있다. 그러나 현실 사회주의 국가가 실제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여느 책처럼, 소련과 동유럽의 실상을 폭로하는 식의 내용은 아니다. 대충 책 구조를 살펴 보면, 마르크스의 이론-특히 이윤율과 관련된-을 간략히 살펴보고, 후대 마르크스주의자-로자 룩셈부르크나 트로츠키 등-에 이르려 마르크스의 이론이 어떻게 수정, 보완 되었는지를 살펴본다. 그리고 양 세계대전 사이에 유럽 각국에서 있었던 사회주의 운동의 양상, 그리고 현실 사회주의 국가가 어떻게 "타락"하게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많은 부분을 할애해 설명하고 있는 것은, 1910년 이후 현재까지의 국제적인 정치경제학적 상황과 더불어 경제사상의 흥망성쇠를 조망하면서, 그 속에서도 여전히 유의미성을 획득하고 있는 마르크스의 이론이다.

따라서 이 책을 제대로 소화하기 위해선 상당한 배경지식을 필요로 한다. 기본적인 경제지식은 물론이며 정치경제학에 대한 이해, 경제사상사에 대한 소양, 세계사에 대한 상식들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이 책을 온전히 소화하는데 어려울 정도다.

애초 마르크스의 학문적 결과-곧 자본론-는 자본주의를 분석한 내용에 다름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의 사망선고서, 노동계급 해방의 예언서, 사회주의 건설의 지침서로 오해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치 마르크스를 교주로 하는 마르크스주의라는 종교의 신도가 되어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결국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났고 이 혁명은 마르크스의 옳음(그들이 해석한 마르크스의 예언)이 증명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혁명이후 사회주의 국가는 곧 반동성을 드러냈으며, 서구와의 체제경쟁에 나서게 되면서 이 반동성은 더욱 심화되었고, 자신들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마르크스를 왜곡하게 되었다.

서구에서는 서구 나름대로 체제경쟁에서 지지 않기 위한 이데올로기를 획득하기 위해 마르크스주의에 맞서는 자본주의의 경제이론들이 나타났다. 특히, 세계 대공황의 돌파구를 제시한 케인즈주의는 1970년대 스태그플래이션이 나타나기 까지 지배적인 자본주의의 경제학이 되었으며 지속적인 성장, 안정적인 고용을 과시하며 사회주의 국가를 위협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케인즈주의 경제학은 자유주의 경제학-이른바 통화주의-에 자리를 넘겨주었다. 통화주의는 세계국가를 급속히 보수화시켰으며 이후 공급중시경제학 등 또 다른 다양한 경제학파가 나타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고전학파라 불리우는 정치경제학을 시작으로 케인즈주의, 통화주의, 공급중시경제학, 합리적 기대학파, 신고전파 종합 등 많은 경제학파가 존재했지만, 이 책은 마르크스 만큼 자본주의의 역동성을 이해하고 정확하게 자본주의를 분석한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물론 몇가지 오류가 있긴 하다고 인정은 하고 있다.) 그런데 현실 사회주의 국가는 마르크스의 이론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고쳐쓰면서 완전무결한 것처럼 가장했고, 자본주의 경제학은 마르크스를 온전히 평가하기 보다는 폄하하기 일쑤였고, 마르크스의 혜안을 읽어내지 못했다는게 저자인 메그나드 데사이의 주장이다.

사실 책을 읽고 나서 머리가 많이 아팠다. 당연히 뭔 말인지 잘 몰라서 였는데...어쨌든 데사이의 지적은 매우 설득력있어 보인다. 중요한 것은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운명을 어떻게 서술했고 그가 결과적으로 내놓은 분석의 결과물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역동성을 가장 정확하게 인지했다는 점일 것이다. 특히, 현대 경제학이 의식적으로 마르크스를 밀쳐내며 정치경제가 아닌 경제만으로 자립하려는 모습은 최근의 세계화 경향을 비롯해 많은 경제적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라고 생각한다.

한편 이 책은 나를 굉장히 부끄럽게 한 책이었다. 왜냐하면 나의 경제학적 지식의 기본을 돌아보게 만든 책이었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전공으로 공부를 한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현무암처럼, 완전히 다져지지 않은 내 지식의 구멍을 마주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었다. 또한 기본적인 세계사 지식이 이렇게 부족한가라는 자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암튼 전공지식을 더욱 다지는 한편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을 끊이지 않고 습득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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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북소리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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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입학한지, 달리 표현하자면 한 국가의 시민으로서 시민권을 획득한지, 사회에서 인정하는 어른기준의 나이를 채운지, 담배를 피고 술을 마셔도 누구 눈치 보지 않고 싫은 소리 들을 일이 없어진지, 거의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해보지 못한 일 중 가장 아쉬운 것은 이 구질구질한 "대한민국"을 떠나 본 경험이 없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을 다니면서, 대학에서 할 수 있는 일 중 거의 모든 것을 해보았고, 못한 것 중 아쉬움이 남는게 별로 없는데, 해외 경험이 없다는 점만은 안타까운 일이다.(그리고 두고두고 안타까울 것이다. 아.. 덧붙여.. 뭐 온갖 종류의 '자원봉사'가 있는데, 그것도 못해봤지만 그건 별로 아쉽지 않다. 나의 귀차니즘과 이기심 앞에 자원봉사류의 경험은 별로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래서 졸지에, 별안간 선물로 내 손에 들려진 이 책은,  나에게 다음에 읽을 책으로 낙점지어졌다.

사실 이 책은 여행 얘기를 담고 있지만 그저그런 배낭여행기가 아니라, 약 3년이라는 시간을 해외에서 체류하면서 쓴 에세이이다. 그래서 그저 스치면서 가질법한 느낌의 편린들이 나열된 것이 아니라, 해외에서 타국사람들과 섞여서 살아가는 생활에 대한 얘기이다. 당연히 외국생활이니 배낭여행기에서 실릴만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1986년 가을부터 1989년 가을까지 만 3년 간 그리스와 이탈리아에서 생활하면서 겪은 일과 주위 지역을 여행하면서 가졌던 느낌들이 이 책의 내용인 것이다.

그저 상상 속에서만 따뜻하고 온화한 날씨에 코발트빛 드넓은 지중해, 그리고 친절하고 여유있고 다정다감할 것 같은 사람들, 시간의 무게를 견디며 견뎌낸 시간만큼의 신비로움을 간직하고 있을 것 같은 도시와 유적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던 파란 초원이 하늘과 맞닿아있고 초원에서 한가로이 양떼나 가축을 방목하면서 생활을 이어나갈 것 같은 그리스, 이탈리아를 상상했다면, 그리고 그런 그리스와 이탈리아를 책을 통해 만나고 싶다면...

절/대/로/이/책/을/읽/어/선/안/된/다.

역시 영화나 사진, 그림으로만 만나는 두 나라는 실제 그 속에서 생활해 본 하루키의 경험에 따르면 너무나도 아니올시다 였다는 것이다. 물론, 하루키가 머물렀던 기간이 1980년대 후반이었기 때문에, 강산이 한번 변하고도 적잖은 시간일 흘렀기 때문에 지금은 많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그리스의 척박한 기후야 하늘이 선사한 어쩔수 없는 환경이 똑같은 것이라 생각이 되지만, 그 엉터리 투성인 이탈리아는 많이 달라졌을 수도 있으리라.(하지만 이탈리아에 좀도둑이 많다는 얘기는 여전히 들리고 있으니!)

그리스는 상상보다 기후가 매우 매서운 곳이라고 한다. 그리스에서 맑은 날을 볼 기회는 그렇게 만지 않고, 날씨가 극단적이라 파란 하늘이 얼굴을 내밀 때면 더없이 좋은 날씨지만, 그렇지 않으면 엄청난 바람과 장마철을 연상케할 정도로 비가 많이 내리는 곳이라고 한다. 특히, 지중해라는 환상(?)에 속기 쉽지만 도쿄와 같은 위도에 있기 때문에 당연히 겨울이면 엄청난 추위를 겪어야 한다. 이탈리아는 모든 것이 엉터리라서...여기서 다 밝히자면 한도 끝도 없지만 하루키가 제일 불만이었던 것은 아무래도 상시적으로 일본과 연락을 해야되는 상황상, 그 우편제도가 제일 불편했던 것 같다. 한때 1차 세계대전 당시 썼던 편지가 1960년대에 도착하는 일이 있었는데, 우리가 생각하기엔 그야말로 해외토픽감이고 어찌보면 불가사의한 일이지만 이탈리아 사람에게는 그게 그럴수도 있는 일이란 것이다. 그 정도로 이탈리아의 우편제도는 무지막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키가 그리는 이탈리아나 그리스의 모습은, 그의 글쓰기 능력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사람을 인도하는 묘한 매력을 주고 있다. 지금은 정말로,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이탈리아와 그리스를 여행하는 것은 단순히 여행이 주는 흥미진진함 이상의 그 무언가를 줄것같은 막연한 기대를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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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일리톨 2004-05-02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하고 비슷한 또래이신 것 같은데, 저와 똑같은 불만을 가지고 계시군요? ^^ 그래서 전 이번 추석정도에 친구와 한번 나가볼까 합니다. 거의 50%이상은 계획으로만 그칠 가능성이 다분하지만... 눈 꼭 감고 한번 감행해 보려구요...
참, 님의 서재에는 '마르크스의 복수' 서평을 보다가 들어왔습니다. 다음에도 들르죠.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