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 때문에 함석헌 선생님의 글을 읽고 있는데요. 소설가이며 기자였던 최일남 선생과의 인터뷰가 있어 발췌해서 옮겨 봅니다.

함석헌 전집 17권 『민족통일의 길』(1984, 한길사) “백성의 기개를 길러줘야 해” (원문은『신동아』1983년 10월호에서) 
 


341쪽 웰즈의 영향으로 나는 코스모폴리탄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나의 평화사상과도 관련이 있고 근본적으로는 우리 역사도 그런 관점에서 보는 것입니다.
(최일남 질문) 한국 역사도 그런 눈으로 보십니까,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그렇지요. 시작은 그렇다고 볼 수 있지요. 내가 기독교를 믿지만 과학적 사고나 서구사상을 믿지 않았다면 다른 목사들모양 진부한 보수주의에 빠졌을 것입니다.


342쪽
(최일남 질문) 민중이라는 것을 어떤 개념으로 파악하십니까?
-그거야 민족이지요. 그러나 민족주의는 반댑니다. 그걸로는 안돼요. 그래서 젊은이들과 만나면 내 생각이 잘 먹혀들어가지 않습니다. 나는 그들보고 말합니다. 민족주의는 지나간 지 오래다. 따라서 우리의 운명도 세계적 관련 위에서 파악해야 된다고요. 그런데 학생들은 안 그렇습니다. 생각이 뒤졌어요. 민족주의는 우리를 속이려고 내세우는 것입니다. 생각이나 사상은 남보다 앞서고 첨단을 걸어야 하나, 민족주의 자체만으로는 안됩니다.

(최 질문) 민족주의가 왜 뒤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근거는 무엇입니까,
- 한 민족에도 우리 편이 있고 우리 편 아닌 것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역사의 문제도 세계적으로 해석해야지 민족주의만으로 풀어가서는 안됩니다. 물론 민족 자체가 그렇다는 뜻은 아니고, 내셔널리즘만 가지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걸 모르고 민족주의만 내세우는 걸 보면 안타까와요. 식민지에서 해방된 것은 사실이나, 그것만 가지고는 우리의 목적을 달성할 수가 없어요. 세계 인류가 같은 운명으로 나가야 합니다. 민족은 영원한 것이니까 그걸 잊어버리자는 것은 아니나, 모든 문제를 풀어가는 기본이 민족에 있다는 것은 잘못입니다.

345쪽 인간에게 이성이 있다고 하나 이성만이 최고는 아니고, 우주적인 질서를 체험해야만 참 이성 노릇을 하는 겁니다. 그것이 없으면 아래로 끌어내려지고, 그것이 국가주의의 결함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어느 국가나 배타주의에 흐르게 되고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게 되는데, 이것이 몹쓸 것입니다. 나 아닌 사람은 다 몹쓸 것이라는 그 생각 자체가 몹쓸 것입니다. ..... 인간은 하나님을 뿌리로 해서 거기서부터 나온 것이라고 할 때 우주적인 질서가 생깁니다. 보다 높은 정신적 차원에 올라서지 않으면, 그리고 우주적인 체험을 재발견하지 않고서는 모든 일이 제대로 안돼요. 전쟁을 안한다면서 나라마다 무기는 자꾸 만들고..... 후진국들이 선진국을 따라잡는다지만 무엇을 따라잡느냐가 문제지요. 우리의 경우 우리의 잘못도 있으나 선진국 잘못 때문에 이렇게 된건데..... 그런 점에서 세계의 국가주의라는 것들이 잘못돼먹었습니다. 제3세계국가들이 해방된 것을 좋아하나, 그들은 다시 자기들을 억압하던 나라들을 발전의 표본으로 삼고 있어요. 그러다가는 티끌만 뒤집어쓰고 자기 길은 못 찾아갑니다. 신질서에 대한 체험을 들고 나와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수십 년 전 부터 하는 말이지만, “우로 돌아 앞으로 가!”해야 합니다. 남의 나라 뒤만 따라가서는 안돼요.

348쪽 지식 자체는 문제될 것 없고, 그 지식을 어떻게 써 먹느냐가 문제됩니다. 근세 3,4백 년 동안을 지내오면서 지식만 많으면 자동적으로 무슨 일이든지 잘 되는 것처럼 알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안되는 것 아닙니까.

-선생님은 항상 ‘비폭력’을 강조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답. 그렇지요. 종교는 비폭력일 수밖에, 사람이 사는 목적은 하나님 나라에 접근하거나 근사해지려는 것 아닙니까. 사람이 육신으로 살고는 있어도 제 나이가 되면 그것이 떨어져나가게 마련인데, 그때 정신은 따로 제 살림을 차려야 합니다. 따라서 내 생명 아끼려면 남도 존경할 줄 알아야 하지 않겠어요?

351쪽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면 어떤 희망이 있을까요.
답: 희망 있지요. 지금까지 밑천 들인 것을 잘 이용하면 말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를 덮어눌렀던 정치를 따라갈 생각만 하지 말고, “우로 돌아 앞으로가!”하면 새로 길이 열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자면 배운 사람, 안 배운 사람 하는 이기적인 생각부터 고쳐야 해요. 돈과 학식이 있다고 무식한 사람 깔보고 그래서는 안됩니다. 사회 것을 자기가 맡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해야지요. 그런 것을 고칠 수 있는 것이 종교인데 이것이 썩어가지고....

354쪽 -빈부의 차를 걱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답. 이대로 가면 더할 것입니다. 큰 문제에요. 몇 사람만이 세계적이고 일반사람은 형편없다는 것은 안 좋아요. 그런 것이 없어져야 합니다. 그렇다고 공산주의 놈들이 하는 일은 또 말도 안되고, 그래가지고 일이 돼야 말이지.

355쪽 - 우리나라의 장래를 어떻게 보십니까.
답: 낙관이나 비관 같은 건 생각도 안하고 이래도 하고 저래도 하고 그래야지요. 그런 점에서는 국민의 의욕이 떨어져 잇는 것 같습니다. 돈 모으는 데는 의욕이 강하나, 정신적으로는 의욕이 없어요. 좋은 일을 생각하고 개량해나가야지요.

355쪽 -또 아까 스웨덴 청년들이 말하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잘사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할 일이 없고 맛이 없습니다. 지금의 여기 맛이란 남 못 먹는 것 먹었다는 자랑이나 집 꾸미는 자랑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잘못된 생각입니다. 사람은 자기 속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것만 넣어줄 수 있다면 가난이 오히려 좋은 것입니다. 요컨대 내 마음에 보람을 느끼느냐 못 느끼느냐가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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