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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기다림
오츠이치 지음, 김선영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 오츠이치의 국내 출간 목록 ◈
2004.04. 너밖에 들리지 않아
2006.01. 쓸쓸함의 주파수
2007.07. ZOO
2007.08.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
2008.05. 암흑동화
2008.05. GOTH(리스트 컷 사건)
2008.10. 미처 죽지못한 파랑
2008.12. 어둠속의 기다림
내가 읽은 오츠이치의 작품은 <ZOO> 뿐이다.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는 온라인 서점에서 구입했는데 생각보다 지나치게 얇은 두께에
한 번 실망하고 어쩐지 집중이 잘 되지 않아서 몇 페이지 읽다가 책장에 꽂아둔 상태이다.
그럼에도 오츠이치의 이야기는 마냥 칠흙같은 어둠을 다루고 있거나.
상식을 벗어난? 이야기일거란 지레 짐작은.
아마 얼마전 그의 소설 <GOTH>의 판매금지처분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회사로 배송되어 온 이 책을 퇴근길 지하철에서 무료함을 달래기위해 무심코 열고
겨우 몇장을 뒤적였을 뿐인데. 그냥 덮어서 책장에 꽂아둘 수가 없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섬세한 표현과 쓸쓸함이 감도는 분위기는 나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고
(쓸데없이) 표지에 연연하는 내게 이 책의 표지는. 내용을 한껏담고 뽐내고 있었기에
더욱이 읽어낼 수 밖에 없었다.
어느날 교통사고로 앞을 보지 못하게 된 미치루는 아버지와 둘이 살고있었지만 그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자 외부와의 소통을 단절한 채 혼자서 하루하루 식물같은 삶을 이어나간다.
어둠은 곧 익숙해졌고 어느새 그녀에게 집안에서의 어둠은 따스하고 안정적이기까지 했는데
그런 그녀의 고독한 어둠속에 어느날부턴가 이질감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어딘지 모르게 일그러진 공기의 흐름이라던지, 평소와는 다르게 줄어드는 음식물들은
더이상 그녀의 공간이 그녀만의 안전한 공간이 아님을 일깨워주며 그녀를 위협하는데..
그 정체는 출근길 다가오는 열차를 향해 직장동료를 밀어 살해한 용의자로 경찰에 쫓겨
미치루의 집안에 몰래 숨어든 폐쇄적인 성격의 아키히로.
절대로 자신의 존재를 들켜서는 안되는 아키히로와
그의 정체를 눈치챘음을 들켜선 안되는 미치루.
이런 구조때문에 소설 속에서 등장인물들의 대화는 그다지 많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자칫 무거워지거나 단조로워질 수 있는 흐름을 작가는, 섬세한 묘사와 표현으로
마치 눈에 보이듯 세밀하게 그려내고있다.
이 두 사람의 기묘한 동거는 책을 읽는 내내 쓸쓸하고 안타까운 서늘함이 느껴졌지만
마지막으로 책장을 덮으면서는 웃을 수 있었던, 모처럼 소통과 단절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
따뜻한 시간을 선물받은 기분이었다.
오츠이치라는 작가가.
이렇게 섬세하게 감정을 묘사할 수 있는 작가였나..? 하는 자문과 함께.
오츠이치의 재발견은 큰 수확이었다!
주저리.
작년 5월에 학산에서 출간 된 오츠이치의 소설 <GOTH>가 판매 2개월만엔가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로부터 유해간행물로 결정되어 판매금지 처분을 받았다.
잔혹한 묘사 등이 인간의 존엄성과 건전한 사회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다나 뭐라나.
그래서 지금 대부분의 온라인서점에선 [절판]이라는 두 글자만 선명히 남아있는 상태다.
민주주의도 거꾸로 가고 있는 이 마당에 역시 시대를 거꾸로 살아보겠다고 바둥거리시는
어르신들 덕분에 이제 <GOTH>의 초판은 레어아이템이 되었다.
정확한 기준도 없이 '인간의 존엄성과 건전한 사회질서를 해칠 우려'따위의 소리나
해대는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라니.. 그럼 허구헌날 신성한 국회에서 막말도 모자라
이젠 마치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을 방불케하는 블록버스터 영화를 자체제작하기에
이른 우리의 9시 뉴스도 19세 미만 관람불가 등급 좀 매겨주시지.
아이들이 반사회적이며 반정치적 성향을 가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뭐, 이런 얘기 주절주절 늘어놓다가 5공때마냥 쥐도새도 모르게 남산으로 연행되는
불상사가 벌어질지도 모르는 노릇이니 이쯤해두고.
무튼 난 아직 읽지 못했지만 이러한 상황을 받아들이는 대다수의 독자들의 반응은,
뒤늦게 19세미만 구독불가(이하 19금) 등급을 받은 라이트 노벨 <에나멜을 바른 혼의 비중-사토 유야>나, 마찬가지로 19금 등급의 <살육에 이르는 병-아비코 다케마루>, 아무런 제재도 받지않은, 제목도 미스터리한;;;;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히라야마 유메아키> 보다도 덜 잔인하다는 후문과 함께 어리둥절해하는 반응인데.
이런 간행물윤리위원회의 결정은 오히려 대중들의 궁금증을 증폭시켜 판매고에 일조하는
양상을 보여주니.. 어쩌면 이것은 모조리 음모?? -_ -;;;;;
(현재는 19금딱지를 달고 출간중이라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한번쯤 읽어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