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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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언 매큐언이 신작을 냈다. 그의 작품 『속죄』, 『넛셸』, 『체실 비치에서』등 몇 가지 작품을 재미있게 읽었다. 그의 몇몇 소설은 영화화되기도 하였는데, 『속죄』는 키아라 나이틀리 주연의「어톤먼트」로, 2019년에는 『칠드런 액트』가 동명의 영화로 개봉되었다. 그만큼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있고 흡입력 있는 소설로 즐거운 독서경험을 주었기에 신작이 나왔다는 홍보글을 보았을 때 관심이 갔다.


이 책의 띠지에는 '바퀴벌레들이 영국 의회를 장악했다?! 카프카의 변신 모티프로 그린 이언 매큐언의 신랄한 풍자극'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카프카 작가를 좋아해서 체코로 여행 갔을 때 카프카 관련 장소를 일부러 찾아 방문했던 나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조합이었다. 그래서 자세히 살펴보지 않고 서평단을 신청하여 읽게 되었다. 다 읽고 났을 때는 카프카의 느낌이 전혀 없다는 깨달음과 정작 내용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가 가지 않아 연거푸 세 번을 다시 더 읽어야 했다. 군데군데 밑줄을 긋고 나서야 중심 사건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불쌍한 그레고리 잠자는 눈을 떴을 때 자신이 벌레라는 참혹한 깨달음을 얻고 나서도 가족과 일을 걱정하며 적응하기 위해 애를 쓰지만, 이 책의 짐 샘스는 초반에 인간 육체가 낯설게 느껴졌을 뿐 금세 적응하고 본연의 임무를 떠올려낸다. 짐 샘스 몸 안에 있는 것은 사명을 띤 바퀴벌레로, 의원들이 회의하는 것을 몇 번 들으면서 인간 사회를 간파해내 어려움 없이 인간인 척 위장에 성공한다. 그는 '역방향주의'라는, 인간 사회를 무한 생산과 소비를 가속화시킬 이상한 개념을 영국의 법안으로 통과시킨다.


 '역방향주의'는 소비와 생산을 뒤바꾼 혼종으로 물건을 구매하는 사람은 상점으로부터 물건에 해당하는 돈을 받는다. 즉, 쇼핑으로 돈을 번다. 그러나 돈이 쌓이는 것은 전혀 이로운 일이 아닌데 돈을 쌓아둘 경우 마이너스 이자를 내야하며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또한 고용된 사람의 경우 본인의 월급에 해당하는 돈을 직장에 내야만 한다. 완전 쇼핑이 완전 고용으로 이어진다는 이 요상한 발상은 의원들의 몸을 차지한 바퀴벌레들에 의해 밀어붙여진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와의 사건을 이슈화시켜 외교적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정치적 경쟁자는 거짓 미투로 사회적 활동을 하지 못하게 만들거나 SNS를 활용한 단발적이고 우악스러운 여론 형성이 이어진다. 실제 영국에서 일어났던 사건과 얼추 비슷한 사건들이 있어 허구적인 소설 속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현실 비판적 어조를 읽어낼 수 있었다.


 공감되는 상황이 없진 않았으나 영국의 정치적 상황을 주로 다루기 때문에 감정 이입이 되지 않아 흡입력 있게 넘어가진 않았다. 이 주제는 차라리 작가의 에세이로 작성되거나 작가가 비판하고 싶은 부분에 대해 사실적으로 진술하는 편이 더 낫지 않았을까. 의회를 점령한 바퀴벌레라는 설정은 개연성이 있지도, 바퀴벌레의 주장에 동조하기도 어렵다. 


 만약 내가 이 책의 띠지를 만든다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카프카를 전면에 내세우기 보다 이 책에서 비판하고 있는 야만적인 부분에 대한 은유를 넣거나 책 속의 구절-p.57 '최고위층의 성명이 필요합니다.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야기된 흥분을 가라앉혀야 합니다.'-을 인용하여 감정적으로 부추기는 정치인들의 음흉한 행보를 비판하는 암시를 넣었을 것이다. 그 편이 이 책을 읽는 독자의 기대를 꺾지 않는 방법일 테니까.


 비록 내 기대는 충족되지 않았지만 그랬다고 해서 이 소설이 꼭 나쁘게 읽힌 것만은 아니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대선을 둘러싼 정치적 긴장과 정치인의 행동들이 작가가 비판하는 부분들과 유사한 부분이 있어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어떤 사건에 대해 사람들이 동물처럼 반응하도록 유도하는 사회 보다 한 발짝 물러나서 찬찬히 검토해볼 수 있는 여유를 주는 사회에 소속되고 싶다. 요즈음은 잔뜩 곤두선 사람들의 질타와 비난이 피로감과 환멸을 불러일으켜 많은 사람들이 냉소적으로 반응하게 만드므로. 사실 이 모든 것은 어둠 속에서 이를 갈고 있는 바퀴벌레의 음모일 수도 있으니 평화롭게 삽시다, 모두.            


최고위층의 성명이 필요합니다.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야기된 흥분을 가라앉혀야 합니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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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블렌디드 프로젝트 수업 - 바로바로 적용할 수 있는 BLENDED PBL
김은별.박오종.배현명 지음 / 에듀니티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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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가 몇 년 째 우리 일상에 끼어들면서 피로한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아쉬운 점도 있지만 허둥대던 온라인 수업도 안정화되고 잘 운영되어가고 있다. 최근 학교 자율과정 전문적 학습 공동체에 참여하면서 학습 내용이 서로 연계되며 학습자의 삶이 반영되는 프로젝트 학습을 구현하기 위해 2학기를 어떻게 설계할지 고민이 많았다. 그때 인디스쿨을 통해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제공받은 이 책, 『초등 블렌디드 프로젝트 수업』이 다양한 아이디어를 불어넣어 주었다.


 온오프라인 학급을 운영하면서 전국의 많은 선생님들은 다양한 에듀테크를 활용한 수업을 연구하고 있다. 카훗, 멘티미터 등에 관한 연수는 여러 번 보았는데 그 밖에 생소한 프로그램들이 많이 나와 있었다. 유용했던 점은 수업에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가 나와 있어서 프로그램을 파악하기 쉬웠고 내 수업에 어떻게 적용해볼 수 있을 것인지 상상해볼 수 있었다.  


 김은별, 박오종, 배현명 선생님께서 자신의 수업에 대한 일화도 적어주셨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선생님, 바보'라고 말한 학생에 대한 너그러움이었다. ZOOM 연결이 안정적이지 않은 상황이 자주 발생하는데 그 상황에서 학생의 답을 제대로 듣지 못한 선생님께 반 학생이 '선생님, 바보'라고 말했다고 한다. 만약 나였다면? 바로 정색하고 선생님께 예의없는 행동을 해 서는 안 된다고 지도했을 것이다. 그리고 좋지 않은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 몇 분의 시간과 감정적 노력이 수반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열정적인 이 선생님께서는 학생을 지도하기 보다 '아, 줌 환경이 안정적이지 않아 학생과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구나.' 아쉬움을 표현하셨다. 


 정말 요즈음의 교직 분위기를 생각해보면 흡사 성직자의 태도로 근무하시는 분들이 계신 듯 하다. 나는 사회적 분위기가 교사에게 지나친 기대를 걸며 무리한 감정 노동을 강요하는 상황에 반감을 느끼고 있는데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도 소통을 늘려가며 오해를 풀고 관계를 맺어가는 선생님들이 있었다. 진심으로 대단한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이 분들의 일화와 내가 겪고 있는 학교 현장에 대한 경험으로 비추어보았을 때 해결책은 함께 나아가되 서로를 존중하지 않는 행동에 대해서는 경계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학부모와 학생들은 교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도 본인의 의도와 다르게 교사를 존중하지 않는 행동과 말을 하곤 한다. 기분이 나쁘더라도 부정적인 감정을 자제하고 상대의 행동이 나에게 어떻게 느껴졌고, 앞으로의 관계를 위해 어떻게 대해주었으면 좋겠는지 설명해야 한다. 쉽지 않지만 긴밀하게 협력해야 하는 관계이므로 적지 않은 노력이 필요하다.


 2학기에 대한 나의 계획은 젬보드를 활용해볼 것이고, 부엉이 상담소와 같은 형식으로 온 책 읽기를 지도해볼 것이다. 나는 주로 학생의 경험을 상기하며 우리 반 학생의 상황에서 질문을 던지는 발문 위주로 수업을 진행했는데 이 책에 소개된 방법 중 하나인 등장인물의 상황에서 인물의 마음이 드러나는 편지를 학생들에게 제공하고 답장을 받아보는 방법은 무척 효과적이라고 여겨졌다. 또한 실시간 쌍방향 수업 상황에서 딩동 답장으로 쉽고 빠르게 학생들의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도 좋은 수업 팁이었다. 뿐만 아니라 책 씨앗 사이트의 존재도 알게 되어 상당히 많은 도움이 되었다.


 책 속에 소개된 선생님들의 꺼지지 않는 열정에 나의 지친 마음에도 의욕이 꿈틀거렸다. 다가오는 방학에는 나만의 교사교육과정으로 프로젝트 중심의 수업이 운영될 수 있도록 많은 고민을 해보아야겠다. 


 * 본 책은 인디스쿨의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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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시아의 여정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5
윌리엄 트레버 지음, 박찬원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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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정한 속삭임이 사랑인 줄 알았다. 짧은 기간 머무르면서 나를 흥밋거리로 이용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처음부터 떠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가족의 수치가 되어 창녀라는 비난을 받더라도 소박한 부엌에서의 자리를 지켰을 수 있었다. 그의 연락처도 없이 그가 떠났을 때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펠리시아는 공황에 빠졌다. 그녀는 증조할머니의 돈 일부를 털어 조니를 찾아 낯선 세계를 헤매는 것을 선택한다.


 거듭되는 불경기로 사람들의 일자리는 쉽게 사라졌다. 조니가 다니고 있을 것이라 짐작되는 잔디깎이 공장을 수소문하지만 들르는 곳마다 공장이 폐쇄되었거나 다른 곳으로 옮긴 뒤였다. 조니의 아이를 임신한 채 알아듣기 어려운 억양의 사람들 속에서 펠리시아는 황망해한다.


 누구에게도 행선지를 알리지 않은 채로 떠도는 외국인 여자아이. 펠리시아는 힐디치가 남몰래 바라는 욕망을 충족시킬 도구였다. 젊은 여자와 성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매력적인 존재로 비쳐지기를 갈망하는 힐디치는 펠리시아의 연약한 처지를 이용해 도움을 주는 척하며 그녀와 함께 있는 자신에 대해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여주기를 바란다.


 조니의 아이를 지운 죄책감에 고뇌하고 눈물을 흘렸을 때 그녀 곁을 지킨 사람은 학대받은 적 있는 살인마였다. 힐디치의 진실을 깨달은 펠리시아는 간신히 탈출해 떠돌이로서의 삶을 살아가며 자신이 겪은 것을 원망하지 않는다. 아이를 지운 자신의 죄는 살인마로부터 도망친 것으로 상쇄되었다 느끼며 흘러갈 뿐인 현재에 스스로를 맡긴다.


 조니와 힐디치에게 펠리시아는 수단이었다. 타인을 자신의 욕망을 실현할 도구로 여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유희를 위해, 다른 사람에게 나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 것은 으스댈 건수가 아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자신의 부당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 행동은 잘못임을 아는 사람이 적다.

 

 펠리시아가 부당한 착취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했던 것은 세상물정이었을까. 그녀는 순진했기 때문에, 어리석어서 이용당한 것일까? 나는 관계 맺기에는 위험 부담을 감수하고 자신의 마음을 내어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펠리시아는 어리석었다기 보다는 용감했다고 판단했다. 그녀는 조니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믿었고, 불안한 상황에도 희망을 가졌다. 낯선 곳에서도 쉽게 포기하지 않고 그녀가 추구했던 것을 향해 계속해서 나아갔다.


 비록 그녀가 겪어야 했던 결과는 악순환의 연속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얽매이는 것보다 나아가는 것을 선택했다. 거듭된 상실 속 단단해지고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도 따스한 햇살 속에서 그녀만의 안온한 시간을 찾을 수 있었다. 그녀는 조니를 원망하지 않았다. 마치 뜻을 좇는 구도자처럼 고통을 극복하면서 삶을 잔잔하게 곱씹는다. 다른 사람들의 선의를 느끼고 그녀를 둘러싼 환경을 바라보면서 계속 나아간다.


 한순간의 실수 때문에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것에 실패한 지워진 삶. 어느 순간엔가 헛헛함과 원망이 한가득 흘러들어올 때 펠리시아는 다시 극복할 수 있을까. 조니, 그리고 힐디치를 겪으며 이전의 펠리시아는 사라진 것이 속상했다. 또 우리 사회에도 펠리시아와 같은 어려움을 겪는 여자아이들이 많다. SNS로 연락해 현혹하고 기프티콘, 현금으로 취약한 아이들의 성을 사려 들거나 신체 사진 일부를 얻으려는 사람들은 약한 처벌을 받거나 아예 처벌받지 않기도 한다.


 타인에 대해 공감할 감수성이 부족하다면 문학작품으로나마 이해의 폭을 늘려야 하지 않을까. 이기적인 착취가 한 명의 개인적인 삶과 영혼에 얼마나 큰 해악을 끼칠 수 있는지 가늠하고 스스로 행동을 단속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니와 힐디치처럼 취약한 사람들을 이용하고 파괴하는 행동을 멈출 수 없을 것이며 언젠가는 잘못이 드러나 공동체로부터 배격되는 것은 자신이 될 것이다.


 이야기가 품고 있는 깊이를 헤아리느라 많은 시간이 걸렸다. 되짚어 읽고 인물의 마음을 상상해 보았다. 잡생각이 들게 하면서 나를 옭아매는 사소한 갈등과 원망에 사로잡히지 않고 담담하게 흘려내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했다. 파문을 그리다 잔잔해지는 물결처럼 여운이 남았다.




적의를 품은 어머니가 막아주리라는 영악한 계산속에 연락할 방법도 남기지 않고 떠나버린 이 막돼먹은 녀석에게 속아 그녀가 겪어야 한 일을 생각하면 경악스럽다. 힐디치 씨는 함께 카페에 앉아 문을 바라보고 있을 때면 시도 때도 없이 흐르던 그 눈물을, 어느 공장에서 또 다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을 때 그녀가 겪은 괴로움을, 그리고 뱃속의 아기를 지울 때 그녀가 느끼던 죄책감을 기억한다. - P265

밤이면 도시에 잔광이 어린다. 새벽이면 그녀의 고독 속에 행복이 깃든다. - 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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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지만 없는 아이들 - 미등록 이주아동 이야기
은유 지음, 국가인권위원회 기획 / 창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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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대 후반의 삶은 불안과 기대로 꽉 차 있다. 특히 한국의 10대는 대학 진학에 대한 압박이 있어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가족의 지원을 받으며 미래를 준비해야 할 학생들 중에서는 내일이 없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무기력한 좌절을 겪는 아이들이 있다. 체류권을 인정받지 않은 부모가 한국에서 자녀를 기를 경우 해당 아동은 있으되 없는, 마치 유령과도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된다. 미등록 이주아동의 이야기이다.

  의료 보험을 받을 수 없어 병원에 가는 것을 꺼리게 되고, 콘서트 예매도 안될 뿐더러 보험에 가입되지 않아 수학여행 등의 학교 행사에도 참여할 수 없다. 학생들과 같이 고등학교를 다닐 수는 있지만 대학 진학은 허용되지 않는다. 미등록 상태인 것을 들키게 될까봐 경찰 조사 받는 일을 피하기 위해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알아서 몸을 사려야 한다.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꾹 참아 넘기는 일이 더 많다는 뜻이다. 언제 퇴거명령을 받게 될지 몰라 불안하다. 몇십 년을 살아온 한국을 떠나 한 번도 가지 않은 부모님의 모국에 갑자기 뚝 떨어지게 될 수도 있는, 연속성이 없는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면서 우울증을 겪는 학생들도 있다.

  해외에서는 미등록 이주아동에게 체류자격을 인정해주는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있고 그들의 노동력이 필요한 상황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수십 년간 한국에 머무르며 생활한 이주민들에게는 지금보다는 좀더 허용적인 태도로 그들의 체류자격을 인정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더군다나 부모의 선택 때문에 태어났을 때부터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아 존재가 거부되었던 아이들이라면 그들의 학습권을 보장하고 자신의 노력한 것에 따라 정당한 결과를 받을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난민 문제에 관한 나의 생각은 그다지 트여있지 않았다. 지방의 범죄율을 높인다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먼저 떠올랐다. 또한 종교 갈등, 테러의 위험들도 떠올랐다. 다르기 때문에 다름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발생하는 편견 탓에 관련 문제에 깊이 생각하는 것을 꺼렸다. 그런데 그 문제 안에는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되지만 나는 안 되는 것을 꾸역꾸역 받아들이면서 이런 처지로 내몬 부모님을 원망하는 아이들. 기회를 보장받아야 할 젊음은 수 없이 부정당하면서 꺾이고 있었다.

  재작년에 교원으로서의 나는 다문화 사회를 생각하며 한국어 교원 자격증을 취득했다. 2017년에 우리 반으로 일본에서 이민 온 학생이 전학을 왔는데 한국어가 서툴었다. 취미 겸 학생을 돕기 위해 일본어를 배웠는데 우리 반 전학생의 노력이 훨씬 더 빨랐다. 드문드문 교과서 몇 페이지인지 일본어로 읽어줄 때 전학생은 몇 시간이 걸려서 일기 한 편을 써냈다. 학기 말까지는 서툰 발음이 남아있던 한국어가 다음 학년에서는 스스럼없이 다른 친구들과 길게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 내가 학생의 모국어를 습득하는 것보다 학생이 한국어를 습득하게 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더 빠르고 학생의 적응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어 한국어 교원이 되기 위한 교육을 신청했다.

  내가 만날 학생들이 한국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일만 생각했었는데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우리 주변에 살아가지만 평범한 삶을 인정받지 못해 괴로워하는 아이들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적어도 아이들에게는 어느 순간 지금의 삶이 끊겨나갈 지도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살아가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가 필요하지 않을까. 부모도 없이 한국에서 추방되어 낯선 타국에 뚝 떨어지게 될 삶을 상상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힘겨운 일일까.

  나와 시간을 함께 보낸 내 친구가 이란으로 추방되어 폭력에 노출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시험기간에도 불구하고 선생님과 같이 이주아동을 도왔다는 학생은 난민과 관련된 내용을 강의하는 강사가 되었다고 한다. 언젠가부터 우리 주변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주민들에 대한 편견을 거두고 그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들어 볼 필요가 있다. 합법적인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는 카림과 달리아에게 희망적인 기회가 부여되길 바란다. 달리아가 직접 쓴 시는 따뜻하고 다정한 마음이 담겨 있어 울림이 있었다. 그녀의 재능이 마음껏 실현될 수 있도록 지금의 제도가 보다 폭넓게 품을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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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도 학교 가기 싫을 때가 있습니다 - 상처 입기 전에 알아야 할 현명한 교권 상식
김택수 외 지음 / 창비교육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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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사와 변호사의 좌담을 책으로 엮어낸 이 책은 현장의 선생님들이 학생, 학부모, 동료 교사, 관리자로부터 겪는 어려움을 다양하게 다룬다. 때로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해결한 방법을 설명하기도 하고 변호사를 통해 관련 법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학교 현장과 관련된 법을 해설하는 책들은 이미 많았다. 이보람 변호사의 『학교폭력 대처법』 도 있고, 박종훈과 정혜민 변호사가 공저한 『교권, 법에서 답을 찾다』도 있다. 나는 정혜민 변호사의 법 관련 강의를 듣고 나서 책을 읽어보았는데 판례 중심으로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어서 어떤 맥락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이 문제가 되는 지를 파악할 수 있어서 좋았다.

다만 이 책은 앞의 두 책과 다르게 교사가 직면하는 학교 현장의 총체적인 어려움을 때로는 거시적으로 보거나, 또 한편으로는 개별적인 학급의 세세한 면을 들여다 보는 학교 현장에 있는 선생님의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담았다. 길지 않은 책의 분량에 비해 다루고 있는 내용이 많아 좀더 자세하게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을 만큼 막연하게 비쳐지는 때도 있었지만 공감이 가는 구절들이 많았다.

가장 이상적으로 느껴졌던 것은 공식적인 창구 만들기이다. 지난 주 일요일 오후에도 학생의 개인 문자가 와서 전체적으로 지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오후에 또 학생의 개인 문의가 왔다. 학생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불편한 마음이 든다. 기한 내에 알려야 하는 내용이 많고 원격 학습일, 등교 학습일이 나뉘어 있다보니 전달이 안될 때가 많아 개인 번호를 공개하였는데 퇴근 시간 이후에도 개인 문의가 온다는 것은 나의 휴식을 방해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다.

만약 공식적인 창구가 있고 이를 통해서만 연락이 된다면 퇴근 시간 이후의 연락으로 인해 발생하는 불편한 감정이나 갈등이 더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최근 하이클래스 앱에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앱을 통해 정해진 시간 동안 문자와 전화를 주고 받도록 하였는데 작년에 써보니 중간에 끊기거나 연결이 되지 않을 때가 많아 결국 쓰지 않게 되었다. 그렇지만 방과 후 연락으로 불편한 마음을 느껴 스트레스를 받는 것보다는 하이클래스 앱을 쓰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여러 사람과 다양한 입장이 얽혀 있는 학교이기에 함께 풀어나가야 할 문제들이 많다. 서로의 입장을 헤아리고 다른 생각을 존중해야 하는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 교사를 대하는 사회적인 시선과 제도가 미비하다는 것에 동감하며 이를 보완하고 개선하기 위해 개인적인 의견을 쌓아나가는 노력을 계속해나가야겠다.


또한 온라인 학습 상황에 관계가 줄어든 학생들을 서로 이으려는 노력,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 피드백으로 혼란스러운 학부모와 소통하려는 노력도 계속해나갈 것이다. 2주 정도 지났는데 학생들과의 연결 고리는 충분히 잘 만든 것 같아 내심 뿌듯하다. 새롭게 가입하게 된 연구회 활동도 열심히 하면서 교육과정 전문가로 학부모의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올해도 힘차게 끌어나가야겠다.

*본 리뷰는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https://blog.naver.com/yahoo2805/222275336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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