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지만 없는 아이들 - 미등록 이주아동 이야기
은유 지음, 국가인권위원회 기획 / 창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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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대 후반의 삶은 불안과 기대로 꽉 차 있다. 특히 한국의 10대는 대학 진학에 대한 압박이 있어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가족의 지원을 받으며 미래를 준비해야 할 학생들 중에서는 내일이 없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무기력한 좌절을 겪는 아이들이 있다. 체류권을 인정받지 않은 부모가 한국에서 자녀를 기를 경우 해당 아동은 있으되 없는, 마치 유령과도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된다. 미등록 이주아동의 이야기이다.

  의료 보험을 받을 수 없어 병원에 가는 것을 꺼리게 되고, 콘서트 예매도 안될 뿐더러 보험에 가입되지 않아 수학여행 등의 학교 행사에도 참여할 수 없다. 학생들과 같이 고등학교를 다닐 수는 있지만 대학 진학은 허용되지 않는다. 미등록 상태인 것을 들키게 될까봐 경찰 조사 받는 일을 피하기 위해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알아서 몸을 사려야 한다.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꾹 참아 넘기는 일이 더 많다는 뜻이다. 언제 퇴거명령을 받게 될지 몰라 불안하다. 몇십 년을 살아온 한국을 떠나 한 번도 가지 않은 부모님의 모국에 갑자기 뚝 떨어지게 될 수도 있는, 연속성이 없는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면서 우울증을 겪는 학생들도 있다.

  해외에서는 미등록 이주아동에게 체류자격을 인정해주는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있고 그들의 노동력이 필요한 상황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수십 년간 한국에 머무르며 생활한 이주민들에게는 지금보다는 좀더 허용적인 태도로 그들의 체류자격을 인정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더군다나 부모의 선택 때문에 태어났을 때부터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아 존재가 거부되었던 아이들이라면 그들의 학습권을 보장하고 자신의 노력한 것에 따라 정당한 결과를 받을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난민 문제에 관한 나의 생각은 그다지 트여있지 않았다. 지방의 범죄율을 높인다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먼저 떠올랐다. 또한 종교 갈등, 테러의 위험들도 떠올랐다. 다르기 때문에 다름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발생하는 편견 탓에 관련 문제에 깊이 생각하는 것을 꺼렸다. 그런데 그 문제 안에는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되지만 나는 안 되는 것을 꾸역꾸역 받아들이면서 이런 처지로 내몬 부모님을 원망하는 아이들. 기회를 보장받아야 할 젊음은 수 없이 부정당하면서 꺾이고 있었다.

  재작년에 교원으로서의 나는 다문화 사회를 생각하며 한국어 교원 자격증을 취득했다. 2017년에 우리 반으로 일본에서 이민 온 학생이 전학을 왔는데 한국어가 서툴었다. 취미 겸 학생을 돕기 위해 일본어를 배웠는데 우리 반 전학생의 노력이 훨씬 더 빨랐다. 드문드문 교과서 몇 페이지인지 일본어로 읽어줄 때 전학생은 몇 시간이 걸려서 일기 한 편을 써냈다. 학기 말까지는 서툰 발음이 남아있던 한국어가 다음 학년에서는 스스럼없이 다른 친구들과 길게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 내가 학생의 모국어를 습득하는 것보다 학생이 한국어를 습득하게 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더 빠르고 학생의 적응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어 한국어 교원이 되기 위한 교육을 신청했다.

  내가 만날 학생들이 한국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일만 생각했었는데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우리 주변에 살아가지만 평범한 삶을 인정받지 못해 괴로워하는 아이들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적어도 아이들에게는 어느 순간 지금의 삶이 끊겨나갈 지도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살아가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가 필요하지 않을까. 부모도 없이 한국에서 추방되어 낯선 타국에 뚝 떨어지게 될 삶을 상상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힘겨운 일일까.

  나와 시간을 함께 보낸 내 친구가 이란으로 추방되어 폭력에 노출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시험기간에도 불구하고 선생님과 같이 이주아동을 도왔다는 학생은 난민과 관련된 내용을 강의하는 강사가 되었다고 한다. 언젠가부터 우리 주변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주민들에 대한 편견을 거두고 그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들어 볼 필요가 있다. 합법적인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는 카림과 달리아에게 희망적인 기회가 부여되길 바란다. 달리아가 직접 쓴 시는 따뜻하고 다정한 마음이 담겨 있어 울림이 있었다. 그녀의 재능이 마음껏 실현될 수 있도록 지금의 제도가 보다 폭넓게 품을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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