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위한 변론 - 우리가 잃어버린 종교의 참의미를 찾아서
카렌 암스트롱 지음, 정준형 옮김, 오강남 감수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이 나라는 밤거리 풍경 속에 붉은 네온사인 교회 십자가가 너무나 많이 보이는 나라다. 명동 한복판에서는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로 외치고, 지하철에서 하루에 한 번은 '주 예수를 믿으라'고 소리치는 사람을 볼 수 있다. 나 역시 기독교 신자이지만, 그런 풍경을 보며 선교가 아닌 '장사'를 떠올렸다. 게다가 최근의 '봉은사 땅밟기'라는 사태를 보며 저들이 믿고 있는 것이 기독교인지 어느 지방의 원시종교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든다. 살기가 힘든 만큼 마음을 둘 곳이 없어 그렇게 종교에 의지하는 게 아닌가 싶다. 단순히 '예수 믿으면 천국간다'고 믿는 단순한 사람이든, 그런 건 안 믿지만 '인맥을 만들기 위해' 교회에 나가는  돈 많고 야심 많은 사람이든 절대적인 존재에게 무언가를 빌고 싶고,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테니까.

이 책은 그렇듯 어딘가에 의지하고 싶고, 마음을 가다듬고 싶은 사람들에게 본래 종교의 역할이 그런 것이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책이다. 꾸준히 마음을 가꾸고 비우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영혼을 돌보는 것. 불교든 기독교든 이슬람교든 가장 본질적인 종교의 기능은 '영성 수련'이었다는 것이다. 교회에 가 기도를 하거나 절에서 불공을 드리는 것도 현대인들이 관심을 가지는 명상이나 요가처럼 자기 수련을 하는 행위와 결국은 통한다는 이야기다.

요즘은 종교 간의 분쟁이 엄청나게 심하기도 하지만, 반면에 옛날보다 종교 간의 구분이 유연해지는 경향도 보이는 것 같다. 가령 사찰에서 진행되는 템플스테이에 기독교인들도 종종 참가하고, 기도할 때 오체투지를 활용하기도 한다는 것. 현대인들이 신앙이란 결국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라는 결론으로 점점 다가가고 있는 것일까.  

"오늘날 서구의 헬스클럽에서 가르치는 것과는 달리 원래 요가는 유산소 운동이 아니라 본능적인 행동과 통상적인 사고방식을 체계적으로 무너뜨리는 훈련이었다. (...)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생각들을 잠재우고 몇 시간 동안 어느 한 가지에만 집중하는 법도 익혔다. 이런 훈련을 꿋꿋이 해내다 보면 일상의 의식이 해체되면서 생각으로부터 ‘나’를 뽑아낼 수 있었다." 종교라는 것은 '행하는 것, 실천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이런 구절에서 현대의 '말만 난무하는 신앙'과 대비되는 고대의 종교, 즉 '실천과 자기 수련'이라는 종교의 모습을 보여준다. 종교를 가졌든 가지지 않았든 열린 마음과 사고를 위해 한 번 쯤 새겨들을 만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외로움이 외로움에게 - 지구 위를 혼자 여행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위로, 개정증보판
김남희 글.사진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춥다. 믿을 수 없이 짧은 가을이, 믿을 수 없이 빠르게 지나가버렸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 가을이 오려나싶어 들고나간 가을 자켓들은 중년의 아저씨가 하루 왼종일 서서 다림질을 하고 기계를 돌려도 하루에 몇 벌 작업하지 못하는 좁은 세탁소에서 3주 동안이나 무한대기하다가, 칼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즈음에야 내 옷장으로 걸어들어왔다. 그 사이, 겨울이 왔다.  

자전거는 꼼짝없이 방 안에 갇혔고 집집마다 보일러 연통에서 뽀얀 연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날이 선선해지면 꼭 바다를 보러 가자던 애인과의 약속도 가을 자켓이 세탁소에 감금된 3주 동안 사라져버렸다. 깜빡 자고 일어난 것처럼 짧은 가을이었지만, 몰아치는 일 속에 허우적거리던 우리에게 그건 또 지루한 여름만큼이나 길었다. 바람이 차게 불기 시작하니 몸은 자꾸 더 움츠러든다. 순간순간 움찔거리며 겉옷을 꼭꼭 겹쳐입고 둔한 움직임으로 반복적인 출퇴근을 반복하다보니 이러다 영영 집과 회사에만 갇혀버릴 것 같다.  

 고백하건대, 나는 여권이 없다. 그러니까, 지난 30년 동안 단 한번도 대한민국을 벗어나 본 적이 없다는 뜻이다. 심지어 제주도도 아직 못가봤다. 마음은 이미 세계 일주를 하고도 남았겠지만, '내가 있는 곳'에서 물리적으로 거리가 멀어진다는 것은 내게 '불안'을 의미했다. 길을 떠난다는 것은 두려움이자, 고난이자, 공포이기도 했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은 항상 뜨거웠지만 낯선 공간에 대한 두려움은 늘 그것을 압도했다.  

 

그래서 여행서들을 읽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대신 경험한 사람들의 입을 빌어 내가 겪어보지 못한 세계를 만난다는 안도감. 그런 것. 여행기가 공간에 대한 감상이나 상념으로만 채워져있는 건 매력이 없다. 사람들이 길을 떠나는 것은 낯선 '공간'에 대한 탐닉이 아니라 낯선 '세계'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지 않을까. 그 '세계'에는 당연하게도 언제나 '사람'이 있다.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나는 사람 사는 이야기는 의외성과 드라마를 동시에 안겨준다.  

'지구 위를 혼자 여행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위로'라는 온화한 부제가 인상적이었던 <외로움이 외로움에게>는 그런 의미에서 책의 주인공은 여행이 아니라 사람과 삶이었다. 사람이기에 필연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외로움과 여행자의 고독한 여정을 찬찬히 쓰다듬는 저자의 문장을 하나하나 읽어내려가다 가슴이 먹먹해져 혼자 가슴을 꽝꽝 두드렸다.  

 당신이 존재만으로 아름다울 수 있는 곳이 사막이다. 사막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감사하는 법이다. 끝없는 모래언덕이 이어질 뿐인, 황량해서 더 아름다운 이 땅에서는 초라한 풀 한 포기에도 눈이 가고, 유목민들이 건네는 물 한 잔에도 망극해진다.  

직장인 사춘기를 격렬하게 겪고 있는 내게 이런 식의 간접경험은 굴러가는 낙엽에도 눈물을 또르륵 흘리는 17세 소녀의 마음으로 돌려 놓아 종종 당혹스럽다. 나의 고민이 얼마나 하찮고 사소한 것인지, 내가 얼마나 어리광을 피우며 발만 동동 구르며 살고 있는지 새삼 부끄러워져 얼굴이 붉어지기도 한다. 여행자가 길에서 만난 인연은 때로 폭력적이기도 하지만 이 책은 그보다 더 많은, 따뜻한 인연에 대해 이야기한다.  

불행한 유년 시절을 보냈지만 마음을 다잡고 한국인 여자와 결혼해 부지런히 생을 이어가던 잠양이 티베트 노인을 위한 공동체를 만드는 건강한 꿈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그 열의와 진정성이 너무나 순수해서 눈을 의심했다.  


"잠양, 한국에서 돈 벌어서 시작하는 게 쉽지 않아? 여기서 밥 팔아서 버는 돈보다 훨씬 많이 벌잖아?"

"그러기 싫었어요. 누나, 만약 제가 한국에서 돈을 벌어 와서 공동체를 꾸린다면 여기 젊은 애들이 그럴 거예요. 쟨 외국여자랑 결혼했으니까 저런 일을 할 수 있는 거라고. 그런 인상을 주기 싫어요. 누구나 꿈이 있다면, 이곳에서도 열심히 일을 해 그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거든요."

- 여럿이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

순수하고 뜨거운 꿈을 가진 자들의 이야기는 30대에 사춘기를 앓는 대한민국의 어느 찔찔한 직딩에게도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와야겠다'는 의지를 은근하게 자극한다.  


"이제 공부를 하러 떠나는데 다시 또 사람들이 물어. 내가 원하는 게 학자의 길인지 관료의 길인지를. 난 아직 모르겠거든. 학자일 수도 있고 관료일 수도 있고 혹은 둘 다일 수도 있지. 난 아직 내 삶을 그런 식으로 규정짓고 싶지는 않은데, 공부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찾아질 거라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이 다 그렇게 물으니까 내가 살아온 방식에 자꾸 질문을 던지게 돼."

- 경계인을 꿈꾸는 친구이자 스승인 P

 

"어느 날 이 남자 선생들이 이렇게 말하는 거야. 스카프를 쓰는 건 우리 문화를 지키는 거라고. 난 소리를 지르고 말았어. '그럼 너희 남자들이나 스카프 뒤집어쓰고 살아! 그렇게 지킬 문화가 없어? 여자의 옷차람이 대해서밖에 지켜야 할 문화가 없는 거야? 그럼 우리의 위대한 종교 지도자 프린스 아가 칸은 어때? 그 아내와 아이들은 스카프를 쓰기는커녕 무릎까지 오는 치마를 입고 다니잖아? 다시는 내 앞에서 스카프 얘기같은 건 꺼내지도 마!'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어."

- 그녀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세요

지구별 어딘가에서는 열정적으로 꿈을 꾸는 사람들이 있고, 또한 어딘가에서 격하게 상처받는 영혼들이 있다. 세계 곳곳을 걸으며 세상을 찬찬히 살피면서 느린 여행을 하는 저자는 때론 꿈을 꾸고, 상처받고, 기뻐하고, 절망하는 지구인들과 만나 그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품기도 한다.   


"언니도 사랑해봤어요?"

"그럼요. 몇 번을 했는걸요."

"무섭지 않아요?"

"당연히 무섭죠. 상처받을까 봐 늘 무섭죠. 그래도 사랑이 다시 올 때면 두려워하지 않으려고 애를 써요. 상처받는다 해도 사랑 때문에 웃는 날들이 있으니까, 그 웃었던 기억만으로도 결국은 감사하게 되니까, 누군가를 만나면 두려워하지 말고 마음껏 사랑해봐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이 사랑하는 일이니까."

-뜨거운 삶, 생생한 언어

 

열여섯 혹은 열일곱. 그 나이에 품는 세상에 대한 궁금함과 두려움은 어디나 다 비슷한지, 질문의 결이 닮아 있었다. (-) 친구들은 데팔에게 이런 당부의 말을 남겼다.

"인생은 아름답지만 너무 짧아. 그러니 즐기고,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렴."
"늘 웃지는 마. 가끔씩은 울기도 해야 건강에 좋은 거야."

"천 번을 실패했다면 한 번 더 시도하자."

- 가끔은 울어도 괜찮아

  

건조하게 바싹바싹 말라 쪼글쪼글해진 심장에 다시 온기가 느껴진다. 마음을 열고 닫는 귀한 사람들. 귀한 위로들. 때론 12월의 오후에 낮게 뜬 햇볕이 훨씬 뜨겁고 맹렬하다. 어쩌면 나도 한낮의 졸음처럼 짧고 아늑한 가을 바다를 포기하고 칼바람 속에 맹렬하게 살아 움직이는 겨울 바다의 생명력을 닮기 위해 길을 나설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발짝 물러나 타인의 시선으로 나의 생에 깃든 여백을 찾아 경계를 넘어설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때는 꽃을 사모했으나 이제는 잎들이 더 가슴에 사무친다"는 구절처럼, 외로운 실패와 소외된 좌절, 고된 인내에도 귀를 기울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멀고 긴 여행의 여정이 불안이나 두려움이 아니라 소소한 일상을 만나는 조금 다른 길이라는 설렘을 가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용기가 난다. 어디로든 갈 수 있을 것 같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잭 구디의 역사인류학 강의 - 요리, 사랑, 문자로 플어낸 동서양 문명의 발달사
잭 구디 지음, 김지혜 옮김 / 산책자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생각보다 가볍게 읽히진 않지만 언제고 꺼내어 찾아볼 수 있는 자료로서 가치가 있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울기엔 좀 애매한 사계절 만화가 열전 1
최규석 글.그림 / 사계절 / 201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절망'이라는 단어를 10대 여고생이 입에 담는다는 것에 코웃음을 칠 나이가 되버렸다. 아이고, 열일곱 여고생이 절망이라니, 니가 인생을 덜 살았구나, 하고 '개무시'해버리는 꼰대가 된 것이다. 서른의 꼰대는 나의 열일곱살 시절들에 코웃음을 던져버리고 말았다. 대청소를 하다가 종종 발견하는 그 시절 일기를 읽을 때마다 나는 온몸이 짜부러지는 민망함에 팽팽 웃어버렸다. 

기성세대의 눈에 비친 10대들의 고민이란 그런 것이다.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우울이네 절망이네 자살이네를 떠드는지 쯔쯔 혀를 차버릴 수밖에 없는 것. 사실은 그들이 고민하고 좌절하는 것은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무한반복 절망 싸이클의 트랙 위에 가까이 다가왔기 때문이라는 것도 모른 채.  

10대들이 발을 올려놓은 절망의 싸이클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극단적인 벽이 되어 머리를 찧고 팔다리가 부러지고 말을 잃고 귀가 머는 '레알 현실'로 구체화될 것이다. 그리하여 "울기에는 뭔가 애매하더라고. 전쟁이 난 것도 아니고 고아가 된 것도 아니고..."라고 민망해할 필요도 없이 자신있게(?) 당당하게(?) 땅을 치며 목놓아 울 수밖에 없는 '어른'이 될 것이다. 

<울기엔 좀 애매한>이라는 제목이 도대체 뭔가 했다. 뭔놈의 청소년 만화 제목이 이러냐 싶은 '애매한' 제목일지도 몰랐다. 돈으로 대학입학도 살 수 있지만 스스로 재능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지현의 절망,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일을 알고 재능도 있지만 돈이 없어 꿈조차 꿀 수 없는 원빈의 절망, 당장의 현실이 너무 버거워 꿈 꾸는 것은 물론 제 나이 또래의 평범한 연애 감정마저 사치로 치부해버려야 하는 은수의 절망. 전쟁이 나거나 고아가 된 것도 아니고, 하늘이 무너진 것도 지구가 멸망한 것도 아닌데 이 거지 같은 현실에 심장이 너덜너덜해지고 뼛속까지 아파도 마음놓고 절망하지도 못하는, 우리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최규석 작가는 띠지에서부터 작가의 말, 작업 노트까지 모두 일관되게 '죄책감'과 '책임감'의 정서를 드러낸다. 그것은 어른이 되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 믿었지만 결국 이런 말도 안 되는 세상을 다시 만들고 있는 기성세대로서의 자괴감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아이들을 마주칠 때마다 미안하고, 미술학원 선생인 태섭의 캐릭터를 빌어 위악도 부려보고 자학 개그도 날려본다. 

또한 헌책방 주인 캐릭터를 빌어 그런 기성세대의 위선적인 얼굴을 정면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인간을 돈의 노예로 만드는 미친 자본주의를 증오하고 자본가를 경멸하면서 '나도 한때는 386'스러운 태도를 보이지만 결국 가난한 고딩의 코묻은 돈과 노동력을 착취하는 인간으로 그려지는 이 대반전 캐릭터는 어딘가 매우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아, 그렇지, 주변에 이런 인간이 워낙…. 

돈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10대들에게 어쩌면 "돈이 쵝오" "부자가 되는 것이 행복해지는 것" 따위의 자본주의적 가치관이 틀렸다고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진심으로 절망스러웠다. 애들아, 돈이 인생의 목적이 되어선 안 돼, 돈이 행복의 조건은 아니야, 라고 외치고 싶지만 돈이 꿈을 옥죄는 현실을 한치도 바꾸지 못한 무력한 우리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이내 입을 꾹 다물게 될 것이다.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면서, 앞으로도 아이들에게 어떤 것을 줄 수 있을지 자신하지 못하는 나약한 '어른'이 되고 나니, 공감하고 다독여주며 울기에는 좀 애매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화에 정답이 어딨어?
외르크 치틀라우 지음, 박규호 옮김 / 뜨인돌 / 201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러고보니 동물책들의 저자들은 이름도 참 버라이어티하구나...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또 해본다. 흠흠. 표지가 정말 유쾌해서 집어들기 시작했다. 표지의 원숭이, 자세히 보면 속눈썹 엄청 길다. 음하하하. '다윈과 맞장 뜬 동물들의 따끔한 일침!'이라는 카피에도 눈이 갔다. 뭔가 진화론에 대한 딴지가 있을 것 같은데? 하는 호기심 발동. 부릉.

<지능적이고 매혹적인 동물들의 생존 게임>이 "똑똑한 동물이 살아남는다"를 강조했다면, 이 책은 강하고 약삭빠른 동물만이 승자가 된다는 다윈의 법칙이 적어도 이 동물들에게는 예외라는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이런 예외적인 케이스들을 자연의 '사고와 실수'라고 표현하는 부분에서 저자의 재치와 언어감각이 느껴진다. 흥미로운 사례들을 유쾌한 필체로 서술하는 책은 개인적으로 가장 애정하는 스타일이다. 다윈의 진화론에 적용하면 환경에 최적화된 자연선택은 아니지만 모두 나름의 전략으로 살아남았다는 점에서 <동물들의 생존 게임> 속 영리한 동물들이 생각나기도 하고,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 '따끔한 일침'을 가하는 것 같기도 했다.

완전하지 않으면 어때? 결국 살아남은 건 나잖아! 를 외치는 곰벌레와 뿔매미, 동갈돔, 카멜레온, 기린, 땅다람쥐들이 단체로 모여 어깨를 으쓱으쓱거리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이예~)   

   
 

'저등한' 동물들을 더 복잡한 생명체로 이행하는 과도기로 보는 이런 식의 기술은 우리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끈다. 예를 들어 어류를 단지 호모 사피엔스가 형성되는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고 단정 짓는 선입견 따위가 그렇다. 오늘날에도 엄연히 어류가 존재하는데도 말이다. 어류는 그 종류가 전체 척추동물의 절반을 넘는, 무려 3만여 종에 이르는 거대한 집단이다. 이렇게 성공적인 모델임에도 통상적인 진화 이론들은 이들을 더 고등한 형태의 동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현상으로 설명하고 있다. - 프롤로그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