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기엔 좀 애매한 사계절 만화가 열전 1
최규석 글.그림 / 사계절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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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이라는 단어를 10대 여고생이 입에 담는다는 것에 코웃음을 칠 나이가 되버렸다. 아이고, 열일곱 여고생이 절망이라니, 니가 인생을 덜 살았구나, 하고 '개무시'해버리는 꼰대가 된 것이다. 서른의 꼰대는 나의 열일곱살 시절들에 코웃음을 던져버리고 말았다. 대청소를 하다가 종종 발견하는 그 시절 일기를 읽을 때마다 나는 온몸이 짜부러지는 민망함에 팽팽 웃어버렸다. 

기성세대의 눈에 비친 10대들의 고민이란 그런 것이다.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우울이네 절망이네 자살이네를 떠드는지 쯔쯔 혀를 차버릴 수밖에 없는 것. 사실은 그들이 고민하고 좌절하는 것은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무한반복 절망 싸이클의 트랙 위에 가까이 다가왔기 때문이라는 것도 모른 채.  

10대들이 발을 올려놓은 절망의 싸이클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극단적인 벽이 되어 머리를 찧고 팔다리가 부러지고 말을 잃고 귀가 머는 '레알 현실'로 구체화될 것이다. 그리하여 "울기에는 뭔가 애매하더라고. 전쟁이 난 것도 아니고 고아가 된 것도 아니고..."라고 민망해할 필요도 없이 자신있게(?) 당당하게(?) 땅을 치며 목놓아 울 수밖에 없는 '어른'이 될 것이다. 

<울기엔 좀 애매한>이라는 제목이 도대체 뭔가 했다. 뭔놈의 청소년 만화 제목이 이러냐 싶은 '애매한' 제목일지도 몰랐다. 돈으로 대학입학도 살 수 있지만 스스로 재능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지현의 절망,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일을 알고 재능도 있지만 돈이 없어 꿈조차 꿀 수 없는 원빈의 절망, 당장의 현실이 너무 버거워 꿈 꾸는 것은 물론 제 나이 또래의 평범한 연애 감정마저 사치로 치부해버려야 하는 은수의 절망. 전쟁이 나거나 고아가 된 것도 아니고, 하늘이 무너진 것도 지구가 멸망한 것도 아닌데 이 거지 같은 현실에 심장이 너덜너덜해지고 뼛속까지 아파도 마음놓고 절망하지도 못하는, 우리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최규석 작가는 띠지에서부터 작가의 말, 작업 노트까지 모두 일관되게 '죄책감'과 '책임감'의 정서를 드러낸다. 그것은 어른이 되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 믿었지만 결국 이런 말도 안 되는 세상을 다시 만들고 있는 기성세대로서의 자괴감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아이들을 마주칠 때마다 미안하고, 미술학원 선생인 태섭의 캐릭터를 빌어 위악도 부려보고 자학 개그도 날려본다. 

또한 헌책방 주인 캐릭터를 빌어 그런 기성세대의 위선적인 얼굴을 정면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인간을 돈의 노예로 만드는 미친 자본주의를 증오하고 자본가를 경멸하면서 '나도 한때는 386'스러운 태도를 보이지만 결국 가난한 고딩의 코묻은 돈과 노동력을 착취하는 인간으로 그려지는 이 대반전 캐릭터는 어딘가 매우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아, 그렇지, 주변에 이런 인간이 워낙…. 

돈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10대들에게 어쩌면 "돈이 쵝오" "부자가 되는 것이 행복해지는 것" 따위의 자본주의적 가치관이 틀렸다고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진심으로 절망스러웠다. 애들아, 돈이 인생의 목적이 되어선 안 돼, 돈이 행복의 조건은 아니야, 라고 외치고 싶지만 돈이 꿈을 옥죄는 현실을 한치도 바꾸지 못한 무력한 우리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이내 입을 꾹 다물게 될 것이다.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면서, 앞으로도 아이들에게 어떤 것을 줄 수 있을지 자신하지 못하는 나약한 '어른'이 되고 나니, 공감하고 다독여주며 울기에는 좀 애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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