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책 깨기의 쾌감이란 엄청나다. 1월에 구입한지 딱 5개월만에 완독했다. 스스로가 무척 자랑스럽고 기특하다.3년 전에 <오뒷세이아>를 읽었고 그때 대강 그리스 고전의 맛을 봤기 때문에 <일리아스>는 읽을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근데 작년 12.3 계엄 덕분에 생각이 바뀌었다.트위터에서 많이 회자된 에피소드인데 탄핵 집회 당시 어느 그리스 고전 덕후가 <일리아스>의 첫 구절을 담은 깃발을 들고 있었다. 광장의 수많은 깃발들 속에 그것을 알아본 웬 중년 남성이 있었는데 그분은 바로 서울대에서 그리스 고전을 연구하는 교수님이었던 것이다. 이것을 계기로 덕후 하길님은 성덕이 되어 <일리아스> 관련 글도 밀리로드에 연재하고 이 책을 번역한 이준석 교수와 공저책을 낼 예정이란다. 계엄과 탄핵이라는 민주주의의 파도 속에서 펼쳐진 너무나 극적이고 훈훈한 스토리다.(자세한 내용은 하길 님의 '일리아스를 좋아하세요?'를 참고하면 된다. 글을 너무 잘 쓰시고 그리스 고전에 대한 해박함과 애정이 담겨서 놀랐다. 덕후는 위대하다.)이런 미담이 있는데 안 읽어볼 수가 없었다. 일주일에 한 챕터 정도 읽으려 했는데 쉽지 않았다. 특히 그리스 고전은 인물 판별 난이도가 러시아 소설 이상으로 힘들다. 같은 인물을 본명 대신 누구의 아들, 누구의 손자와 같이 다양하게 지칭하기 때문이다. <오뒷세이아> 때처럼 노트에 이름을 적어가며 읽었다.<일리아스>는 그리스와 트로이의 전쟁에서 일부분만을 담았다. 초반에 진입할 때는 의외로 영화<트로이>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아킬레우스를 브래드 피트, 헥토르를 에릭 바나로 생각하니 몰입이 잘 되었다.전투 장면이 매우 사실적이고 세부적이다. 또 신들이 개입하는 장면들은 고대 그리스인들의 사상과 문화를 엿볼 수 있게 한다. 불멸의 신들이 '결국 죽게 마련인' 인간들에 개입하지만 전지전능하게 다스리는 것은 또 아니다. 인간은 그 어느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 있다는 것이 새삼 다가온다.클라이막스 격인 아킬레우스와 프리아모스의 만남이 가장 감동적이었다. 아들 헥토르를 죽인 원수 앞에 무릎을 꿇은 아버지 프리아모스. 그를 통해 아킬레우스는 친구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으로 상심한 자신의 모습을 본다. 적이었던 상대를 자신과 동일한 인간으로 여기며 큰 인간적 성찰을 하는 아킬레우스. 최근 뉴스에서 보도되는 전쟁 소식에 겹쳐지면서 많은 생각을 던져준다.중간중간 삽화가 있어 이해에 도움을 준다. 또 부록으로 실린 인물 소개와 역자 후기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일리아스>의 구조와 인물 세팅이 매우 탁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되는 텍스트이기 때문에 수천년이 지난 지금도 읽히고 있나보다.#일리아스 #호메로스 #아카넷 #이준석옮김 #하길 #고전 #그리스고전 #벽돌책
요새 즐겨보는 유튜브는 프랑스인 안무가 '카니'의 채널인데 그의 취미는 한국 막장 드라마를 보며 욕하기다. 모두가 알다시피 막장 드라마의 필수 요소 중 하나가 불륜. 하지만 막장을 걷어내고 얼마든지 고급스럽고 진지하게 다룰 수 있는 소재도 불륜이 아니던가. 그런 의미에서 불륜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매혹적인 스토리임이 틀림없다. 이런 불륜을 소재로 한 앤솔로지라니. 좋아하는 장강명 작가가 포함되어 있어 더 기대되었다. 장강명의 <투란도트의 집>은 유부녀 직장 상사와 바람을 피우는 싱글남의 이야기다. 오페라 <투란도트>의 스토리와 아리아가 비중있게 묘사되는데 소설 속 인물들과 중첩된다. 차무진의 <빛 너머로>. 은퇴한 60대 영문학 교수가 버려진 일체형 PC를 복구하다 기묘한 동영상을 발견한다. 수록 작품 중 가장 독특했는데 오히려 불륜보다는 미스터리적 요소가 강했다.소향의 <포틀랜드 오피스텔>은 불륜이라는 소재를 가장 잘 녹여냈다. 미국 포틀랜드에서 가족과 3년 간 체류하게 된 남자는 아내가 새로 사귄 아들 친구의 엄마에게 첫눈에 반한다. 익숙한 코드지만 나름의 반전도 있고. 하여간 재미있었다.정명섭의 <침대와 거짓말>은 탐정 사무소를 운영하는 남자들의 이야기다. 한 사람은 남한의 707부대 출신이고 나머지 하나는 북한 요원 출신이다. 이들이 불륜으로 인해 벌어진 살인 사건을 파헤치는데 두 사람의 케미가 좋다. 두 캐릭터가 나오는 장편소설이나 시리즈를 보고 싶다.앤솔로지의 좋은 점은 접하지 못한 작가를 알게 된다는 것이다. 새롭게 알게된 작가의 다른 작품도 살펴봐야겠다. 각 작품마다 음악이 등장하는 것도 특별했다. 또 작가 후기에 이 책이 기획된 비화도 소개되어 있다. 원래는 작년에 작고한 정아은 작가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슬프고도 허망한 일이다.#우리의연애는모두의관심사 #장강명 #차무진 #소향 #정명섭 #정아은 #마름모출판사 #불륜 #앤솔로지 #단편소설
아, 부럽다. 지금 이 시점에서 이 책의 작가님이 가장 부러운 사람이다. 그림을 전공하고 다수의 저서를 낸 저자는 시골에서 정원과 텃밭을 가꾸며 살고 있다. 이 책은 사계절 직접 키우고 해먹은 음식을 소개한다.책의 제목처럼 간소하지만 건강하고 맛난 제철 먹거리들. 아기자기한 일러스트와 간략한 레시피만 봐도 흐뭇하다. 도시 사람은 감히 꿈도 꾸기 힘든 낙원으로 느껴졌다.작물마다 키우게 된 계기나 과정을 담았고 그것을 수확하여 조리하는 법도 소개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군침이 돈다. 각종 채소를 거둘 수 있는 텃밭도 부러웠지만 과실을 얻을 수 있는 나무가 여러 종류가 있다니. 오디, 복숭아, 감 등을 직접 따먹는 즐거움을 나도 느껴보고 싶다.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은 선드라이드토마토다.아파트에 살면 토마토를 볕에 말리기가 쉽지 않은데 시골이라면 얼마든지 자연 건조가 가능하다니. 또 직접 굽는 빵과 피자도 맛있겠다.갖가지 반찬이나 저장식품 뿐만 아니라 빵, 디저트까지 메뉴가 다양하다. 저자의 안주 메뉴만을 담은 <안주는 화려하게>라는 책도 궁금해진다.먹이를 구하려면 마트나 온라인몰을 이용해야 하는 삶이 오히려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만큼 정직하게 먹거리를 얻고 요리하는 삶이 풍요롭게 그려진 책이다.*도서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먹이는간소하게 #노석미 #사계절 #노석미에세이 #시골생활 #요리책 #건강식 #텃밭 #에세이 #서평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요리 #푸드 #음식
1895년에 처음 발표된 작품이다. 당시 핫했던 다윈 진화론의 영향을 받은 소설이기도 한데, 저자인 웰스가 생물학을 전공한 과학자였기 때문에 이런 파격적인 시도가 가능했던 것 같다.'시간 여행자'는 지인들을 집으로 초대해 자신이 개발한 '타임머신'을 공개한다. 의심과 논란 속에서 그는 직접 시간 여행을 떠나서 지인들에게 증명하려 한다.그 후, 미래로 시간 여행을 다녀온 그는 자신이 겪은 일들을 지인들에게 전달한다. 무려 '802701년'으로 떠난 시간 여행자. 놀랍게도 미래 사회에서는 오히려 인류가 퇴화한 것을 알게된다.언어 능력, 사고력 뿐만 아니라 신체적 구조까지 나아진 것이 없다. 시간 여행자는 그 이유를 파악하는데 나름의 과학적인 가설과 증거를 토대로 설명한다. 책 뒷부분의 해설을 보니 이런 시도가 이후 등장하는 소설들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묘사한 부분은 영화 <혹성 탈출>을 연상시켰다. 미래 사회를 설명하지만 사실은 당대의 계급 사회를 풍자했다는 점에서는 <걸리버 여행기>도 생각났다. 주인공을 따르는 순종적인 여성 '위나' 캐릭터는 어쩐지 상투적이었다. 시간 여행을 떠나 만나게 되는 이성 캐릭터의 전형이라고나 할까. 혹은 남성인 저자의 로망이거나.(실제 웰스의 여성 편력은 유명했다고 한다.)초기의 SF 소설의 분위기를 알 수 있었고 짧은 분량임에도 흥미로웠다. <타임머신> 밖에도 웰스의 단편이 세 편 수록되어 있다. ------열린책들 모노 에디션.책의 본질을 잘 살린 제작 형태다. 적당한 판형과 두께, 합리적인 가격이 마음에 든다. *도서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타임머신 #허버트조지웰스 #김석희옮김 #열린책들 #열린책들세계문학 #Sf소설 #장르소설 #과학소설 #세계문학전집
책 제목 번역을 찰떡같이 했다. 원제는 'Utter, earth'(번역하면 '완전한 지구' 정도일까)인데 번역된 제목이 훨씬 더 호기심을 자극한다.지구에서 태어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비인간 동물에 대한 관심이 적은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옳은 생각일까?고작 수많은 동물 중 하나 종일 뿐인데 마치 지구를 정복한 것 마냥 인간 중심으로만 살아가는 것이 맞을까?이 책은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비인간 동물들을 조명한다. 일곱 가지 챕터로 구분되어 쓰인 동물들의 습성이나 특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나무늘보'가 기억에 남는데, 워낙 느린 습성으로 알려져 있지만 볼일(배설)도 일주일에 한 번 한다고. 딱딱한 과학적 서술로 이루어진 글이 아닌 비유와 유머로 쓴 에세이다. 추천사를 쓴 이정모 국립과천과학관장의 글을 보니 번역에 대한 칭찬이 있다. 중국계 캐나다인인 저자가 말맛과 감성을 최대한 살린 글을 번역하기 쉽지 않았겠다. 하지만 북미 문화나 유머 코드를 이해하지 못해 원어민이 원문으로 읽을 때 만큼의 재미는 느끼기 힘든 것도 같다.책의 디자인이 무척 예쁘다. 내지의 동물 삽화까지 눈을 사로잡는다. 마지막 챕터인 '간단한 생각'에는 책에 언급된 동물들을 정리해 놓았다. 작가의 시점으로 소개한 각 동물들의 특성만 읽어도 흥미롭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전기뱀장어(Electric eel): 껴안으면 안 된다.과학적 지식을 재미있게 전달하는 본보기 같은 책이다.* 도서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지구를여행하는히치하이커를위한안내서 #아이작유엔 #성소희옮김 #알레 #과학책 #생태 #동물 #환경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