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뢰딩거의 소녀
마쓰자키 유리 지음, 장재희 옮김 / 빈페이지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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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디스토피아, 그리고 소녀가 결합된 SF 소설집.

책 표지는 마치 영화 <불량소녀 모모코>와 같은 일본의 메이드나 롤리타 코스프레를 다룬 것처럼 팬시하다. 하지만 제목이 '슈뢰딩거의 소녀'라니. '슈뢰딩거의 고양이'에서 따온 제목부터가 범상치 않았다.

총 6개의 소설로 구성된 이 책은 표지의 달달하고 키치적인 분위기와 더불어 과학 이론을 소재로 쓰여진 것이 특징이다. 저자 소개를 보니 도호쿠 대학 이학부를 졸업했다.

첫 소설 '예순 다섯 데스'부터 너무 재미있었다. 인구 폭발과 환경 보호를 이유로 사람은 예순 다섯이 되면 죽어야 하는 미래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치유해주는 주인공 노인과 어린 소녀의 이야기가 울림이 있었다.

또 '꽁치는 쓴가, 짠가'도 기억에 남는다. 꽁치라는 생선이 멸종된 미래를 배경으로 고전 문학에 등장하는 '꽁치'를 재현해 보려는 소녀의 이야기다. AI와 3D 프린터를 이용해 꽁치를 재현한다는 발상이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이 밖에 '이세계 수학'과 '살 좀 찌면 안 되나요'는 만화적 상상력이가 기억에 남는다. '슈뢰딩거이 소녀'와 '펜로즈의 처녀'의 경우는 스토리가 흥미롭긴 한데 모티브가 된 과학 이론을 잘 몰라 애가 탔다.

책을 읽고 나니 모티브가 된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페르미 역설'이 무척 궁금해졌다. 그래서 좀 찾아봤으나 뼛속까지 문과인 내가 이해하긴 쉽지 않더라. 과학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관련된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책 뒷표지에 있는 장강명 작가의 추천사처럼 이 책의 저자 마쓰자키 유리는 "왜 안 돼?"라고 물으며 대담하고 가볍게 선을 넘는다.

고만고만하게 비슷한 디스토피아 SF가 아닌 신선한 SF를 읽어보고 싶다면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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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페이지 저자, 송섬별 역자 / 반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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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로 커밍아웃한 헐리우드 배우 엘리엇 페이지의 회고록.

지금껏 읽은 어떤 성수수자의 이야기보다 특별했다. 어린시절 아역배우를 거쳐 헐리우드에서 성공한 배우로 살아가며 그가 겪은 내면과 외부의 치열함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의 어린 시절을 읽으면서 성적 정체성 혼란과 주변의 혐오를 받는 삶이 힘들고 아팠음을 알 수 있었다. 또 성정체성과 별개로 '어린 여자 배우'라는 존재에게 가해지는 폭력도 끔찍했다.

교제했던 상대에 대한 이야기도 디테일하고 헐리우드에서 같이 활동한 배우들과의 스토리도 있다. 차마 실명을 밝힐 수 없는 사람들도 등장한다. 깊게 사귀었으나 상대는 여전히 커밍아웃하지 못한 여배우 '라이언', 자신의 커밍아웃을 조롱하고 모욕한 남자 배우는 누구인지 궁금했다.

성확정 수술에 대한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페이지는 넷플릭스 시리즈 <엄브렐러 아카데미>의 시즌 3를 앞두고 수술했는데, 제작진이 그의 캐릭터를 트랜스젠더로 바꿔주었다는 점도 놀라웠다. 처절한 수술 과정을 거쳐 그가 느낀 해방감을 쓴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가슴 절제 수술의 결과를 표현한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 마침내 압박복을 벗고 젖꼭지 밴드까지 떼어낸 순간... 음, 그 순간의 감정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 (383쪽)

수술한 가슴을 당당히 드러내고 화보까지 촬영한 엘리엇 페이지. 자신의 경험을 세상에 밝히는 이 한권의 책과 용기있는 활동이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주고 있다고 믿는다.

- 우리의 다양한 경험을 쓰고, 읽고, 나누는 행위는 우리를 침묵시키려는 이들에게 맞서기 위한 중요한 일이다. (11쪽)

- 수치심 따위, 젠더 스테레오타입 따위, 자신의 욕망을 거부하는 일 따위, 자신의 주인으로 살지 않는 것 따위 다 집어치워 버려 (390쪽)

책의 디자인과 특이한 뒷표지가 눈에 띈다. 영어 원서보다 디자인이 더 예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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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를 날리면 - 언론인 박성제가 기록한 공영방송 수난사
박성제 지음 / 창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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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장악이 재개되고 있는 현재의 심각성을 우려하고 경고하는 책.

순식간에 읽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공영방송 탄압 과정을 관심있게 지켜본 시민으로써 많은 부분에서 흥미로웠다. 탄압의 패해 당사자인 저자 박성제 전 MBC사장이 들려주는 생생한 내용들이 담겨있는 책이다. 보도국 기자 출신이라 그런지 간결하고 명확한 문체도 인상적이었다.

과거를 기록한 부분도 암담했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정권의 방송 장악은 끔찍하다. 해직 언론인들이 복직하고 정상화를 거쳐 이제 겨우 괄목할만한 성과들을 내고 있는데 다시 탄압이라니. 안타깝고 화난다. 과거와 현재의 상황이 데칼코마니처럼 닮아있다.

책 제목인 <MBC를 날리면>이 보여주는 현 정권의 막무가내식 언론 죽이기의 비화들도 잘 나와있다. 보도가 마음에 안든다고 방송사 사장에게 전화하는 행태부터 글렀다. 그 실명들을 끝까지 기억해두어야겠다.

과거 방송탄압의 선봉이던 이동관이 방통위원장이 된 이후를 우려하는 내용으로 책이 마무리 된다. 암울하다.

평소 정치에 관심이 없더라도 읽어보길 권한다. 보수정권이 공영방송을 어떻게 장악하고 언론환경을 망가뜨리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기자나 언론인을 꿈꾸는 청년들이 읽어도 좋을 듯하다. 참된 언론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MBC를날리면 #박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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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눈썹, 혹은 잃어버린 잠을 찾는 방법 - 도서부 친구들 이야기 꿈꾸는돌 37
최상희 지음 / 돌베개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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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부 소녀들의 활기있고 착한 이야기.

녹주, 차미, 오란. 학교 도서부원인 여고생들이 등장하는 총 다섯 편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특히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이들은 도서부 활동을 하며 겪는 일들을 우정과 연대로 풀어낸다.

학교 도서실이라는 공간과 활동이나 세 캐릭터의 말투나 성격이 묘사된 방식이 재미있었다. 특히 '~야, 뭐야.'라는 말투를 노상 쓰는 오란의 캐릭터가 귀여웠다. '꽈배기야, 뭐야, 왜 이렇게 꼬였어.' 같은 식은 대사가 피식 웃게 만든다.

가장 재미있던 단편은 '더 이상 도토리는 없다'였다. 도서실의 책을 남들이 보지 못하게 책장 여기저기 숨겨놓는 일명 '도토리'의 정체를 밝히는 이야기다. 책 뒷부분의 작가의 말을 보니 이 단편을 시작으로 다른 이야기들이 쓰여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청소년 시절의 좋은 기억들마저 소환하게 할 만큼 사랑스러운 책이다. 또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애정하는 사람이라면 아주 재미있게 읽을 듯. 감성이 담긴 문장들도 기억에 남는다. 표지와 책갈피 일러스트가 너무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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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심리학 카페 - 흔들리는 삶의 중심을 되찾는 29가지 마음 수업
모드 르안 지음, 김미정 옮김 / 클랩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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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처방전을 내려주는 이 카페에 당장 가보고 싶다.

재미있게 읽은 <형사 박미옥>에 이 책이 언급되어 있다. 강력계 형사 출신인 박미옥 님은 은퇴 후 제주에 집을 짓고 북카페를 만들었는데 이 책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평생을 범죄자와 범죄 피해자들을 대하며 결국 마음의 병은 관심과 공감을 통해 치유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모드 르안은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탁아소에 버림받은 상처가 있었다. 성인이 되어 결혼 후 첫 아이를 낳은지 얼마되지 않아 남편이 뇌출혈로 급사한다. 그때의 나이가 고작 스물 셋. 이런 고통 속에서 극심한 우울증을 겪다 정신분석을 통해 극복한다. 뒤늦게 심리학을 공부하고 카페를 열었는데 수년 동안 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심리상담을 받았다고 한다.

총 다섯 개의 항목으로 심리 상담의 유형이 구분되어 있다. 프랑스 파리나 대한민국이나 사람들의 고통과 상처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여러 사례들 중 적어도 하나 이상은 해당되는 유형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는 네번째 '인간관계'편에 많이 공감했다.

실제로 파리의 이 카페가 어떤 풍경인지, 어떤 식으로 상담이 이루어지는지 구체적인 모습이 궁금했는데 이에 대한 내용은 별로 없어서 아쉬웠다.

마음을 다스릴 심리학적 처방이 필요하다면 추천할 책이다. 내용이 이해하기 쉬워서 금세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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