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탄생 - 이 시대 최고의 지성이 전하는 ‘안다는 것’의 세계
사이먼 윈체스터 지음, 신동숙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식은 어떻게 생겨났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읽는데 꼬박 일주일 걸렸다. 그런데 아주 즐겁게 읽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은 지식을 추구해 왔고 그것을 얼마나 즐기는지에 대해서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이 책의 원제는 'Knowing What We Know', 즉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알기'다. '안다는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는 것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형이상학적인 썰만 풀었다면 아마 지루한 책이었을 텐데. 이 책은 역사적, 지리적으로 다양한 인물과 사건을 예로 들어 지식의 기원에 대해 서술했다. 그래서 재미있다.

저자 사이먼 윈체스터는 영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지질학자다. 그 유명한 <가디언>지에서 기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가 조사한 지식의 기원과 사례 뿐만 아니라 직접 겪은 사실들을 흥미롭게 풀어냈다.

책은 총 6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인류 문명 초기의 지식이 형성되는 과정부터 전승, 그리고 현대의 기술 발달로 인해 변화하는 지식의 형태에 대해 알 수 있다. 마치 지식에 대한 백과사전을 읽는 것 같다.

인류와 문자 발명, 책의 제작, 인쇄술, 도서관, 도서 분류 체계, 종이의 발명, 백과사전의 흥망성쇠, 학교, 시험, 신문, 잡지, 출판, 미디어, 공영방송, 가짜뉴스, 프로파간다, 컴퓨터, 구글, 인터넷, AI 등. 이 모든 키워드가 이 한 권의 책에 담겨있다.

기억에 남는 부분이 많지만 4장 '조작의 연대기'에서 저자가 직접 겪은 '피의 일요일'에 대한 내용이 가장 인상적이다. 1972년 북아일랜드에서 영국군이 북아일랜드 시위대를 공격하여 민간인 13명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저자는 당시 '가디언'지 기자로 현장에 있었다. 그는 영국인이지만 진실을 목격했기에 그것을 그대로 기사로 쓴다. 이 문제는38년이 지나서야 진상조사가 이루어졌고 저자는 증인으로서 당시 현장에 대해 증언을 한다. 그 결과 영국 총리는 사과문을 발표하게 된다.

이 때의 증언 이후 그는 오래 전 돌아가신 할머니의 지인으로부터 연락을 받는다. 저자가 기사를 썼던 당시, 저자의 할머니는 손자가 쓴 영국군 비판 기사 때문에 주변 이웃들로부터 비난을 받았었다고. 이런 일을 당한 할머니는 손자에게 이 사실을 숨겼지만 아마 하늘에서 저자를 자랑스러워 할 것이라고 지인은 연락했다. 영화 같은 이야기다.

왜곡된 지식은 끊임없는 문제제기와 노력으로 언젠가는 탄로가 나게 된다는 사실을말해주는 것도 같다. 요즘 우리 사회의 역사왜곡 사태도 생각나게 했다.

인쇄술이 나오는 부분에서는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개발한 내용이 있다. 물론 작게 한국에서 최초로 개발되었다는 내용도 있어 다행이었다. 하지만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 개발 타이틀을 가져가게 된 것은 단지 그가 유럽인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첫 출판물로 '구텐베르크 성경'을 제작했다. 돈을 벌 수 있는 책을 제작해서 비싸게 팔았던 그는 비지니스적으로도 트인 인물이었다. 고려 시대에도 금속활자로 아시아 전역에 팔리는 책을 찍어냈더라면 어땠을까.

'지식'이라는 분야의 역사에 대해 관심있다면 추천하고 싶은 책. 어렵지 않은 문체에 저자의 혜안과 위트가 더해져 매우 충실한 교양 역사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쿄도 동정탑 - 2024년 제170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구단 리에 지음, 김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평소 AI와 창작에 연관된 것에 관심이 많다. 그러던 중 이 작품의 기사를 접하고 놀랐다. AI를 활용하여 쓴 작품이 일본의 권위있는 문학상을 받았다니. (이후 우리 나라의 박참새 작가 역시 AI를 활용한 시로 김수영 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당시 읽었던 기사를 찾아보니 작가 구단 리에는 소설의 5% 정도를 챗GPT가 만든 문장을 그대로 사용했다고 한다. 때문에 일본 문단 내에서도 논란이 되었다고 해서 궁금했다.

소설은 비교적 얇지만 절대 얕지 않다. 작가가 밝힌 대로 AI를 활용한 문장들은 나름대로 의미를 지니는데 그 이유는 이 작품이 언어와 관계를 정의하는 AI를 비판하기 때문이다.

'도쿄도 동정도', 원어로 발음하면 '도쿄토 도죠토'다. 표지에 나온 거대한 탑인데, 이는 범죄자들을 수용하는 교도소다. 소설 속 근미래 사회에서는 범죄자들을 '호모 미세라빌리스' 즉, '가엾고, 동정받아 마땅한' 사람들로 간주한다. 따라서 이들을 위한 교도소는 안락하며 동정과 관용의 상징으로 자리하게 된다.

이 탑을 설계하는 건축가 마키나 사라는 '심퍼시 타워 도쿄'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던 중 만남을 갖던 연하남 다쿠토가 '도쿄 동정탑'이라는 이름을 제안한다.

서사가 도드라지는 소설은 아니다. 문체도 특이하고 형식도 독특하다. 중간 중간 AI에게 묻는 문장과 그에 대한 답도 나오고, '호모 미세라빌리스'에 대한 논문 형식의 글도 등장한다. 읽는 동안 종잡을 수 없었지만 새로운 느낌이 있었다.

사람이 정의하는 개념과 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AI가 우리 삶에서 현재보다 더 보편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실험적인 소설을 읽은 느낌을 받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게는 수많은 실패작들이 있다 - 우아하고 유쾌하게 나이 든다는 것
노라 에프런 지음, 김용언 옮김 / 반비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등을 만든 헐리웃 대표 여성 감독이자 작가 노라 에프런의 에세이.

이 책 아니었으면 이 언니가 이렇게 멋진 사람인지 몰랐을 것이다. 부제인 '우아하고 유쾌하게 나이 든다는 것'으로 알 수 있듯이 노라 에프런이 60대 후반인 말년에 쓴 에세이다. (그는 2012년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타계했다. 향년 71세.)

무척 유쾌하면서도 찡한 내용이 많았다. 1941년 생인 노라 에프런은 부모 모두 헐리웃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로맨틱 코미디 시나리오 작가였다. 어릴 때부터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집 파티에 손님으로 왔다고.

젊은 시절 백악관 인턴을 거쳐 <뉴욕 포스트>기자가 되어 다양한 매체에 기고하기도 한다. 1960년대에 여성으로서 언론사에서 일하는 고충을 담은 글도 있다.

기억력 감퇴 등과 같은 노년의 일상을 담은 글도 좋다. 유머가 넘치고 다정하다. '노라 에프런의 영화들도 대부분 이런 톤이었지.'라고 생각했다.

'나는 상속녀였다'라는 글에서 제일 터졌다. 부자인 외삼촌이 자식없이 돌아가시게 되자 노라는 유산을 상속 받을 생각에 들뜬다. 당시 그는 어쩔 수 없이 돈 때문에 쓰는 시나리오가 있었다. 너무 쓰기 싫어서 상속 받으면 다 때려치울 생각에 큰 기대를 하는데. 막상 까보니 유산이 얼마되지 않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시나리오를 마저 썼고 그게 그의 인생을 바꾼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라고.

책의 제목인 문장이 등장하는 '실패작'은 여운이 남는다. 이 정도로 성공한 커리어의 사람이 자신의 실패에 대해 얘기하는 것 자체가 쿨하고 멋있었다. 영화라는 산업에서 망한 영화를 만든 감독이라는 입장에 대한 묘사가 기가막히다.

- 시나리오만 쓸 때와 달리, 영화 연출을 맡게 되면 좋은 점이 하나 있다. 비난의 대상이 누군지 헷갈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모든 게 나 때문이다.(166 페이지)

- 실패작에 대한 가장 슬픈 사실 중 하나는, 영화 자체가 나중에 제대로 재평가되거나 부분적인 명예 회복을 하더라도, 영화를 만든 나 자신은 처음의 경험 때문에 멍들고 깨진 채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최악의 경우, 개봉 당시 이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그 관객층에게 동조하게 된다.(169 페이지)

<미스테리아> 편집장이자 전 영화지 기자였던 김용언 님이 옮겼다. 영화를 잘 아는 분이라 그런지 번역문을 읽는데 걸림이 없었다. 또 직접 쓴 노라 에프런에 대한 글도 좋았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다시 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이 든다는 것에 관하여
베레나 카스트 지음, 김현정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위스의 심리학자인 베레나 카스트가 72세에 쓴 책이다. 자신이 연구한 경험과 주변의 동년배들, 또 본인 스스로가 맞은 노년에 대해 쓴 것이기도 하다.

노화는 그저 쇠퇴하기만 하는 시기일까? 저자는 책은 서문부터 이를 반박한다. '노화는 우리가 도전하고 발전시켜 나가야하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한다. 물론 육체적인 노화와 필연적인 소멸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하지만 저자는 '인생의 후반기야말로 자신의 내면에 더 집중하는 중요한 시기'이며 이를 위한 방법을 심리학자의 입장에서 제시한다.

일단은 '받아들이라'는 부분이 와닿았다. 젊은 시절에 비해 남은 시간이 짧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삶이 그 자체로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가장 분량이 긴 챕터인 '삶의 방향성을 새롭게 만드는 감정들'. 이 부분에서는 인생 선배인 저자의 개인적 경험과 자신이 연구한 사례들이 소개된다.

그 중 '유머, 사랑스러운 반전'이 기억에 남는다. 나이들수록 자기 안에 갇혀 배려가 줄고 심각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유머가 이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한다.

'자신의 죽음에 익숙해지라'는 부분도 의미심장했다. 노인들은 배우자나 친구들의 죽음으로 자신의 죽음도 받아들이게 되는데 다행스러운 것은 젊은 사람들에 비해 이 과정을 더 침착하게 받아들인다고.

젊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세상에 관심과 열정을 갖는 자세 등 마음가짐만으로 확연히 긍정적이고 충만한 노년이 될 수 있다. 단순하고 새로울 것 없지만 심리학자의 관점에서 풀어낸 이 주제가 더없이 위로가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라진 서점
이비 우즈 지음, 이영아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판타지와 사랑 이야기.

책이라는 고유한 물성과 그 안에 담긴 가치에 열광하는 부류는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어디에나 있었다. <사라진 서점>은 그 중 1920년대와 현재의 더블린을 배경으로 희귀본 책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과거의 인물 오펄린, 현재의 마서와 헨리. 이들 세 사람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원치 않는 결혼을 피해 혼자 프랑스 파리로 간 오펄린은 그 유명한 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서 일하게 된다. (심지어 '제임스 조이스'도 등장한다!) 그곳에서 희귀 서적 비즈니스에 눈 뜬 오펄린. 하지만 그를 쫓아온 오빠를 피해 더블린으로 도주하고 자신이 직접 서점을 운영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에밀리 브론테의 미발표된 원고를 찾게 되지만 혹독한 배신과 끔찍한 억압을 겪는다.

현재 시점의 마서는 폭력 남편을 피해 무작정 더블린으로 왔다. 그러던 중 오펄린이 운영했다는 서점의 자취를 찾는 헨리와 만나게 된다.

(스포일러 있음)
상처를 지닌 세 인물이 우여곡절을 겪으며 살아가는 용기와 희망을 얻는다. 이 과정에서 책과 연관된 사건들이 벌어진다. 사건의 전개가 흥미롭고 나름대로 반전도 있다. 기승전...잘 나가다 결말에서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는 부분은 의외였다. 하지만 이 지점이 이 소설의 재미 포인트가 되는 것도 같다.

로맨스 요소도 많고 여성 캐릭터가 어려움을 이겨내고 성장하는 이야기라 재미있다. 꽤 두께가 나가지만(약 500 페이지)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 희귀 서적을 우연히 발견하는 부분도 흥미로웠다.

2023년 아마존 UK에서 1위를 했고 미국에서도 킨들 차트와 월스트리트저널 베스트셀러 1워를 차지했다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