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마지막에 본 것은 그날, 너는 무엇을 했는가
마사키 도시카 지음, 이정민 옮김 / 모로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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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의 아픈 서사가 기억에 남는 범죄 소설이다.

이 책은 마사키 도시카의 <그날, 너는 무엇을 했는가>의 후속작이다. 전작을 읽지 않았지만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는 크게 상관없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노숙인으로 추정되는 한 중년 여성의 시체가 발견된다. 피해자는 누구이며 누구에게 살해되었는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팀이 된 미쓰야와 다도코로 형사. 전형적인 '홈즈와 왓슨' 같은 조합이다. 기억력이 비상하고 관찰력이 뛰어난 미쓰야 형사는 어린 시절 엄마가 살해된 상처를 지니고 있다. 다도코로는 미쓰야의 능력에는 감탄하지만 그의 비사교적이고 독단적인 행동에 서운함을 느낀다.

1년 반 전에 발생한 미제 살인 사건과 노숙인의 관계성이 생기면서 점점 실마리가 풀린다.

노숙인의 이름은 '마쓰나미 이쿠코'. 평범한 생활을 하던 주부가 노숙인이 될 수밖에 없던 과정이 나온다. 그 과정은 이쿠코가 게을렀다거나 엄살을 부렸기 때문이 아니었다. 사회의 구조와 무관심, 그리고 불운 때문이었다. 읽으면서 씁쓸하고 아팠다.

노숙인이 된 후에도 잃지 않은 인간성과 자비 덕분에 이쿠코가 눈을 감는 순간이 감동적이었다. 범죄와 추리의 과정보다 이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추리의 과정에서 미쓰야 형사가 인스타그램을 분석하는 부분이 있다. 허영과 과시의 장이 된 SNS를 소재로 한 스토리를 최근에 여러 개 봤는데 그만큼 현실이 그렇다는 의미겠지.

재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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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무도에의 권유 - 발레에 새겨진 인간과 예술의 흔적들
이단비 지음 / 클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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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를 이보다 더 재미있게 알려주는 책이 있을까.

책을 받고 서문만 읽어 본다는 게 어쩌다 보니 마지막 장까지 읽고 말았다.

저자는 오랫동안 취미로 발레를 했고 문화예술 프로그램 방송 작가, 공연 창작 등의 다양한 활동을 했다. 그래서인지 소소한 발레에 대한 지식부터 발레의 역사, 발전, 주요 작품, 주요 무용수 등을 아우르는 다양한 주제의 글이 한데 묶여있다.

대개의 예술 입문서들이 너무 전문적이거나 에세이 류처럼 가벼운 내용인데 이 책은 지식을 체계적으로 서술하면서도 재미있다. 문장이 친근하면서도 가독성이 좋아서 내용이 더 잘 이해되었다. 대중적인 글을 써온 작가의 이력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 발레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있기에 가능하지 않앟나 싶다.

발레리나들이 발등의 곡선미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든가 발레 클래스가 발레단마다 다르다는 등 처음 알게 된 내용들이 기억에 남는다. 또 최근에 본 고전 발레들에 대한 내용과 유명한 안무가, 무용수, 작곡가들에 대한 일화가 아주 재미있었다.

책의 만듦새도 아름답다. 표지부터 내지의 일러스트가 멋졌고 내용을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되었다.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현대무용과 컨템퍼러리 댄스를 다룬 마지막 챕터도 흥미로웠다. 작년부터 <백조의 호수>나 <지젤> 같은 고전 발레를 봤으니 이젠 다른 작품들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익하고 재미있는 발레 입문서다. 발레에 대해 알고 싶다면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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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평화고등학교 테러 사건
서귤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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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가 여전히 삼국시대라는 가정 하에 벌어지는 테러극.

장르소설들을 읽다 보면 재기발랄한 상상력에 감탄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 소설도 그런 경우였다.

1500년 전 신라가 삼국 통일에 실패하고 여전히 한반도는 고구려, 백제, 신라로 나뉘어 패권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설정이다. 세 나라 간의 갈등이 심각하지만 민족도 같고 언어도 같기 때문에 공동의 번영을 모색한다. 그래서 평화협정을 맺고 비무장지대에 '삼국평화고등학교'를 설립한다.

입학을 꺼리는 사람들이 대다수라 각국은 사회 고위층 자녀들을 우선적으로 입학시킨다. 그런데 입학식 당일 학생 중 위장한 테러리스트들이 섞여 있었고 이들은 멸망한 대가야의 후손들이다. 가야의 독립을 요구하며 학생들을 인질로 잡은 상황부터 소설은 시작된다.

초반의 설정이 매력적이고 흥미로웠다. 앞으로 벌어질 스토리와 각 나라간의 깊은 갈등과 구출법이 기대됐다. 하지만 강렬한 설정을 뒷받쳐 줄 디테일과 구성이 아쉬웠다.

굳이 주인공을 따지자면 백제 출신의 여문희다. 다른 입학생과 다르게 문희는 고위층 자녀가 아닌 소외계층에 학교 폭력의 상처를 지닌 아이다. 문희를 시작으로 같이 인질로 잡힌 아이들의 소개가 나오는데 캐릭터가 등장하고 관계나 에피소드가 쌓일만 하다 싶으면 바로 죽어버렸다.

이야기가 전개될 수록 이런 방식이라 안타까웠다. 인질들은 너무 쉽게 죽어갔고 또 새로운 인물은 쉽게 등장했다. 몰입감을 불러일으킬 사건의 전환점이나 동력이 약했다.

삼국시대가 이어졌다는 가상 공간이 더 치밀하게 짜여있고 캐릭터 간의 관계설정이 보다 견고했더라면 더 재미있었을 것 같다. 중반부의 성긴 부분 때문에 결말의 뒷심이 약했다.

촌스럽게 족보나 핏줄 따위 운운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엄밀히 말해 나도 가야국의 후손이다. 그런데 요새 김해 김씨 중 누가 본인을 가야와 연관 지을까. 소설이 이런 부분도 보충했더라면 좋았을 뻔했다. 실제 경상도 출신은 신라에, 충청도, 전라도 출신은 백제에 공감하는 지점이 읽으면서 생긴하면 정말 재미있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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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손에 토카레프
브래디 미카코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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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소녀의 인생을 통해 빈곤과 학대, 그리고 인간의 의지와 희망을 얘기하는 책이다. 


현대의 영국과 식민지 조선이라는 전혀 다른 시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두 소녀의 인생은 닮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주인공 미아는 마약 중독자 엄마 밑에서 어린 남동생을 돌보며 사는 열 세살 소녀다. 무책임한 보호자와 가난에 방치된 소녀의 시점으로 이야기는 덤덤히 전개된다. 


 미아는 절망 속에서도 도서관의 책을 읽으며 위로는 받는 아이다. 우연히 가네코 후미코라는 인물의 책을 읽게 되면서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면을 발견하면서 공감하게 된다. 책을 읽기 전에 전혀 다른 시공간의 인물이 어떻게 연결될지 궁금했었다. 기대했던 SF적인 장치는 없었지만 이 소설의 방점은 다른 곳에 있었다. 무책임한 부모와 보호자의 학대, 빈곤과 소외를 일으킨 사회의 방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내용이었다. 


 미아가 책에서 만나는 가네코 후미코는 일제 시대 독립운동가 박열의 아내다. 가네코 후미코가 이런 처참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저자의 전작 에세이를 읽어보지 못해서 어떤 계기로 이 인물을 픽션으로 끌어왔는지 궁금해졌다. 아니면 반대로 가네코 후미코의 삶을 조명하려고 현대의 비슷한 상황에 처한 인물을 창조해 냈는지도 모르겠다. 


 제목 <양손에 토카레프>는 미아가 쓴 랩 가사의 내용이다. 에미넴의 <8 마일>처럼 처절한 삶 속에서 주옥 같은 랩이 나오는 법. 미아의 랩도 꾸민 것이 아닌 진짜다. 요즘 아이들이 택할 법한 예술적 표출이라 이 부분이 재미있었다. 


 비교적 쉽게 읽히는데도 생각할 거리를 많이 남기는 내용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책을 덮고 나서도 두 소녀를 응원하게 된다. 훈훈하고 여운이 남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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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러시! - 그 개의 전기, 버지니아 울프 기록
버지니아 울프 지음, 서미석 옮김 / 그림씨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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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영국 시인 커플 엘리자베스와 로버트 브라우닝의 강아지, '플러시'에 대한 소설.

코카스패니얼 플러시는 실제 엘리자베스의 반려견으로 종종 자신의 시에 등장시키던 개다. 병약한 몸으로 집에서만 지내던 엘리자베스 배럿. 그녀의 시만 읽고 사랑하게 된 여섯살 연하의 무명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은 배럿에게 편지를 보낸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엘리자베스의 아버지를 피해 비밀리에 결혼한 뒤 이탈리아로 도주한다. 물론 플러시는 모든 순간 이들과 함께했다.

버지니아 울프는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의 시와 기록들을 토대로 이 이야기를 썼다. 자신보다 앞서 살다간 뛰어난 여성 문인에 대한 동질감 내지는 오마주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강아지의 행동과 시선 등을 통해 인물과 사건들이 보여진다. 특히 두 연인을 관찰하는 부분들이 재미있다. 노란 장갑을 낀 남자가 자주 집에 찾아오고 1년이 지난 어느 날 주인이 몰래 외출하고 오더니 왼손에 반지가 끼워져 있는 것을 플러시가 발견하는 내용 같은 것이다.

울프의 작품이 어렵기로 유명한데 비교적 잘 읽히는 소설이다. (고백하건데 <자기만의 방>과 <올란도>를 읽다 말고 책장에 쳐박아 둔지 오래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빈민가로 납치된 플러시가 우여곡절 끝에 집에 돌아오는 것과 부부의 첫아이와 처음으로 대면하는 장면이다. '어딘가 깊은 혐오감으로 가슴이 찢어지는 것을 숨길 수 없었다'니. 실제 반려견들이 주인의 아이를 만날 때 이런 기분이 드는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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