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영국 시인 커플 엘리자베스와 로버트 브라우닝의 강아지, '플러시'에 대한 소설.코카스패니얼 플러시는 실제 엘리자베스의 반려견으로 종종 자신의 시에 등장시키던 개다. 병약한 몸으로 집에서만 지내던 엘리자베스 배럿. 그녀의 시만 읽고 사랑하게 된 여섯살 연하의 무명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은 배럿에게 편지를 보낸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엘리자베스의 아버지를 피해 비밀리에 결혼한 뒤 이탈리아로 도주한다. 물론 플러시는 모든 순간 이들과 함께했다.버지니아 울프는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의 시와 기록들을 토대로 이 이야기를 썼다. 자신보다 앞서 살다간 뛰어난 여성 문인에 대한 동질감 내지는 오마주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강아지의 행동과 시선 등을 통해 인물과 사건들이 보여진다. 특히 두 연인을 관찰하는 부분들이 재미있다. 노란 장갑을 낀 남자가 자주 집에 찾아오고 1년이 지난 어느 날 주인이 몰래 외출하고 오더니 왼손에 반지가 끼워져 있는 것을 플러시가 발견하는 내용 같은 것이다.울프의 작품이 어렵기로 유명한데 비교적 잘 읽히는 소설이다. (고백하건데 <자기만의 방>과 <올란도>를 읽다 말고 책장에 쳐박아 둔지 오래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빈민가로 납치된 플러시가 우여곡절 끝에 집에 돌아오는 것과 부부의 첫아이와 처음으로 대면하는 장면이다. '어딘가 깊은 혐오감으로 가슴이 찢어지는 것을 숨길 수 없었다'니. 실제 반려견들이 주인의 아이를 만날 때 이런 기분이 드는지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