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4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 길 샤함

스트라빈스키 불새 모음곡 3번(1945)


크라이슬러 아름다운 로즈마리

그리그 'Lezter Fruhling' from Zwei Elegische Melodien op.34-2  

엘가 The wilde bears


12.05

하이든 교향곡 100번 G장조 <군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알프스 교향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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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얀손스와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은 특별하다. 예리하게 조절되는 셈여림이나, 정밀하게 세분화된 프레이징, 멜로디 라인에 온기를 더하고 광채를 내는 것까지, 모든 작품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체화하기 때문이다. 어떤 곡을 연주하든 악구 단위로 해체했다가 신중하게 재구성한 것처럼 황금비율로 배합된 음향이 흘러나온다. 지휘자의 음악관과 오케스트라의 비르투오시티, 오랜 헌신과 호흡으로 만들어진 가지런한 음향세계. 오케스트라 팀워크의 이상형이 있다면 이들의 음악-만들기에 가까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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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은 오케스트라의 안정적인 바탕 위에서 바이올린이 변칙적으로 농담을 풀어놓는 듯한 연주였다. 1악장은 음정이 플랫되고 박자가 다소 어긋나는 등 샤함의 바이올린이 흔들렸는데, 카덴차를 지나며 특유의 유려한 개성을 되찾았다. 2악장은 피아니시모의 향연. 이들만큼 균일한 밀도의 작은 소리를 낼 수 있는 다른 오케스트라가 있을까 싶다매 내한마다 또 레코딩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를 살짝 넘는 소리'를 만드는 데 도가 튼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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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내한의 정점은 스트라빈스키의 불새 모음곡이었다. 작곡가의 치밀한 오케스트레이션에 대한 감탄과, 이 까다로운 음향설계를 찬란한 디테일로 구현하는 오케스트라에 대한 감탄을 동시에 했다빛을 받으면 형형색색 무지개를 쏟아내는 스테인드글라스라고 해야할까. 악구 하나하나 투명하게 드러나길 원하는 지휘자의 음악관이 고감도 오케스트라를 만나 눈부신 정밀함을 성취한 듯 했다. 두고두고 아껴 기억할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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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묘하게 세공되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서주 베이스 음형의 음산한 밀도와 자로 잰 듯한 하모닉스, "파 드 되"의 정치한 목관 앙상블과 고혹적인 현악의 레가토. 예민한 귀를 가진 지휘자의 섬세한 통제 탓에, 솔리스트들의 실력이 개인기로 과시되지 않고 음향적 균형에 녹아들었다. "공주의 호로보드"에서는 얀손스가 프레이징의 마술사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끊어질듯 말듯 현과 관을 넘나드는 모든 프레이즈가 누빈 구석 없이 매끄러웠다. 론도가 끌날 무렵 피어오른 약음은 극히 아득했는데, 그 덕분에 뒤를 때리듯 튀어나온 카슈체이 댄스에 객석 전체가 움찔했다. 처음에는 브라스가 흔들리는 등 앙상블이 조금 흐트러졌지만, 이내 여태껏 들어보지 못한 디테일이 쉼없이 쏟아졌다. 음표 하나 흘리지 않는 아티큘레이션이 단조로운 음형에도 숨결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다만 정교한 음향을 위해 템포를 규칙적인 박절에 가두는 느낌이었다.) 이어 하프의 반복되는 오스티나토와 함께 "자장가"의 선율이 울려퍼졌다. 관능적인 색채가 연주장을 휘감았고, 아연한 기분에 작게 탄식했다. 피날레에 대한 기억은 사실 좀 추상적이다. 음향적이라기보다는 촉각적인 경험에 가까웠다융단처럼 깔린 현악의 피아니시모 위에서 호른의 선율이 황홀한 흐름을 타기 시작했다. 프레이징이 마법을 부려 기나긴 크레셴도가 이음새 하나 없이 한순간에 부풀었다. 마지막 총주에 이르자 치솟는 트레몰로 위에 금관이 더해졌고, 거대한 광채가 장벽처럼 우뚝 섰다. 숨 막히게 유려한 도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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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빼어난 실황을 경험하면 곡이 완전히 달리 보이곤 한다. 앞선 불새가 그랬고, 군대교향곡도 그런 경우였다. 악구와 악구가 탄력적으로 반응해 하나의 유기체를 이루는 천의무봉의 연주. 모든 성부가 적절한 순간에 빈틈없이 이행하고 교차하니, 음향에서 놀라운 입체감이 살아나는 게 당연했다. 만화경처럼 형태를 바꿔가며 등장하는 악상들이 치밀한 기교로 맞물릴 때는 거의 호사스러운 추동력을 느꼈다단편적인 모티브를 각양각색으로 변주하는 곡의 고전적 완성도만큼이나, 이 유희적인 모티브 활용에 매순간 활기를 불어넣는 지휘자와 악단의 집중력에 탄복했다. 곡과 해석과 연주가 일체가 된 느낌. 현대악기로 연주하는 하이든으로는 이 이상이 가능할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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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석의 스펙트럼을 서사성과 순음악성을 양끝에 놓고 구분한다면, 마에스트로는 보통 둘 사이에서 극단적인 순음악성을 택했다. 알프스 교향곡도 마찬가지였다. 얀손스는 알프스의 세부를 지독하게 조탁해 혼돈에 가까운 순간에도 미묘한 뉘앙스를 구분했다극적인 긴박함이 줄고 질서있는 충만함이 가득했다. 교향시적 서사보다 순도 높게 정제된 음향 그 자체를 탐닉하는 것처럼 보였다. 다만 지휘자의 초정밀세공이 스트라빈스키나 하이든만큼 곡과 어울리는 지는 의문이었다. 연주에 호불호가 갈렸다면 아마 이 결벽적인 순음악성에서 비롯되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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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프레이즈가 정합적으로 분기했다 결합했고, 단원들이 촘촘한 설계도를 벗어나는 일은 좀처럼 드물었다어떤 장면은 기예에 가까운 기교로 연마되어 있었다. 가령 "수풀과 덤불에서 길을 잃다"는 모티브가 대위적으로 뒤엉켜 난잡하게 연주되기 쉬운 부분이다. 그런데 이날 연주는 레코딩에서도 듣기 힘든 수준으로 반음계적 푸가가 선명하게 직조되었다. 부점리듬의 모티브가 돌발적으로 번뜩이는 '"위험한 순간"도 더없이 절륜했다. 기술적 완성도만으로도 감탄할 만한 장면들. 곡과 해석이 가장 감격적으로 공명한 부분은 이 곡의 절정이기도 한 "정상에서"였다. 알프스 정상에 선 감흥이 더없이 충만한 화성적인 밸런스로 노래되었다. 지휘자의 개성이 잘 드러났던 다른 장면은 "천둥과 폭풍우". 정신없이 퍼부어지는 퍼커션을 뚫고 현악과 목관의 속주가 음형 음형 분리되어 결마다 구별될 정도였다. 하이든에서부터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까지, 텍스쳐가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얀손스의 현미경은 집요하게 배율을 높였다. 폭풍우 이후부터는 투어의 마지막이라 그런지 연주에서 피로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오케스트라는 끝까지 의도된 궤도 위에서 찬연한 음향을 빚었다. 공연을 끝낸 얀손스는 거의 탈진해 있었다. 음악적으로 인간적으로도 높은 수준에 오른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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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들의 공연을 다섯 번 경험하며 거듭 느끼는 것이지만, 악마만큼이나 천사도 디테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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