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단면은 매끄럽지 않다. 울퉁불퉁하거나 균열이 가 있고, 인과의 사슬이 뒤엉켜 있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말까지 이어졌던 서울시향 사태도 그렇다. 지휘자가 자리에서 물러나는 혼란 속에, 오늘 밤 정명훈과 시향은 마지막 연주회를 갖는다. 예견했던 일이지만 그래도 급작스러운 마지막이다.
우선 대표의 폭언이 있었다. 성공적인 커리어를 밟아온 대표의 업무방식은 폭언이었다. 13명의 직원이 시향을 떠났고, 나머지 14명의 직원은 그럼에도 시향에 남았다. 대표는 자신의 거친 언사가 서울시향의 어설픈 행정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아마 그런 면도 있을 것이다. 불투명한 행정은 항공권비를 둘러싼 논란을 불렀다. 정명훈이 항공권비를 부당하게 횡령했다는 주장과, 오히려 누락되어 받지 못한 비용이 1억원에 달한다는 주장이 맞붙었다. 서울시향의 행정은 항공권비 내역을 제대로 소명하지 못할 정도로 주먹구구식이고 불투명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이 대표의 폭언을 온전히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어설픈 부하를 폭언으로 다스리는 대표의 말들은 드러난 것만 놓고 봐도 심각한 인권침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는 ‘반전’을 쫓는 언론들을 이 부분을 아예 누락해버린다.
다음으로 증언이 엇갈리는 성추행 혐의가 있다. 대표는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직원은 무고죄로 고소를 당했다. 법원은 사실관계가 분명치 않다며 직원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정명훈의 부인과 비서가 직원들을 규합해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주장이 있고, 정명훈 측은 부인이 오히려 직원 구제에 힘을 보탠 것이라며 반박한다. 부인이 대표에 대한 반감을 직원과 공유하며 적극적으로 개입했던 것은 사실로 보인다. 다만 부인이 직원들을 부추겨 성명서를 내게 한 것인지, 아니면 내부고발자인 직원들이 부인을 통해 정명훈이 구명에 나서게끔 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작용했을 수도 있다.) 휴대폰이나 전자기기를 사용하지 않는 정명훈과 접촉하는 방법은 부인을 통하는 것이라는 게 음악계 전언이니, 직원들이 부인을 창구로 정명훈에게 의견을 전달하려 했을 수도 있다. 다른 쪽으로는, 부인이 직원들의 처우 문제를 지렛대로 대표를 몰아내려 한 것일 수도 있다. 어느 것도 확실하지 않은 추측이다. 법적 쟁점은 성추행 무고에 있을 것이다. 성추행 혐의가 조작된 것인지, 조작된 것이라면 직원이 만들어낸 것인지, 아니면 부인의 개입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부인의 역할이 의견을 모으고 이슈 파이팅을 주도하는 데서 그치는지, 아니면 그 이상인지 불확실하다. 검증되지 않은 확신이 언론에 넘쳐난다. 차차 사실관계가 밝혀지리라 믿는다.
서울시향에 관한 이야기는 이렇듯 모호하고 혼란스럽다. 선의와 악의가 섞여 있고, 확정되지 않은 사실들이 파편처럼 널려있다. 언론은 자극적이고 명료한 이야기를 원한다. 파렴치한 성추행범이었던 대표는 순식간에 무고한 피해자가 되었다. 사람들은 친MB라며, 친박원순이라며, 종북이라며, 부패한 예술가라며, 저마다 자신의 악당을 지칭하는 수식어를 정명훈에게 붙였다. (이 사태가 지극히 '한국적'인 이유다.) 왜 혈세를 클래식 음악에 들이냐는 냉소와, 예술가는 돈에 초연해야 한다는 훈계가 이어졌다. 언론의 목소리가 클수록 사건의 세부는 오히려 무시되었고, 결론이 나지 않은 이야기는 늘 성급한 결론으로 치달았다.
그간 이뤄낸 것에 비해 초라한 지휘자의 퇴장도 안타깝지만, 무엇보다 시향 단원들이 걱정된다. 그들은 매해 계약을 새로 갱신하며, 불안정한 지위로 지난 10년을 버텨온 이들이다. 애호가들은 10년간 그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았고, 그 뿌듯함의 기억을 나눴다. 그들의 성취와 노력이 최근의 일들로 무너지지 않길 바란다. 돌아보면 정말 근사한 순간이 많은 10년이었다. 서울시향의 앞날에 행운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