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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ㅣ 동문선 현대신서 102
미셸 슈나이더 지음, 이창실 옮김 / 동문선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2012.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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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도대체 해독불가다. 애써 정의하자면 시적이고 사변적인 전기다. 아니, 전기가 아니라 하나의 복잡한 미로다. 저자는 굴드의 괴팍한 행동과 언행을 비의적으로 드러내며(혹은 감추며), 이를 설명하기보다는 일종의 신비로운 삽화처럼 묘사한다. 이 난해한 스케치가 드러내는 것은, 온몸으로 겨울을 껴안은 채 꼬부라진 나목, 단단한 고독 속에 놓인 고요한 황홀경이다. 이를테면, 굴드의 복잡함과 모호함은 해명되지 않고 보존된다. 혹은 굴드는 해명을 피해 달아나는 복잡함과 모호함 그 자체로 드러난다. 그러므로 이 전기가 해독이 불가능함은 어쩌면 나보다 굴드 쪽에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굴드를 위해 쓰여진 이 짧은 책의 탁월함일 수도 있겠다.) 그는 세상의 설명과 논리가 닿지 않는, 엄밀한 고독 위에 거처를 마련한 이였으므로. 그의 푸가는 특유의 잔향없는 단호함으로, 경쾌한 잰걸음으로, 침묵 속으로, 아무도 없는 곳으로, 쉼없이 도망간다. 헛소리로 정리하자면, 그가 이미 떠난 자리에만 그가 있다. 남은 것은 도취 속에 새어나오는 흥얼거림 뿐이다. 내밀하게 몸을 섞는 푸가와 숨소리의 기이한 뜨거움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