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지음 / 허블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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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동결은 대가 없는 불멸이나 영생이 아니야. 살아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눈을 뜨는 순간이 있어야 하고, 그때마다 나는 내가 살아보지도 못한 수명을 지불하는 기분이 들지." "그럼 대체 왜 그런 일을 하시는 겁니까? 이제 편히 노후를 보내실 수도 있잖습니까." . . . "이제 상황 판단이 안 되는 거라네. 내가 여전히 동결 중인지, 사실 이 모든 것이 몹시 추운 곳에서 꾸는 꿈은 아닌지, 내가 사랑했던 이들이 정말로 나를 영원히 떠난 게 맞는지, 그들이 떠난 이후로 100년이 넘게 흘렀다면 어째서 나는 아직도 동결과 각성을 반복할 수 있는지. 왜 매번 죽지 않고 다시 깨어나는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고, 얼마나 많이 세상이 변했는지. 그렇다면 내가 그들을 다시 만나는 일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닌지. 그럼에도 잠들어 있는 동안은 왜 누구도 나를 찾지 않고, 왜 나는 여전히 떠날 수 없는지....." 안나가 빙긋 웃었다. "한번 생각해보게. 완벽해 보이는 딥프리징조차 실제로는 완벽한 게 아니었어. 나조차도 직접 겪어보기 전에는 몰랐지. 우리는 심지어, 아직 빛의 속도에도 도달하지 못했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우리가 마치 이 우주를 정복하기라도 한 것마냥 군단 말일세. 우주가 우리에게 허락해준 공간은 고작해야 웜홀 통로로 갈 수 있는 아주 작은 일부분인데도 말이야. 한순간 웜홀 통로들이 나타나고 워프 항법이 폐기된 것처럼 또다시 웜홀이 사라진다면? 그러면 우리는 더 많은 인류를 우주 저 밖에 남기게 될까? "안나 씨." "예전에는 헤어진다는 것이 이런 의미가 아니었어. 적어도 그때는 같은 하늘 아래 있었지. 같은 행성 위에서, 같은 대기를 공유했단 말일세. 하지만 지금은 심지어 같은 우주조차 아니야. 내 사연을 아는 사람들은 내게 수십 년 동안 찾아와 위로의ㅏ 말을 건넸다네. 그래도 당신들은 같은 우주 안에 있는 것이라고. 그 사실을 위안 삼으라고. 하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가 아무리 우주를 개척하고 인류의 외연을 확장하더라도, 그곳에 매번, 그렇게 남겨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이런 식으로, 시간을 끄셔도 소용은." "우리는 점점 더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갈 뿐인게 아닌가." ​ ​ ㅡ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허블(2019)


오랫동안 나는 한국소설을 기피해왔다. 한국소설 특유의 적나라한 현실묘사들이 불편해서라고 주장하면서. 현실의 구질구질함을 몸소 체험하고 있는데 거기에 더해서 소설에서까지 마주치고 싶지 않다는 회피적인 심리가 기저에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로맨스소설을 좋아하고 동화를 좋아하고 판타지 소설을 격하게 사랑한다. 여기가 아닌, 저기를 그려볼 수 있으므로. 아무 것도 못 하는 무능력한 내가 아닌, 먼치킨적인 능력을 가진 타인으로서 세계를 대면할 수 있으니까.

그런 편견없이 문득 고른 소설 한 편에 정신없이 빠져든 것은 의외의 일이다.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물리치료의 심심함을 때우기 위해 열었다가 완독한 후에야 책장을 간신히 덮었다. 최근에 읽은 어떤 장르의 책에서도 이 정도의 몰입도는 흔치 않은 일이다. 책을 읽은 뒤, 무어라고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간질간질한 말들이 나의 손가락 끝에서 떠돌고 있어서 두서없이 내려놓기로 한다.

이 책은 여러 개의 이야기들이 짤막한 단편처럼 묶여있는 옴니버스식 구성을 취하고 있다. 책에 실려있는 낱낱의 이야기들에 대한 간단한 줄거리를 뒷면 해설을 인용해서 언급해본다.

「관내분실」은 죽은 사람들의 생애 정보를 데이터로 이식한 '마인드'를 수집하는 도서관이 나온다. 자신이 임신한 아이에 대한 애정이 없는 '나'는 살아생전에 사이가 소원하다못해 남보다 못했던 엄마의 영혼이 담긴 인덱스가 도서관 내 분실되었다는 것을 알고 엄마가 남긴 삶의 흔적을 되짚어가다가 결과적으로 엄마의 인덱스를 찾고 나와 엄마간의 관계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회복하게 된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인간을 획기적으로 다른 우주공간으로 보낼 수 있게끔 만드는 인간 냉동 수면기술인 딥프리징을 연구하던 여자 과학자가 워프항법 개발로 인해 우주 이동의 패러다임이 변화한 뒤 남편과 아이를 보낸 슬렌포니아로 갈 수 없게 되자 170세가 될 때까지 우주 정거장에서 오지 않는 비행선을 기다리는 모습이 나온다.

「스펙트럼」에서는 우주 탐사를 떠났다가 실종된 40여년 동안 태양계 바깥의 행성에서 외계 지성 생명체를 조우한 여성 생물학자가 그들에 대한 추억을 손녀인 나에게만 살포시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허언증 환자로 몰리면서까지 그들에 대한 일체의 정보를 숨겨온 주인공은, 함께 지낸 외계 지성체가 자신에 대해 내린 정의를 해독해내고 되새긴다. "그는 놀랍도록 아름다운 생물이다."라는.

특이하게도 이 우주 판타지 소설에서 나오는 주인공들은 모두 여자이다. 나는 해설을 썼던 문학평론가가 주시했던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을 다뤘다는 데 중점을 두고싶지는 않다. 그냥 한데 묶어서 그냥 인간들의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 각각의 이야기들 속에는 소외와 차별, 경제성의 원리 등등 사회의 변두리에 자리한 소수자들이 겪어야 하는 차별과 배제가 생생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은 결과적으로 인간의 존재론적인 의미를 주목하고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나가야만 하는 나, 혹은 타자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타자를 조망한다는 것은 곧 타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나의 존재에 대해 들여다본다는 것이다. 무수한 나의 집합이 타자들이고 타자들이 분해된 것이 낱낱의 나이다. 그들이 겪고 있는 부조리함과 이별과 고독과 외로움이 저 멀리 있는 사람들만의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개인이라는 알갱이들로 흩어진 지금 우리가 보편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과 통찰이 아닐까. 도저히 떨쳐낼 수 없는, 인간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감정들에 대한 공감과 이해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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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결혼 시키기
앤 패디먼 지음, 정영목 옮김 / 지호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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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지에 적힌 글
 
 
 
 
  오래 전 조지와 내가 아직 연인 사이는 아니지만 대충 그 방향으로 비틀거리며 나아가고 있다고 느낄 무렵 우리는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고받았다. 물론 선물은 책이었다. 조지는 내가 곰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어니스트 톰슨 시튼이 쓴 《회색 큰 곰의 전기》를 주었는데, 세 번째 책장에 가서야 다음과 같은 헌사가 수줍게 자리잡고 있었다. 진정한 새 친구에게. 나는 그 헌사의 강조점을 제대로 파악하여 해석하기만 하면("진정한 새 친구에게", "진정한 새 친구에게", "진정한 새 친구에게") 갑자기 영원한 헌신의 고백이 드러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어떤 탈무드 학자도, 어떤 전시의 암호 판독가도, 어떤 해체주의 비평가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꼼꼼하게 그 세 마디를 연구했다.
 
  나는 조지가 어류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에게 조셉 미첼이 풀턴 어시장에 대해 쓴 이야기들을 묶은 얇은 책 《늙은 플러드 씨》를 선물했다. 그 책에는 1948년에 저자가 직접 써 준 서명이 적혀 있었다. 그러나 내가 그것을 가만히 둘 사람인가? 물론 아니다. 나는 이렇게 적었다. 조지에게, 앤이 사랑으로. 그 뒤에는 레드 스미스1의 말을 잘못 옮겨 적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겠으면 아무 말이나 다 하라는 원칙에 의거하여, 남녀관계의 본질에 대한 나 자신의 사유를 열다섯 줄 덧붙였다. 감정을 분명히 드러내는 면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군말을 잔뜩 쌓아놓는 면에서도 내가 조지를 20대 1로 압도했다. 그 책, 그 책을 받은 사람, 진정한 새 친구 관계가 그 헌사의 무게에 짓눌려 버리지 않은 것이 기적이었다.
 
  어쨌든 조지는 나와 결혼을 했고 어류와 조셉 미첼에 대한 애정도 그대로 간직했기 때문에, 불행히도 내가 적은 말들은 영원히 보존되었다. 예컨대 스웨터를 선물하면서 함께 보낸 카드는 스웨터와 곧 헤어질 가능성이 높지만, 책과 거기에 적은 헌사는 영구히 결합되어 있다. 이것은 축복이 될 수도 있고 오점이 될 수도 있다. 글루체스터셔의 치핑 캠든에서 고서적을 파는 소머스 스튜어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의 귀중한 친구 존 키츠2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으로, P.B. 셸리3가 1820년 플로렌스에서'라는 진짜 자필 헌사가 적힌 톰슨의 《사계》를 손에 넣으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지 상상해 보시오. 또 밀턴의 《실락원》의 멋진 초판을 손에 넣었는데, 속표지에 '에이더에게 제스가, 1968년 블랙풀에서 보낸 행복한 휴가를 추억하며 많은 사랑과 솜사탕으로'라는 헌사가 볼펜으로 찍찍 휘갈겨져 있을 때 얼마나 속이 상할지 상상해 보시오."
 
  솜사탕류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나의 헌사는 《늙은 플러드 씨》의 가치를 높여 주지 못했지만, 예컨대 "엘리자베스 배럿 양에게 애드가 앨런 포가 존경하는 마음으로"라는 헌사는 《갈가마귀와 기타 시편》4의 가치를 높여 주었고, "한스 크리스찬 안데르센에게 / 친구인 찰스 디킨스가 존경하는 마음으로 / 1847년 7월 런던에서"라는 헌사는 《피크위크 클럽의 기록》5의 가치를 높여 주었다. 서적광의 가치 등급 체계에서 문인간의 접촉을 보여주는 그런 거룩한 유물은 다른 모든 요인들을 덮어 버린다. 장정, 판수, 희귀성, 상태 등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비천하고, 칠칠치 못하고, 누렇게 뜨고, 벼룩이 들끓고, 귀가 접힌 창녀 같은 책"(비평가이자 애서가인 홀브룩 잭슨이 했던 말)도 유명한 족보에 속하는 헌사만 있으면 순식간에 귀족으로 변모한다. 먼지에 바이런이 마르체사 지치올리에게 보낸 226단어의 짧은 연애 편지가 적힌 마담 드 스탈의 닳고 닳은 《코린》을 손에 쥐고 떨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 연애 편지는 이렇게 끝난다. "사랑한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당신을 사랑하며, 이 사랑은 언제까지나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알프스와 바다가 우리를 갈라 놓을 때 가끔 나를 생각하십시오. 그러나 그대가 바라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렇게 갈라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회색 큰 곰의 전기》 안에서 내가 은근히 보고 싶어했던 것이 바로 이런 글이었다.)
 
  바이런은 뜨거운 사랑에 빠져 제정신이 아니었을 텐데도 전통적으로 저자만이 글을 적을 수 있는 속표지를 피해 면지에 헌사를 썼다. 나는 수십 명의 작가들의 속표지를 더럽힌 뒤 최근에야 이 예절을 알게 되었다. 우리 서가의 "친구나 친척이 준 책" 범주에도 속표지에 헌사를 쓴 책들이 많이 꽂혀 있었지만 한결같이 적법성을 지킨 것들뿐이었으니 그런 예절을 진작에 깨우칠 수도 있었을텐데.
 
 
 
 
ㅡ앤 패디먼, 『서재 결혼 시키기』(지호,2001)
 
 
 
 
1 Red Smith(1945~), 미국의 스포츠 칼럼니스트.
2 John Keats(1795~1821), 영국의 시인.
3 P.B.Shelley(1792~1822), 영국의 시인.
4 The Ravens and Other Poems, 애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1809-49)의 작품.
5 The Pickwick Papers, 찰스 디킨스(1812-70)의 작품.
 
 
 
 
 ♣ 앤 패디먼 Anne Fadiman은 「아메리칸 스칼러」의 편집자이다. 첫 책 「유령이 당신을 붙들면 당신은 쓰러진다」(1997)로 미국 도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으며, 「뉴요커」, 「시빌리제이션」,「하퍼스」,「라이프」,「뉴욕 타임즈」 등에 글을 썼다. 그녀의 가족은 최근 뉴욕시티에서 매사추세츠 주 서부로 이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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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릿속이 단순무식 감정배제 사고회로로 전환된 최근, 복잡한 인풋과정을 거쳐야 하는 '문장', 혹은 조각이지만 그나마 '글' 같은 것을 쓰게 만든 건 바로 이 책이었다. 아무래도 아직까지는 에너지가 딸리므로(현재 모든 에너지는 기초대사 분야에 가장 집중해있다) 두뇌를 돌리는 따위의 소모가 심한 일은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그러니까 호응관계나 주술이 완벽히 들어맞는 문장을 말하면 저녁무렵에 집어먹은 빵의 열량(215kcal)가 몸에서 쑥 빠져나가고 거기다가 지금과 같은 감상을-예전에 비해 현저히 느린 속도로- 쓰고나면 12시 무렵 야참으로 먹은 새끼 튀김우동(275kcal)과 김밥 반 줄(최소 400kcal)가 술술 새어나가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가끔 이불 위에 엎어져 있다보면 어떤 생각의 파편들이 떠오르긴 하지만 대개 그것들은 낡은 몸 안에서 차마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저 두터운 머릿 속을 툭툭 건드리다가 없어지곤 한다. 더구나 운동뉴런을 자극하여 명령을 근육으로까지 전달하는 과정에까진 이르지 못하므로 기록이란 작업은 쉽게 이루어지기 어렵다. 그런데 잠이 깼다가 다시 누운 상태에서도 본문과 관련된 잡다한 생각들이 부유물처럼 떠올라 '귀차니즘'이라는 최대의 신조를 포기하고 결국 마개를 열어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가만 생각해보자. 이제껏 주고받은 책에 대한 헌사들은 모두 면지가 아닌 속표지에 썼었다. (이런 예의없는!) 얼마 전에 나타샤님이 某여인에게서 받은 책 안에도 속표지에 썼으며(기념으로 나도 같이 써주었다), 후배에게 부쳐주려고 빼놓은 시집《링 위의 돼지》에도 저자 대신 뻔뻔스럽게 속표지에다 썼다. 게다가 가장 최근에 받은 《그림자 자국》은 오히려 헌사를 요청하지 않은 채 그냥 들고오는 무례를 저지르기도 했다! 이것은 함께 모여 책을 사기만 하면 카페에서 책을 나눈 후 서로에게 헌사를 써주던 <경건한 의식>이 세월이 흐르면서 퇴색되어버린 결과이다. 설사 우리의 헌사가 바이런의 그것처럼 애틋하고 낭만적인 것이 아니라 단순히 먹은 음식과 그 날 한 행위, 가본 장소의 기록이었다 할지라도 기록의 일상화는 꾸준히 이루어져야 마땅했던 것이다. 가장 뚜렷하게 기억나는 헌사를 하나 적어보자.

 

  2004년에 발간된 신현림의 『해질녘에 아픈 사람』 속표지 앞부분에는 하늘색 펜으로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2004.8월 1일 민들레영토에서 뽀빠이(돈부리, 허니)를 먹으며… P.M.6:30. 초록여신&슬픔의바다". 그리고 역시 속표지 뒷부분의 내용은 이와 같다. "시를 목숨처럼 사랑하는 당신은 언제나 이 세상의 길목에서 아름다움 빛으로 찬연히 빛날 것입니다. 2004.8.1. 민들레영토에서 슬픔의바다님께 초록여신."(오자가 하나 있다.ㅋ) 이 이름은 오랜 기간 활동한 인터넷 시카페에서 주로 쓰던 조금은 유치할 수 있는 닉네임들이다. 몇십 년이나 몇백 년 후, 만약 중고시장에서 이 책들을 만난 사람은 소머스 스튜어스처럼 기분나빠할까 아니면 '슬픔의바다'라거나 '초록여신'이라는 뜬금없는 이름들에 황당해하거나 궁금해할까.
 
  그나저나 홀브룩 잭슨의 말에 반박해보자면 '귀가 접힌 책'들은 집에 돌아오면 "주인님, 다녀오셨어요?"하고 반갑게 맞아주는 순한 강아지의 귀 같아서 더 친근감이 든다고 여겨진다. 이건 물론 개인적인 취향과 관점이다. 내 책들은 흥미로운 부분에는 거의 귀가 얌전히 접혀있다. 길들여지지 않은 새 책처럼 읽는 이의 손길을 뻣뻣하게 튕기지 않고!

-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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