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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스스로 언어화하지 못할 때 속이 썩는다는 말은 정확하다. 고통의 원인인 모든 부정의가 오로지 나라는 존재로 수렴되기 때문이다. 경험을 꺼내 읽고 해석하는 일은 혼자 속 썩이며 참는 일보다 나에게는 참을 만한 고통이었다. 그런 면에서 글쓰기는 내 이야기가 단지 사적인 일이 아니라는 것, 사소하지 않다는 것, 내가 경험한 고통이 이 세계에 존재하는 폭력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걸 각성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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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밥
안도현


무밥 한 그릇이
소반 위에 놓여 있다.
소반이 적막하여서
무밥도 적막하여서
송송 채를 썬
흰 무의 무른 살에 스민
뜨거움도 적막하여서
무밥 옆에 댕그라니 놓인
양념간장 한 종지도
옛적에 젊은 외삼촌이
여자를 만난 것처럼
가난하게 적막하여서
들척지근하고 삼삼한
이 한 저녁을
나는 달그락달그락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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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에 탐닉하기
게르하르트 막스Gerhart Marcks의 1938년 작품,
〈수영선수Schwimmerin〉. 이 작품은 수영 경기에서 출발을 알리는 총성이 들리기 직전 온 마음

을 집중하고 있는 수영선수의 모습을 포착한 것 같다. 그녀의 몸짓에는 온전히 내 안의 목소리 에 탐닉하는 순간의 불꽃 같은 열정이 꿈틀거린 다. 무언가 중요한 일이 시작되기 전에는 주변 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오직 내 마음의 소리만이들리는 순간이 있다. 바로 그때다. 우리 내면의고독이 눈뜰 때. 진짜 창조적인 작업이 시작될때. 이 순간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때 우리의 꿈은 날개를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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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어린 여자애들 네 명이 살았어. 그 아이들은 먹을 것과 마실 것, 입을 것이 충분했고, 마음을 달래주고 기쁘게 해주는 것도 많았어. 다정한친구들도 있고, 사랑을 주는 부모님도 있었어. 하지만 아이들은 만족하지 않았지. (여기서 네 자매는서로 다 안다는 듯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다시 부지런히 바느질을 해나갔다.)아이들은 심성이 착하고 훌륭한 결심도 여러 차례 했지만, 그 결심을 잘 지켜나가지는 못했어. 이미 많은 걸 가졌고 충분히 재미나게 살 수 있는데도 툭하면 ‘우리한테 이게 있으면 좋을 텐데‘ 라든지 ‘우리가 저렇게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같은 말을 했지. 아이들은 한 노파를 찾아가 행복해질 수 있는 주문을 가르쳐달라 고 했어. 노파는 ‘인생이 불만족스러우면 너희가 받은 축복을 떠올리며 감사하는 마음을 갖도록 해라‘ 하고 조언했지, (여기서 조는 할 말이 있어 얼른고개를 들었다가 얘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눈치채고 입을 다물었다.) 분별 있는 아이들이라 노파가 해준 충고를 따르기로 결심했단다.

아이들은 자기네가 지금 얼마나 잘살고 있는지를 깨닫고 깜짝놀랐어. 첫 번째 아이는 아무리 부자라도 수지와슬픔을 모르고 살 수는 없다는 걸 깨우쳤어. 두 번째 아이는 비록 지금은 가난하지만 자신은 젊음과건강, 선한 영혼을 갖고 있으니, 안락한 생활을 즐기지도 못하고 툭하면 짜증을 부리는 병약한 노부인보다 훨씬 행복한 사람임을 알게 됐어. 세 번째아이는 식사 준비를 돕는 게 재미없기는 해도 먹을걸 구걸하러 다니는 것보다는 덜 힘들다는 사실을깨달았지. 네 번째 아이는 홍옥수 반지가 훌륭한처신만큼 가치 있지는 않다는 걸 알게 됐어. 그래서 네 아이는 불평불만을 그만두고 이미 받은 축복을 즐기면서 그 축복을 계속 누릴 만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기로 했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축복이늘어나기는커녕 이미 받은 축복도 사라질 수 있으니까.

내가 보기에 그 아이들은 노파가 해준 충고를 받아들여서 실망하거나 후회하진 않았을 것 같구나."
"어휴, 어머니. 저희 얘기를 이용해 저희를 공격하시다니 교묘하시네요. 재미난 얘기‘가 아니라설교를 하신 거잖아요." 메그가 외쳤다.
"나는 이런 설교가 좋아. 아버지도 이런 식으로 우리에게 말씀을 해주셨잖아." 베스는 조의 바늘꽂이에 바늘들을 가지런히 꽂으며 사려 깊게 말했다.
"난 언니들 같은 불만은 없어. 수지가 겪은 일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서 앞으로 더욱 신중하게 처신할 거야." 에이미는 짐짓 도덕적으로 말했다.
"그래. 우리에게 필요한 조언이었고 앞으로 잊지 말도록 하자. 혹시 잊어버리면 『톰 아저씨의오두막에서 클로이 아주머니가 한 말을 우리에게들려주세요. ‘너희가 받은 자비를 기억하렴, 얘들아, 너희가 받은 자비를 기억해‘ 라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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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
제가 보내드릴 수 있는 건 사랑, 그리고 집에 안전하게 보관해둔, 뿌리째 말린 팬지뿐이에요. 아버지가 봐주시면 좋겠어요. 저는 아침이면 어머니가 주신 책을 읽으며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밤이면 아버지가 가르쳐주신 노래를 부르며 잠들곤 해요. 지금은 ‘천국‘ 노래를 못 부르겠어요. 그 노래를 부르면 눈물이 나요. 다들 상냥하게 대해줘요. 어머니가 저희 곁에 안 계시지만, 저희끼리 나름 행복하게 지내요. 에이미가 편지 마지막 장을 쓰고싶어해서 이만 줄일게요. 저는 매일 잊지 않고 그릇을 덮고, 시계태엽을 감고, 방에 환기를 시켜줘요.
저 대신 아버지 뺨에 뽀뽀를 해주세요. 아, 제가 기다리는 집으로 어서 돌아오시면 좋겠어요.
베스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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