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담
전건우 지음 / 래빗홀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부터 내가 듣고 경험한 것들 중 가장 섬뜩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그리고……어쩌면 가장 위험할지도 모를 이야기를.”

프롤로그 첫 문장부터 단단히 각오하게 한다.
공포 장르를 즐겨 쓰는 소설가인 작가 전건우에게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라는 제목의 메일 한 통이 도착한다.

오랜 지인인 민속학 교수 차문수의 딸 차미조가 보낸 메일로 부고 소식과 함께 아버지의 괴이한 죽음에 대해 의논하자는 내용이다.
밀실인 현장과 기괴한 형태의 주검을 확인한 작가는 차미조와 힘을 모아 죽음의 비밀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본인이 듣고 경험했다는 말로 시작하는 무서운 이야기는 신빙성을 더하고 공포 또한 배가시킨다.
작가와 같은 동명의 등장인물이 등장해 자신이 실제로 듣고 경험한 이야기 중 가장 섬뜩한 이야기라는 밑자락을 깔고 시작하기에 읽는 내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전건우 작가가 경험한 일인지 생각하게 된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 누군가를 흉담의 저주로 끌어들여야만 한다는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지 끝까지 고민하게 한다.
소설은 개인의 사악한 마음에서 발현한 공포가 아닌 우리 역사에서 숨기고 싶은 비극과 연결된 공포라 진실을 알게 됐을 때는 애달프고 슬프기까지 하다.

”그 이후로 나는 엄청나게 왕성한 활동을 했다. 장편도 여러 권 내고, 앤솔러지에도 많이 참여했다. 많이 써서 빨리 털어버리는 것, 그게 내 목표였다.“

이 문장을 읽으며 <흉담>이 실제 경험담임을 굳게 믿게 된다.
이제는 흉담을 들은 지도 5년이 지났고 소설로 다 풀어냈으니 건강 챙겨가며 집필하길 바라본다.
그래야 작가님의 공포를 오래 읽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뇌 살인
혼다 데쓰야 지음,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처음부터 소설을 끝까지 읽을 생각은 없었다.
작은아들이 먼저 읽고 잔인한데 제 취향이었다고 해서 어떤 이야기일지 궁금해 몇 페이지 읽어볼까 싶어 시작했는데 그만 끝까지 읽고 말았다.
실제 일본에서 일어난 기타큐슈 일가족 감금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한 소설로 인터넷 서점에서 19세 이상 성인 인증을 해야 검색될 만큼 잔인하고 끔찍한 장면들이 등장한다.

마치다 경찰서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오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온몸에 끔찍한 상처를 달고 있는 17세 소녀 마야를 발견한다.
가정폭력을 의심한 경찰은 마야를 조사하고 마야가 탈출했다는 선코트마치다 맨션 403호를 찾아가게 된다.
그곳에서 폭행 피의자로 아쓰코를 검거하게 되지만 그녀 역시 오랫동안 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조사가 거듭될수록 믿을 수 없는 사실들을 알아낸다.

소설은 아쓰코를 조사하다 밝혀진 요시오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를 찾는 수사 과정과 여자 친구 세이코와 꿈같은 동거를 시작한 신고가 갑자기 찾아와 같이 살게 된 세이코의 아버지를 의심하면서 시작된 추적전을 담고 있다.
맨션에서 벌어진 사건과 신고가 뒤쫓는 세이코 아버지 정체가 궁금해 읽기를 멈출 수가 없어 잠깐 본다는 게 완독을 하고 말았다.

인간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고 얼마나 취약한 존재인지 소설을 읽는 내내 경악하게 된다.
겪어보지 않고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가스라이팅 범죄는 가족이 서로에게 위해를 가하기 시작하다 어느 순간 자신이 살기 위해 죄책감마저도 없어져 버리는 순간을 목도하며 두려움이 느껴진다.
거기다 물리적인 힘이 아닌 심리적 지배를 통한 범죄라 피해자였던 사람이 어느 순간 가해자가 되어 함께 범죄를 저지르는 모습은 더 충격적이다.

가스라이팅으로 벌어진 사건은 국내 뉴스에도 종종 등장하고 사이비 종교의 교주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 또한 비슷한 형태의 가스라이팅이기에 소설을 읽는 내내 누구든지 피해 당사자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소설은 당연히 성인 인증을 해야 할 만큼 잔인하지만, 잔인함 만으로 끝낼 소설은 아닌 듯하다.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고 존중받아야 하는 인간들이고 그 누구도 타인을 조종하거나 짓밟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뒤죽박죽 수상한 자바자바 정글 비룡소의 그림동화 132
윌리엄 스타이그 지음, 김경미 옮김 / 비룡소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윌리엄 스타이그’의 그림책은 작가의 이름을 보지 않고도 누가 그렸는지 알 수 있을 만큼 특색이 있습니다.
그림책 작가가 되기 전 <뉴스위크>에서 ‘카툰의 왕’으로 꼽힐 정도로 인기 있는 카투니스트로 활동한 작가는 <슈렉>의 원작자로 널리 알려진 작가입니다.

개인적으로 작가의 그림책 중 세상의 괴물들을 다 모아놓은 듯한 <#엉망진창섬>을 가장 좋아하는지라 <뒤죽박죽 수상한 자바자바 정글> 속 괴물들도 기대하게 됩니다.
어쩌다 오게 됐는지 알 수 없지만 레너드는 사람들이 한 번도 지나간 적이 없는 자바자바 정글 속으로 들어가고 있어요.

크고 날카로운 칼을 휘두르며 계속 나아가던 레너드는 꽃한테 붙잡혀 있던 나비를 구해주고 무서운 비가 내리는 정글을 서둘러 걸어갑니다.
돌처럼 굳은 괴물의 목구멍을 지나 뱃속을 지나 거대한 구멍을 통해 밖으로 나온 레너드는 해먹을 치고 쓰러지듯 누워요.

레너드는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도 모를 정글 속에서 위험에 처한 나비를 구해주기도 하고 깜깜한 밤을 혼자 보내기도 합니다.
레너드는 어떤 상황에서도 무서워하거나 두려움에 떨지 않으며 용감하게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위험이 닥쳤을 때는 지혜롭게 위기를 타개해 나갑니다.

어른인 저는 결연한 표정의 레너드와 다채로운 색감의 정글 안에서 교훈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한 번도 지나간 적이 없는”, “어쩌다 여기 오게 되었”는 지 모를 자바자바 정글에서 겪는 레너드의 이야기가 문득 우리의 삶과 닿아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저 계속 나아갈 뿐”이라며 무서운 정글 안에서 용감했던 레너드를 보며 불쑥 용기를 내 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의 나쁜 무리
예소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연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가 ‘예소연‘이 24년부터 26년에 걸쳐 다른 지면에 발표했던 7편의 단편소설을 한데 묶은 소설집이다.
위픽 시리즈로 출간돼 읽은 <소란한 속삭임>을 제외하고 모두 처음 읽은 소설이다.

선이는 오랫동안 소식이 끊겼던 어린 시절 친구 기문을 만나지만 함께 하지 못한 시간만큼 둘은 어색하고 거기다 기문은 잊고 살았던 선이 엄마의 치부를 건드린다.
이제 그들은 관계는 <추운 뺨에 더운 손>처럼 잠깐의 온기를 전할 수는 있지만 오랜 시간 함께 온기를 나눌 사이는 아닌 듯하다.

표제작 <너의 나쁜 무리> 속 할머니는 유선에게 자신을 여사라고 부르게 할 만큼 쿨해 보이지만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유선을 끌어들이는 모습은 그래도 어려울 때 찾는 게 가족이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소란한 속삭임>을 연대하지만 다시는 안 보는 사이가 될 수도 있고 밥벌이로 맺어진 관계 때문에 벌어진 <작은 벌>은 이중일의 앞날을 아득하게도 한다.

할머니들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지만 누군가에게 소개될 때는 <아무 사이>도 아닌 희지 씨의 이야기는 돌봄의 주체지만 결코 가족이 될 수 없는 고용인의 숙명이 느껴진다.
그래도 두부 할머니가 핸드폰에 저장한 이름에 다시 기운을 내는 희지 씨를 보며 다음에도 할머니의 두부 요리를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안심이 된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혈연, 또는 업무적으로 이어졌지만, 그들은 언제라도 그 관계를 끊어도 될 만큼 느슨하고 얽매여 있지 않다.
때로는 연대라는 이름으로 함께 하기도 하지만 소속감 따위는 처음부터 없는 관계들이 대부분이라 서로에게 크게 실망하지도 않는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기대하고 있다 미치지 못함에서 오는 것이 대부분이기에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고 그로 인한 괴로움이나 고민도 없을 것이다.
예소연이 그린 인물들은 서로가 위로하다가도 언제든 등 돌려 걸어가도 서운하지 않은 관계들이라 한패가 되어 서로를 구제하다 헤어지기도 하고 또 새로운 누군가를 만날 수도 있기에 끈끈하지 않아도 충분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문자 뱀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파격적인 표지와 제목만 보고서 고른 소설이다.
책을 읽기 전 찬찬히 작가에 대해 살펴보니 예전에 작가의 소설을 딱 한 권 읽은 적이 있다.
열두 살 소년이 우연한 사고로 동네 꼬마를 살해한 이야기인 <#사흘그리고한인생>인데 그때 재미있게 읽고 선물하기도 했지만, 작가의 다른 소설들은 책 두께를 보고 포기한 기억이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60대 여성인 마틸드는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던 젊은 시절부터 잔인하지만 완벽하게 임무를 수행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오랜 시간 마음을 나눴던 앙리의 소개로 청부 살인 업자로 활동하다 의사인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딸을 낳지만,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으로 다시 청부 살인 업자가 돼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소설은 오랜 기간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임무를 수행해 오던 청부 업자가 점점 기억에 착오가 생기면서 발생하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주어진 임무 수행에 문제가 발생하면서 경찰의 탐문은 마틸드에게 다다르고 마틸드에게 문제가 생겼음을 눈치챈 조직에서는 제거 작업에 들어간다.

특별히 눈에 띄지 않은 탓에 경찰의 조사를 받지만, 무사히 빠져나간 마틸드에게 남은 건 본능과도 같은 끝없는 살인 충동뿐이다.
예전 같지 않은 육제적 제한과 점점 잃어가는 기억에도 마틸드는 멈추지 않고 앙리를 찾아가는 모습은 둘의 관계 때문인지 처연하게 느껴진다.

모든 것이 정리됐다고 생각한 순간 찾아오는 반전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오는 슬픔이 얼마나 크면 치매마저도 이겨낼 수 있었을까 싶어 가슴이 뜨거워진다.
유능했던 킬러의 쓸모가 다 해지자 조직에서 무참히 버려지는 모습은 현실 속 현대인들의 모습과 닮아 그녀를 마냥 미워할 수도 없다.

작가가 1985년에 집필했지만 이번에 새롭게 내놓은 덕분에 소설 속 세상은 핸드폰도 없고 DNA 감식도 없고 CCTV도 없다.
소설은 마틸드를 추적하는 경찰을 중심에 두는 대신 마틸드의 살해 현장을 직관하게 하고 잃어가는 기억 속에서 본능만으로 움직이는 늙은 킬러의 모습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래서인지 마지막까지 마틸드의 평안을 빌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