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부인 살인 사건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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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 중 우리나라에 먼저 번역 소개된 작품은 ‘긴다이치 고스케 시리즈’이지만 그 이전에 ’유리 린타로‘시리즈가 있었다.
작년에 출간된 유리 린타로 시리즈 <신주로>를 읽으며 잔혹함은 타고나기보다는 길러지는 게 아닌 가 생각했는데 시리즈의 신간이 출간되었다.

‘나비 부인’으로 예상 밖의 좋은 성적을 거둔 하라 사쿠라 오페라단은 사흘간의 도쿄 공연을 마치고 다음 공연을 위해 오사카로 떠난다.
먼저 오사카에 도착한 매니저 쓰키야 교조는 하라 사쿠라의 도착 시간에 맞춰 마중 나가지 못한다.
기차역에서 사쿠라를 만나지 못한 쓰키야는 호텔로 찾아가지만 간발의 차로 사쿠라가 호텔을 나선 뒤라 공연 당일 리허설 현장에서 사쿠라를 기다린다.

리허설 시간이 다 되도록 사쿠라가 도착하지 않자 단원들은 걱정하기 시작하고 기차에 실은 콘트라베이스가 뒤늦게 도착해 단원들이 안으로 옮기려 한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콘트라베이스 무게에 케이스 뚜껑이 열리고 그 안에 하라 사쿠라 사체가 드러난다.
경찰의 수사가 시작되고 사쿠라의 남편 부탁으로 유리 린타로와 기자인 미쓰기 슌스케가 사건 해결을 위해 오사카에 도착한다.

소설은 ’나비 부인’사건이 해결된 후 미쓰기 슌스케가 나비 부인 살인 사건을 소재로 소설을 쓸 계획을 세운 후 유리 린타로를 찾아가 허락을 구하고 관련 서류 등을 받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두 주인공의 본격적인 활약상이 펼쳐지기 전 매니저인 쓰키야 교조의 일기를 그대로 차용해 그들이 보지못한 사건의 개요를 설명하고 범인이 일부러 흘린 듯한 암호 악보와 모두를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촘촘하게 이어져 단원들은 물론 사쿠라의 남편까지 의심하게 된다.

오사카와 도쿄를 오가며 살해 현장을 찾아나서고 사건을 되집어 가는 과정은 범인과의 치열한 두뇌 싸움에 동참하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한다.
특히 유리 린타로와 미쓰기 슌스케가 깊숙히 관련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단편 <거미와 백합> <장미와 율금향>은 탐미적이면서도 일본 특유의 색채가 짙어 짧지만 작가 특유의 퇴폐미가 느껴져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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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네 각시 도라지 총각 비룡소 전래동화 39
배삼식 지음, 김세현 그림 / 비룡소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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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할머니 살아 계실 때 옛날이야기 해 달라고 조르면 토닥이며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그중에서도 도깨비가 나오는 이야기를 제일 좋아해서 한 개만 듣고 잠들기 너무 아쉬워 또 해 달라고 조르면 할머니는 이야기 좋아하면 가난해진다고 말씀하시면서도 제가 잠들 때까지 이야기해 주셨지요.

<지네 각시 도라지 총각>은 그 시절 할머니가 들려주신 이야기처럼 자꾸자꾸 듣고 싶은 옛이야기입니다.
옛날에 몸뚱어리 머리 팔다리 다 말짱한 총각이 살았는데 단 하나 눈 하나가 ‘도라지꽃처럼, 청옥처럼, 가을 하늘처럼’ 새파아란 눈동자였습니다.

사람들은 새파아란 총각의 눈동자를 보며 무서워하고 재수 없어 하고 징그러워했습니다.
왼뺨에 쥐가 나도록 왼눈을 질끈 감고 다녔지만, 사람들은 총각을 피했고 이래서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한 총각은 깊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약초를 캐 본 적 없던 총각은 약초 구경도 못하고 도라지라도 캘 양으로 땅을 파다 지네에게 손가락을
물렸지만, 지네를 놓아주었습니다.

“너나 나나 같은 신세구나.
나는 징그러운 총각.
너는 징그러운 지네.
너는 다리가 빨개 땅 밑에 숨었고
나는 눈알이 파래 산속에 숨었구나.“

뒤에서 발소리가 나 돌아보니 각시 하나가 서 있었습니다.
총각은 새파아란 눈동자를 숨기려 하지만 각시는 그 눈을 어여삐 보며 자신의 빨간 손을 쓱 내밀어 보입니다.
총각은 놀라기는 했지만,빨간 손을 예쁘게 봐 줍니다.

이야기는 옛날이야기의 초식을 그대로 따르지 않습니다.
같이 살게 된 각시와 총각은 남녀가 해야 할 일을 구분하지 않고 가장 잘하는 일을 합니다.
밥을 잘 짓는 총각은 밥을 짓고 산속이라면 손바닥처럼 환하고 약초라면 모르는 게 없는 각시는 산에 가서 약초를 캡니다.

두 사람에게 고난이 찾아오지만, 타인의 말에 휘둘려 사랑하는 사람을 배신하지도 않습니다.
거기다 다른 이의 아픔에 공감하는 총각 덕분에 긴 세월 대대로 이어져 온 원수를 갚겠다는 마음을 사라지게도 합니다.

소리 내 읽을 때 느껴지는 음률 감 있는 글과 단순한 형태의 표현과 흑과 백의 대비된 그림은 한국적 미가 느껴집니다.
특히 뚜렷하게 구분된 글과 그림을 온전히 감상할수 있도록 위로 여는 독특한 방식의 제본 형식이 돋보이는 그림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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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트레인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7
문지혁 지음 / 현대문학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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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책을 고를 때 인터넷 서점의 미리보기 등을 꼼꼼히 읽고 고르기도 하지만 작가나 출판사를 믿고 그냥 집어 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문지혁’이라는 작가와 현대문학의 핀 시리즈라니 더더욱 따질 것 없이 골랐다.

종이책만 읽는지라 고를 때 책의 물성도 중요한 데 받아본 책은 탄복할 만큼 아름다웠다.
거기다 이동 중 차 안에서 시작한 소설은 기차는 아니었지만 가끔 고개를 들어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함께 어딘가로 떠나는 느낌이 들었다.

아버지가 이사를 한다면서 본가에 있던 ‘나’의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보내온다.
그중 회색 종이봉투 속 사진을 보며 25년 전 호탤팩으로 떠났던 21일 동안의 유럽 여행을 떠올리게 된다.

고등학교 시절 좋아했던 O가 새 남자 친구를 사귀지만, 유럽 여행 후 ‘나’에게 은반지를 선물한다.
그녀를 잊지 못해 은반지를 소중하게 간직하던 ‘나’는 어느 날 극장에 갔다 새 남자 친구와 팔짱을 끼고 나타난 O를 보게 되고 O가 반지를 산 빈에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소설 대부분은 25년 전 유럽 여행의 여정을 따라가는 방식이다.
그렇다고 유럽 여행지를 스케치하며 설명하기보다는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 중심으로 소설은 진행된다.

’나’의 유럽 여행기는 기대만큼 들뜨지 않고 유럽의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흘러간다는 느낌이 들 만큼 평범하다.
물론 ‘나‘는 여행지에서 아프기도 하고 야간열차 안에서 도둑으로 몰리기도 하지만 딱 그만큼이다.

곁에 건사할 가족이 없고 젊었기에 가능했던 여행이기에 지나온 젊은 시절이 그리워진다.
O와의 진짜 이별을 위한 애도 여행은 계획했던 빈의 대관람차 탑승까지는 가능했지만, 그 이후의 일은 계획과 전혀 다르게 흘러간다.

“이것은 여행에 관한 기록이다.
하지만 인생에 여행 아닌 것이 존재할 수 있나?”

인생 역시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처럼 아무리 꼼꼼하게 짠 여행 계획도 현지에서는 어긋나기 일 수다.
젊은 ‘나‘의 여행기가 끝난 곳에서 쓰레기를 정리하는 남자의 모습은 현실에 안착한 듯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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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치 앞의 어둠
사와무라 이치 지음, 김진아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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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풍광과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단어인 ‘명소’가 소설집의 첫 번째 이야기다.
“쾅, 콰직!”이라는 첫 문장의 공포는 자살 명소를 안내하는 다정한 목소리에 어느 순간 사악함을 담기면서 진짜 두려움이 시작된다.

’선생님, 있잖아요’라며 수줍게 건넨 편지는 어느 순간 범죄 기록이 되고, ‘심야 장거리 버스’ 안의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은 꿈인가 싶기도 하지만 무섭다.
’검푸른 죽음의 가면’은 사후 세계와 천벌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상가에 다녀온 뒤 겪은 ‘밤샘 조문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은 어디선가 들었던 이야기처럼 느껴져 더 섬뜩하다.

그저 소심한 성격 탓에 바로 말을 못 하는 ‘꾸물거림‘이 지나쳐 답답해 보이기까지 하는 동료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겪는 에피소드쯤으로 진행되던 이야기는 생각지 못한 끝에 다다른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꾸물거리는 게 큰 잘못이나 병이 아니라는 생각에 답답하고 우습게 보이던 등장인물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알게 되는 순간 느껴지는 두려움은 주위를 둘러볼 만큼 공포스럽다.

아무 사전 지식 없이 특이한 제목에 끌려 <보기왕이 온다>를 읽은 지 몇 년이 지났지만, 그때의 공포와 충격은 새록새록 한다.
그런 작가의 초단편 괴담집 출간 소식을 듣고 찾은 소설집은 짧게는 2~3페이지, 길게는 20여 페이지의 짧은 이야기로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스물 한가지의 공포를 담고 있다.

어디선가 들었던 이야기 같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도시 괴담 같은 소설은 짧아서 그 공포가 더 임팩트 있게 다가온다.
소설집은 앞에서부터 순서대로 차례차례 읽으며 일상의 공포를 느껴보는 것도 좋고 잠깐의 시간을 내 두서없이 읽어도 좋다.
소설이 머리카락을 쭈뼛하게 할 만큼 두려워 지금 살고 있는 일상이 평화롭고 안정적으로 느껴져 마치 얼얼한 매운맛의 고통을 즐긴 후 느끼는 개운함처럼 쌓인 스트레스가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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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요 노는날 그림책 32
마리 도를레앙 지음, 박재연 옮김 / 노는날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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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노는날 출판사 서평이벤트에 당첨돼 제공받았습니다.>

토미는 예상할 수 없는 일들을 두려워하고 항상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지요.
어느 날 밤, 천둥소리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깬 토미는 옷장 속에 얼른 숨었고 크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담요를 껴안고 밤을 보냈어요.

“이 담요가 어젯밤 거인으로부터 지켜 주었어.
어쩌면 세상 모든 것들로부터 영원히 나를 지켜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날부터 안전한 담요 속에 있기로 마음먹은 토미는 담요와 함께 학교에 가게 되고 더 이상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이나 차들이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한 번도 나가 본 적 없는 운동장에 나가 놀이를 하며 자신만의 담요 요새에서 더 강해집니다.

어른도 살면서 불안과 두려움을 매 순간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아직 어린 토미는 쉽게 넘길 수 있는 자연현상은 물론 일상생활에서 들리는 소리, 작은 동물들에게조차 두려움을 느낍니다.

우연한 기회에 담요에 의지하게 되면서 전혀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됩니다.
부피가 커 불편할 법한 붉은 털실로 짠 담요는 마치 우리 아이들의 애착물처럼 토미의 불안을 낮춰줍니다.
과연 토미는 애착 담요와 언제까지 함께 할지 언제쯤 자연스럽게 이별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어느 정도 아이가 자라면 자연스럽게 애착물을 찾지 않게 되기도 하지만 어른이 되고도 어린 시절의 애착물과 작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만큼 아이에게는 소중한 존재이기에 억지로 떼어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토미는 고운 솜털을 가진 작은 새를 도와야겠다는 용기를 스스로 내면서 자유를 얻고 두려움과 불안을 떨쳐 냅니다.
불안과 두려움이 사라지자, 세상의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인생은 아름다워, 인생은 아름다워, 인생은 아름다워.“

토미의 용기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게 하고 기쁨을 솟아나게 합니다.
표지를 가득 채운 빨간 담요의 온기가 전해지는 듯한 그림책은 세상이 두려운 어린이는 물론 용기가 필요한 어른에게도 따스함을 선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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