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살 터울의 쌍둥이 같은 엄마와 이모는 같은 해, 같은 날, 각각 ’나‘와 ’연수’를 낳았다.연수와 나는 태어난 날부터 외가 주변 친척들 사이에서 화제와 관심의 대상이었고 어른들은 둘을 비교하고 평가했다.임용고시에 낙방해 학원 강사를 하는 나와는 다르게 좋은 성적이었지만 이모의 바람대로 약대에 간 연수는 이모가 정해준 남자와 약혼 후 미국으로 떠난다.탄탄할 것 같던 연수의 인생은 약혼자의 폭력을 피해 귀국하면서 이모의 계획과는 다르게 어긋나기 시작한다.어느 날 연수가 사라졌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나’는 연수와 마지막으로 함께 간 한탄강의 물윗길에서의 일을 떠올리게 된다.짧은 소설은 이모의 소망과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 착한 딸이 되어야 했던 연수의 이야기가 주가 돼 진행된다.부모라는 이름으로 자식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지 못하고 소유물로 생각한 이모의 행동을 자신 있게 손가락질할 부모가 과연 몇이나 될까?무심히 쌓고 지나쳤던 돌탑에 서린 소원의 무게를 알아챈 연수가 가엾고 오랜 시간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에 나오는 ’도자기 앵무새‘를 ‘중국 앵무새’로 오해해 의지하고 사랑했던 연수의 삶이 팍팍하게 느껴진다.실체 없는 중국 앵무새를 놓아주고 깨진 도자기 앵무새가 되기를 선택한 연수가 한없이 안타깝다.
두 아들을 키워낸 엄마지만 저는 음식 솜씨가 형편없는 편입니다.그래서인지 우리 아들들은 군대에 가서도 엄마가 해 주는 음식이 먹고 싶다는 소리나 휴가 때 뭘 해달라는 말없이 엄마가 주는 대로 먹고 부대로 복귀하곤 했습니다.<엄마소리>를 읽으며 문득 내가 떠난 세상에서 아들들이 엄마의 음식을 기억하며 그리워할 일은 없겠다 싶어 괜히 마음이 아팠습니다.그림책은 엄마가 요리하는 소리를 “나를 사랑하는 소리”라고 이야기합니다.엄마는 계절에 따라 음식을 장만하고 나를 살펴 그때그때 알맞은 음식을 만들어 냅니다.“콩콩콩콩콩콩톡톡톡톡톡톡착착착착착착똑똑똑똑똑똑 폭폭폭폭폭폭……”무수히 많은 소리를 만들어 낸 엄마의 음식을 먹고 내가 자라는 사이 엄마의 고운 손은 점점 굵어지고 주름이 가득해져 갑니다.지금처럼 식재료를 구하기 쉽지 않았던 어린 시절 김밥은 소풍 때나 먹던 거고 잡채는 명절이나 잔칫날에는 먹던 음식이었습니다.우리 엄마의 소리는 가을이 다가오면 텃밭에서 매끈하고 예쁜 무를 뽑아 고른 모양으로 채를 치는 소리입니다.특별한 양념이 없이도 조물조물 무쳐낸 무생채만 있으면 특별한 반찬이 없어도 밥 한 그릇 뚝딱 먹었습니다.이제는 다시는 들을 수 없는 우리 <엄마소리>가 무척 그리워집니다.글보다 그림이 중심이 된 그림책을 보며 그 안에서 많은 이야기와 소리를 찾아냅니다.나를 사랑하고 나를 먹이고 살린 소리를 내던 엄마의 손은 점점 변하고 어느새 엄마가 된 나는 내 아이들을 사랑하고 먹이고 살리는 소리를 내며 부엌을 지키는 모습은 어떤 글보다도 마음을 찡하게 울립니다.한 번도 제대로 엄마에게 ”내가 사랑을 하는 소리“를 들려드리지 못한 게 못내 서러운 날입니다.
아이마다 빠르고 느린 정도는 있지만 요즘은 보통 초등학교 입학 전에 한글을 깨칩니다.한글을 가르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저희 아이들의 경우 그림책이 큰 도움이 됐던 것 같습니다.이상교 작가님이 글을 쓰고 밤코 작가님이 그림을 그린 <가나다 글자놀이>는 이제 막 글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어린이에게 권해주고 싶은 그림책입니다.단순한 단어의 나열이 아닌 한글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글에서 오랜 기간 아이들을 위한 글을 쓰신 이상교 작가님의 내공이 느껴집니다.“가랑가랑 가랑비가 가만가만 내려요.나비 나비 노랑나비가 나풀나풀 나들이 가요.다닥다닥 다슬기다닥다닥 대추“흉내 내는 말이 많아 어른이 읽어주기에도 좋고 글을 읽기 시작하는 아이 혼자 읽기에도 신명 납니다.특히 글과 어울리는 밤코 작가의 그림은 재미있고 발랄해 그림만 보는 것도 재미납니다.여러 번 읽다 보니 사계절의 변화가 눈에 들어옵니다.봄을 알리는 가랑비에서 시작한 그림책은 하늘하늘 하얀 눈이 내리는 겨울로 마무리되네요.이 그림책으로 한글을 단번에 깨칠 수 있다는 장담을 할 수는 없지만 읽다 보면 한글과 친해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부록으로 함께 있는 ‘가나다 글자 놀이’ 낱말 카드는 글자 놀이를 즐기기에도 좋습니다.
버릴 게 하나 없는 작물인 콩은 가을이 되면 수확하는 시기가 옵니다.잘 말린 콩을 타작해 콩은 콩대로 콩깍지는 깍지대로 모아놓고 콩대도 버리지 않고 잘 정리해 둡니다.콩은 종류에 따라 밥에 넣어먹기도 하고 콩고물을 만들기도 하고 두부는 물론 된장, 간장 등을 만듭니다.콩깍지는 소죽을 끓일 때 짚과 함께 넣어 구수한 특식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콩대는 불이 잘 붙어 불쏘시개로 안성맞춤입니다.이렇게 귀한 작물인 콩 중에서 특히 노란 메주콩은 한국 음식에서 꼭 필요한 조미료이자 양념인 장을 만드는 꼭 필요한 재료입니다.<장 도감>은 제목 그대로 우리 음식에 가장 중요한 양념인 장을 만드는 원리와 방법을 소개해 주는 그림책입니다.1,2 부로 나눠 1부에서는 간장, 된장, 고추장, 청국장, 막장을 만드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지역마다 집집마다 다 다른 장 담그는 방법을 누구나 시도해 볼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조리법으로 소개하고 있어요.2부에서는 다양한 쌈장과 장으로 맛을 낸 맛있는 음식 아홉 가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겨울이 되면 할머니와 엄마는 메주콩의 쭉정이는 골라내고 실한 알곡만 커다란 가마솥에 삶으셨는데 삶아진 콩을 얻어먹는 재미가 쏠쏠했지요.아버지가 잘 삶아진 콩을 절구에 찧어주시면 할머니와 엄마는 네모 반듯한 메주를 만들어 따듯한 방에 한참을 두셨는데 그 냄새가 쿰쿰하니 고약했던 기억이 납니다.세계는 “K”가 붙은 영화, 드라마, 노래는 물론 음식에도 환호하고 있지만 우리 밥상에 알게 모르게 매일 오르는 장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었습니다.장 담그기가 2018년에 국가무형문화재 제137호로 지정됐고 2024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됐다는 사실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저녁 준비하던 엄마가 간장이나 된장 심부름을 시키면 커다란 항아리에 출렁이던 까만 간장 떠오고 겉을 걷어내고 노랗게 익은 된장을 퍼오던 게 엊그제 같습니다.지금은 고향 집에서도 더 이상 장을 담그지 않지만 집 뒤란의 장독대는 여전히 집을 지키고 있습니다.텅 빈 항아리를 볼 때면 젊고 건강하던 엄마가 사무치게 그리워집니다.<장 도감>은 어른에게는 요리책이기도 하고 추억을 불러오는 책이기도 합니다.어린이에게는 읽기에 부담 없는 그림책으로 보는 재미는 물론 장 담그기 전통을 알려주기에 적격입니다.책에 소개된 장 만들기는 옛날 어른들의 주먹 구구식 계량이 아니라 들어가는 재료들의 정확한 양을 소개하고 있어 실패의 부담을 덜어줍니다.아예 모르고 못 만들어 먹는 것과 알지만 편해서 사 먹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일 겁니다.요즘은 ‘장 만드는 키트’를 판매하기도 하고 된장과 간장보다 손이 덜 가는 고추장과 막장은 한 번 시도해 볼만합니다.<본 도서는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에서 진행한 이벤트에 당첨돼 현암주니어에서 제공받았습니다.>
<문학동네 해문클럽 활동 중 제공받은 도서입니다.>“라오스계 캐나다 시인이자 소설가. 1978년 태국 농카이에 있는 라오스 난민촌에서 태어났다. 한 살에 부모가 정부의 도움으로 캐나다로 이주해 온타리오주 토론토에서 자랐다.”‘수탐캄 탐마봉사’라는 작가의 소개 글 중 일부이다.2020년 캐나다 최고 영예의 문학상인 ’스코샤뱅크 길러상’을 수상한 작가의 첫 소설집인 <나이프를 발음하는 법>은 200페이지가 조금 넘은 분량의 책으로 모두 14편의 단편이 수록돼 있다.각 단편 소설은 대부분 초단편이라 할 만큼의 짧은 이야기지만 이민자, 아동, 여성, 노인 등의 사회 소수자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첫 번째로 수록된 표제작 <나이프를 발음하는 법>에 등장하는 이민자들의 어려움을 언어 소통을 통해 전하고 있다.학교에서 가져온 쪽지를 읽을 수 없고 ”knife”의 발음을 제대로 알려줄 수 없었던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는 아이의 모습이 마음 아프다.<파리>에 등장하는 이민자 여성들은 코 성형수술로 자신의 인생이 변화할 것이라 생각하기도 한다.<스쿨버스 기사> 속 남자는 아내의 부정을 짐작하면서도 아내의 말을 믿는 척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에 절망한다.딸을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엄마의 모습이 그려진 <당신은 너무 창피해> 속 딸도 그런 딸을 그리워하는 엄마도 이해가 돼 마음이 아프다.문학동네 해외 전담 마케터가 큐레이션 한 소설은 마케터의 추천 평만으로도 소설의 매력을 짐작할 수 있다.“14편의 소설이 한 편도 빠짐없이 고른 작품성을 자랑합니다.후루룩 읽히면서도 ‘소수의 다층성‘에 대한 메시지를 단단하게 전달해요!” 고국을 떠나 본 적 없는 독자인 나는 난민으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 정작한 이민자들의 고충을 다 알 수는 없다.하지만 ‘knife”에서 묵음으로 처리되는 ‘k’처럼 존재하지만 결코 불리지 않은 그들의 심정은 동감하며 읽게 된다.소설을 읽는 내내 얼마 전 읽은 노 작가의 시가 떠올랐다.”디아스포라는 밖으로 나가 있는 이름만이 아니다지금은 우리 곁에도 친숙하게 때로는 조금은 낯설게 다가오는 이름들베트남과 우즈베크의 여인들필리핀과 네팔에서 온 손님들주인과 나그네가 뒤바뀌어 살아가는디아스포라더 이상 팔레스타인 바깥에서 유랑하는유대인만도 아니고 만주 벌판 헤매는 헐벗은 우리 조상의 역사만도 아니다옛 고향집의 객사에 드리운 남모르는 그림자의 창백한 이마아, 모두가 한 모습의 디아스포라인 것을“ ’문학과사상사‘ 강원도의 눈 김주연 시집 중 <디아스포라>일부 우리의 선조들도 잃어버린 조국을 찾기 위해 세상을 헤맸고 현재도 타국에 사는 이들이 많지만 우리 안에 들어온 이방인들에게 우리는 어떤 눈빛을 보내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소설 속 주인공들의 삶에 마음 아파하지만 내 주위의 낯선 이들의 진짜 모습은 살피지 않는 이중성은 갖고 있지 않나 생각해 보게 되는 이야기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