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 속의 바다 - 2004년 뉴베리 아너 상 수상작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12
케빈 헹크스 지음, 임문성 옮김 / 보물창고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의 열두 살 여름방학을 기억하려 애썼다.

80년대 초반의 시골 여자애가 꿈꾸었던 방학은 서울 나들이 아님 황순원의 소나기에 등장하는 소년과 소녀의 사랑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여름방학이면 ‘여름 손님은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는 옛 말씀을 철저히 따르셨던 엄마 덕분에 서울은 꿈도 못 꿨고, 마을이 집성촌이니 친척집에 놀러온 얼굴 하얀 서울 애는 나에게도 친척이었으니 소나기에 등장하는 첫사랑은 그저 소설 속 이야기일 뿐이었다.


열두 살 마사의 여름방학은 예정된 여행과 친구의 죽음 뒤 뜻밖에 받게 되는 쪽지 한 장, 그리고 첫사랑이라고 믿었던 아이에 대한 배심감등의 이야기가 낯선 풍경과 함께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 꿈꾸었을 여름방학을 독자들에게 선사해 주었다.

어느 날, 마사는 기억나는 거라곤 ‘조용하고 눈에 잘 띄지 않았으며 좀처럼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던 외톨이 소녀, 학교 복도에서도 사물함 쪽으로 바짝 붙어서 조용하게 걸어 다니던 아이’인 올리브 바스토우의 죽음 뒤 그 아이의 일기장 안에 있던 쪽지를 아이의 엄마를 통해 전해 받게 된다.

쪽지는 대서양이나 태평양 같은 넓은 바다를 가고 싶고, 마사와 마찬가지로 작가 되고 싶은 올리브의 꿈과 여름방학엔 마사와 친구가 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여행에 들뜬 기분은 올리브의 쪽지로 인해 묘한 감정으로 변하게 되지만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대서양에 있는 갓비 할머니 댁으로 가족 여행을 가게 된다.

그곳에서 지미에게 느꼈던 사랑과 그 사랑이 거짓이었음을 알았을 때 느끼는 배신감에 절망하기도 하지만 또 다른 친구 테이트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기기도 한다.

죽음을 관조한 듯 한 갓비 할머니와의 서두르지 않고 기다려주는 대화는 마사를 스스로 생각하게하고 훌쩍 자라게 한다. 

마사는 올리브의 엄마를 위해 담아온 병 속의 올리브의 바다를 비우며 사춘기 소녀의 불안과 자기 안에 있던 가족의 미움까지도 비우게 된다.


마사의 여름방학 이야기는 어린 시절 내가 꿈꾸었던 방학과 앞으로 우리 아이가 맞게 될 사춘기의 방학을 동시에 맛본 듯하다.

마사의 이야기를 읽으며 앞으로 사춘기를 맞게 될 우리 아이들에게 과연 내가 갓비 할머니 같은 길라잡이가 되어줄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앞선다.

아직 어리게만 보이는 3학년 아들도 가끔 엄마에게 대들기도 하고 엄마는 알 것 없다는 투의 말을 종종 하기도 한다.

지금이야 혼내는 걸로 간단하게 아들을 제압하지만 더 나이가 들어 사춘기를 겪게 될 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 온다.

항상 빠르게 생각하고 빠르게 대답하는 게 옳은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내게 갓비 할머니의 천천히 들어주는 기다림에 지혜는 새로운 정답을 제시해 준다.


마사가 할머니에게 가족이 다 싫다고 말한 것은 몸은 훌쩍 자랐지만 아직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싶은 마음에서 오는 괴리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사는 올리브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첫사랑에 배신을 이겨내고, 갓비 할머니의 도움으로 몸만큼 마음도 자랄 수 있었다.

인생을 살다보면 죽음의 그림자와 가족간의 갈등, 방향을 잘 못 잡은 사랑 등 수많은 난관이 기다릴 것이다.

마사가 여름방학동안 훌쩍 자란 것처럼 부디 우리 아이들도 몸과 마음을 함께 키워가며 앞으로 닥칠 사춘기라는 폭풍을 무사히 지나가길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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