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없는 그림책 동화 보물창고 14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 원유미 그림, 이옥용 옮김 / 보물창고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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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의 동화 한두 편 읽지 않고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어린 시절 언제, 어떤 경로였는지 기억할 수는 없지만 인어공주, 성냥팔이 소녀, 미운 오리 새끼, 외다리 병정 이야기 등을 읽었고,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 아이들 역시 그의 동화를 즐겨 읽고 있다.

하기야 작년이 안데르센 탄생 200주년이었으니 그가 쓴 동화의 생명이 언제까지 인지 아무도 예측할 수는 없을 것이다.


흔히 읽을 수 있었던 그의 다른 동화와는 달리 길어야 서너 페이지를 넘기지 않는 짧은 이야기 모음인 <그림 없는 그림책>은 이야기 하나, 하나가 깊은 생각거리와 마음의 울림을 선사해 주었다.

낯선 도시로 이사와 외롭고 쓸쓸한 날들을 보내고 있는 화가의 창가에 고향에서 늘 보던 낯익은 얼굴인 달이 찾아와 매일 저녁, 달이 본 세상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이야기는 시작된다.


달의 이야기 속에는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그중 가장 사랑스러운 주인공들은 역시 어린아이들이다.

암탉을 괴롭힌 걸 사과하고 싶어 하는 소녀와 태어날 동생을 기다리는 사랑스러운 오누이와 새 옷을 입고 세상에 어느 누구보다 기뻐하는 네 살배기 여자아이이야기는 사랑스럽기만 하다.

개구쟁이 오빠들 때문에 키다리 나무에 걸린 인형을 보며 다리에 빨간색 헝겊을 묶은 오리를 보고 웃었던 걸 죄라고 생각하는 아이가 인형에게 물었던 “너도 동물들 보고 웃었니?”라는 말은 부지불식간에 수많은 죄를 저지르는 어른중 하나인 나를 뜨끔하게 하기도 했다. 


처음으로 굴뚝 꼭대기까지 올라온 굴뚝 청소하는 어린 남자 아이 이야기는 힘겹기만 한 생활 속 작은 것에도 행복을 찾는 아이의 능력에 고개가 숙여졌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사랑스러운 아이는 잠자리에 들어 주기도문을 외우는 여자 아이의 이야기였다.

“빵 위에 버터도 듬뿍 발라 주세요.”라는 말은 저절로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해 주었다.


하지만 우리 인생사가 이렇게 어린아이들처럼 꾸밈없고 긍정적이고 행복하지만은 않은 것이기에 추운 그린란드의 어느 텐트 안에서 병들어 죽음을 맞는 이의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피해갈 수 없는 이야기기에 여러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도 했다.

사랑하는 여인을 잃은 슬픔 속에서도 무대에 서야하는 어릿광대의 이야기는 가슴이 찡해 오기만 한다.

‘동화의 아버지 안데르센’의 동화들은 마음 한구석 아련한 연민이나 슬픔, 기쁨, 쓸쓸함을 오랫동안 남겨 둔다.

하지만 그의 동화를 수없이 읽었지만 안데르센의 일생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해설-‘안데르센의 동화 세계’를 읽으며 그의 불우한 일생과 달이 화가에게 들려주었던 이야기들은 42년 동안의 해외여행을 통해 안데르센이 보고 들었던 이야기를 달의 입을 빌어 들려주었음을 알 수 있었다.


“위대한 천재적인 화가나 시인, 작곡가는 마음만 먹으면 달이 해 준 얘기를 듣고 훨씬 더 많은 걸 창조해 낼 수 있다.”는 화가의 말은 창 너머로 떠있던 달을 무심히만 보아오던 내게 잔뜩 힘이 들어갔던 일상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으라는 충고쯤으로 들렸다.

원래 서른세 편의 이야기 중 어린이들이 읽기에 좋을 만한 작품 열일곱 편만을 골라 엮은 책은 어린이뿐만 아니라 세파에 시달리는 어른에게도 한 박자 쉬어가는 서두르지 않는 평온한 일상을 선사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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