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나코와 걷는 길 보림어린이문고
오카다 나오코 지음, 고향옥 옮김, 노석미 그림 / 보림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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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나코와 친구들 이야기를 읽으며 이십년 가까이 된 기억 하나가 명치를 무겁게 눌렀다.

읍에 하나뿐이던 여고에 다녔는데 목발을 집고 다니는 친구가 있었다.

그때는 몸이 불편하면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집에 있는 게 대부분이었는데 다른 군에서 장학생으로 왔던 그 애는 그 당시 가장 가까이에서 본 장애인이었다.

키가 작고, 얼굴이 하얗고 목발이 아니면 움직일 수 없었던 그 아이는 2층에 있던 교실을 가려면 계단을 거의 기다시피하며 올라갔고 화장실이라도 갔다 오면 여지없이 수업시간에 늦곤 했다.

솔직히 말해 그때 그 애를 돕고 싶어도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몰랐고, 막상 그 아이와 눈이라도 맞추면 고개를 돌리기에 바빴다.

교실이 2층에 있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고, 그 애가 차가운 시멘트 계단을 추운 겨울에 기어오르는 것도 당연하게 보였다.

그저 나와 다른 그 애가 불쌍하기는 했지만 왠지 피하고 싶었던 존재였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조금만 용기를 내어 그 아이와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했더라면 히나코를 보며 웃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작은 몸집에 초승달처럼 살짝 처진 눈, 분홍빛 볼, 그리고........걸을 때 몸이 왼쪽 오른쪽으로 기우뚱 갸우뚱 흔들리는 히나코가 전학을 온다.

모둠의 인원수가 작아 히나코는 사치코, 코바, 겐 , 야코가 속한 3모둠의 일원이 된다.

4명의 친구가 히나코를 대하는 일상을 통해 장애인을 도우는 데 있어 얼마나 주관적인 관점으로 대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준다.

사치코는 선생님이 히나코를 자신의 모둠에 자리를 배정해 둘 때부터 영 내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도와준다.

겐과 야코는 그저 배운 대로 끊임없이 배려하다가도 순간순간 짐스러워 하기도 한다.

하지만 코바는 히나코를 특별한 친구가 아닌 똑 같은 친구로 대해 준다.

비치볼 배구 시합에서도 응원이 아닌 당당히 선수로 뛸 수 있게 해주고 모둠 친구들이 모두 버섯을 따러 간   생쥐산에도 데려간다.

우리가 배운 대로라면 히나코는 인형처럼 앉아 있게 해야 하는데 코바의 행동은 무례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진정으로 히나코를 편하게 해주었던 건 친절하기만 한 아이들이 아니라 코바였다.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히나코를 못살게 굴까 봐 꾸벅꾸벅 고개를 숙이는 엄마를 보며 같은 엄마로서 가슴이 찡해 왔다.


오늘은 장애인의 날이다.

일 년에 한번 4월 20일이 되면 방송에서도 장애우의 이야기를 다루고 신문도 특별한 내용을 쏟아내고 있다.

오늘 인터넷에서도 유명 연예인이 장애학교를 찾아간 내용의 기사를 읽을 수 있었다.

연예인의 들러리가 돼버린 친구들의 모습과 그래도 연예인들을 만나게 되어 기뻤다는 인터뷰를 보며 어찌나 입맛이 씁쓸하게 하던지.........

사실 아직까지 나도 장애인들을 보면 다른 눈으로 다시 한 번 돌아보는 사람이다.

“코바가 우쭐대기도 잘하고, 덤벙대고, 이상한 생각도 많이 하고, 못살게 굴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나를 따돌리지는 않아.........”라고 말하는 히나코의 이야기를 듣고 억지로 친절하게 대하는 것보다는 솔직하게 대하는 게 진짜로 친해지는 길이라는 진리를 터득한 아이들이 사랑스러웠다.

장애우 친구가 아니더라도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거짓으로 꾸민 친절이 아니라 솔직하게 대하는 것이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장애우를 특별하게 보는 눈을 가진 우리들은 그 간단한 진리를 망각하고 자꾸만 진실이 아닌 꾸며진 부자연스러운 행동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건 다른 눈이 아닌 같은 눈으로 보는 것인데 말이다.

오늘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방송에서도 신문에서도 장애인의 이야기는 사라질 것이다.

장애는 다름이나 특별함이 아닌 단지 불편함일 뿐이라는 말을 하면서도 다르고 특별하다는 생각을 먼저 하기에 특별한 날을 정해 특별하게 보내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코바가 앞장서서 걸었다. 다른 사람이야 따라오든 말든 혼자서 저벅저벅 나아간다.

나와 야코는 앞으로 나갔다 뒤로 물러났다 옆으로 갔다 하면서 걷는다.

겐은 늘 히나코 옆이다.

히나코는 맨 뒤다. 하지만 코바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떨어져 걷지는 않는다.

어느새, 히나코가 걷는 속도가 우리 모둠이 걷는 속도가 되었다.

3모둠의 친구들이 걷는 모습을 보며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모습에 미소가 지어진다.

너무 과한 교훈을 강요하지 않는 책에서 진정 우리가 배워야 할 건 장애인뿐 만이 아니라 누군가와 진정으로 친해지려면  특별한 친절이 아닌 마음을 열어 두는 것이 먼저라는 진리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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