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자 들어간 벌레들아 - 생태 동시 그림책, 동물편 푸른책들 동시그림책 1
박혜선 외 지음, 김재홍 그림, 신형건 엮음 / 푸른책들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생태 동시 그림책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책은 나를 내 살던 고향으로 달려가게 한다.

부담스럽게 큰 소똥 무더기에 ‘풋’하고 웃음이 나오기도 했지만 책장을 넘기면 한가롭고 여유로운 고향의 사계절을 느낄 수 있어 더없이 편안해졌다.

나는 시를 읽었을 때 그 시에 동화되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떡일 수 있는 시야 말로 진짜 시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아름다운 언어로 시를 썼을지라도  그 시를 읽는 독자가 동의 할 수 없는 시라면 그 시는 그저 미사의 어구의 나열에 불과할 것이다.


아이들을 책을 나름 구색 맞추어 마련하다보니 우리 집 책꽂이에도 몇 권의 시집이 있다.

아쉽게도 대부분 책꽂이 신세를 지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우리 집에서 동시가 찬밥 신세를 못 면하는 이유는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동시집은 많게는 40편이 넘는 동시들이 수록되다보니 읽기 전부터 아이들에게는 부담을 준다.

아무리 어린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단어를 사용해서 아이들의 감정을 담아낸다고 해도 그건 단지 어른이 어린이의 마음을 미루어 짐작하는 것이지 어린이 마음 그대로는 아닐 것이기에 왠지 어색함을 아이들 스스로 느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동시를 잘 안 읽게 되고 그것이 반복되다보니 동시는 재미없다라는 등식이 성립돼 버렸다.

이런 아이들에게 좀 더 쉽고 재미있는 동시집을 찾다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똥’자 들어간 벌레들아>를 알게 되었다.


열세명의 시인이 지렁이나 자벌레, 풀무치, 제비 등의 아이들에게 친숙한 동물들이 주인공인 시 열여섯 편이 들어 있는 책이다.

거기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익숙한 그림책인 ‘동강의 아이들’의 김재홍님의 편안한 그림이 시와 만나 빛을 발하고 있다.

동시를 읽으며 그림을 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림에 넋을 잃곤 한다.


<종다리>가 노골노골 지리지리........지리지리 노골노골.........우는 아지랑이 아롱거리는 봄날에 연둣빛 물이 오른 나무와 보리밭, 노란 장다리꽃이 활짝 핀 봄날의 들판을 보며 나도 모르게 나른해지고 어느 새 어린 시절 고향에 들판에 서 있는 어린 아이가 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버들붕어 사는 앞냇물을 건너 여름이면 반짝이는 잎 새에 매미를 숨기고 있는 <미루나무>도 반갑고 풀색 몸을 풀잎에 맡기고 사는 <풀무치>도 정답다.

고향집 빨랫줄에 앉아 있던 <제비 새끼>도 호박꽃에 잡아두면 멋진 초롱이 되었던 <반딧불>도 그리운 이름이다.

귀뚜라미가 귀뚤귀뚤 우는 가을밤을 새고 나면 온 산을 바삐 움직이던 다람쥐도 만날 수 있다.

무성하던 잎을 떨친 겨울 미루나무는 까치집을 따뜻한 가슴 삼아 겨울을 나고 있다.


한 장 한 장의 그림 속에 고향이 들어 있어 찬찬히 책장을 넘기게 된다.

내가 정신없이 고향으로 달려가고 있을 때면 아이들은 사진이나 그림으로만 보아오던 동물들에 푹 빠져있다.

종다리도 자벌레도 반딧불이도 두더지도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은 나에 꿈을 흔들어 깨우며 ‘더 알고 싶어요!’를 보고 있다.

지은이를 알고 시의 숨은 의미를 알아야지만 시를 제대로 읽은 것 같은 느낌에 처음 동시를 읽으며 나는 버릇처럼 지은이가 궁금해져 차례를 보아가며 읽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지은이가 누군지는 알려고도 하지 않고 부지런히 눈을 움직여 그림을 보고 살랑살랑 꼬리 흔드는 ‘똥’자 들어간 친구에 이름을 부르며 웃었고, 서울의 땅속에 갇힌 두더지에게 안타까운 눈길을 주었다.

 

어느 시인이 학교 시험에 나온 자신의 시를 다룬 문제의 절반도 못 맞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쩜 우리가 시를 어려워하는 이유는 중요 내용에 줄 끗고, 낱말 풀이하고 지은이를 외워야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시를 느끼며 즐기는 게 아닌 외우고 공부해야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짧은 시에서 느낌이 아닌 대단한 의미를 찾으려 했기에 재미없게 돼버린 것 같다.

동시를 몇 번 읽던 아이가 묻는 다.

“엄마, 이 동시들 나 같은 어린이가 지은 거예요? 시들이 내 맘하고 똑 같아요” 한다.

아이에게 시인에 대해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욕심 같아서는 전병호님의 다른 시집을 들이밀고 싶었고, 윤동주님이 누구인지 말해주고 싶은 걸 꾹 참았다.

어쩜 시인들의 약력을 알려주고 재차 확인하는 순간 아이에게 시가 공부가 돼 버리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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