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주머니랑 그네랑 신나는 명절 이야기 (양장) - 명절 옛 물건으로 만나는 우리 문화 2
햇살과나무꾼 지음, 조은희 그림 / 해와나무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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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의 명절은 말 그대로 축제였다.

특히나 설은 한해를 시작하는 첫날로 온 나라가 들썩였었다.

자가용은 꿈도 못 꾸고 입석이어도 행복했던 기차, 콩나물시루 같았던 버스가 교통편의 대부분이던 시절이었지만 내 고향 내 부모형제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몇 시간의 고통은 즐거움으로 받아들였다.

고향에서는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식구를 기다리느라 목이 빠졌고 설 며칠 전부터 온 집안은 먹을거리가 넘쳤다.

먼저 술항아리는 아랫목에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고, 쑥떡에 찍어 먹을 엿 고고, 유과 만들고, 뽑아 온 가래떡은 꾸덕꾸덕 굳으면 아버지까지 합세해서 밤늦도록  썰곤 하셨다.

마지막으로 여자들은 식혜며 전을 부치고 힘 좋은 남자들은 찰떡이며 쑥떡을 떡메로 치는 걸로 음식 장만은 대충 마무리되었다.

김 모락모락 나는 떡에 고소한 콩고물 묻혀 내놓으면 다디단 엿에 꼭 찍어 입에 넣으면  달착지근하게 착 감기는 맛이 꿀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달큰하고 정감 있는 맛이었다.

하지만 요즘의 설은 음식도 단출해 전이나 부치고, 나물 몇 가지해서 그저 떡국이나 한 그릇 먹고 세배 드리는 걸로 끝이다.

며느리 된 입장으로 지금처럼 간소해진 명절이 좋기만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엔 소중한 것을 자꾸 놓쳐버린 느낌이 드는 걸 보면 그 시절 그 북적거림이야 말로 사람 사는 참맛이 아니었나 싶다.


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는 계절의 변화에 맞추어 쉬고 즐기는 명절이 잘 발달되어 왔다.

설날을 시작으로 입춘을 지나 새해에 처음으로 보름달이 뜨는 정월 대보름을 비롯해 사시사철 일이 힘들고 지칠 때마다 한숨 돌릴 수 있는 휴식의 한마당으로 명절을 즐겼으니 그 또한 조상들의 지혜와 슬기였다.

이제는 도시화라는 이름으로 더 이상 챙기지 않는 명절이야기는 어른에게는 추억을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지식을 전달해 준다.

<복주머니랑 그네랑 신나는 명절이야기>는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이 우리 고유의 명절이야기를 손때 묻은 옛 물건들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이야기마당과 정보마당, 배움마당,  익힘마당으로 이루어져 단순한 지식이 나열이 아닌 옛 정취를 함께 느낄 수 있다.

떡 욕심 많은 부부가 떡 하나 때문에 눈뜨고 도둑맞은 이야기로 이야기마당을 열어 놓는다.

다음으로 정보마당에서는 복주머니, 색동옷과 떡판과 떡메를 비롯해 야광귀를 혼란스럽게 했던 체에 이르기까지 지금은 낯 설기만한 물건들은 통해 설에 뜻과 전해 내려오는 놀이를 설명하고 있다.

봄을 알리는 입춘을 지나 지금은 쇠는 사람이 드문 정원대보름의 풍습도 어린 시절 기억을 새롭게 떠오르게 한다.

온 동네 장정들이 나서서 하던 줄다리기며 연날리기, 널뛰기도 재미있지만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건 달집태우기이다.

새벽녘에 할머니는 오곡밥에 묵은 나물로 따로 상을 봐서는 우물가, 장독대, 외양간에도 한상씩 차려 놓았고, 아버지는 마당 한가운데 커다란 달집을 만들어 불은 부치셨다.

거기에 생대를 넣어두어 불이 붙기 시작하면 온 집안이 떠나갈 듯 대 튀는 소리가 펑펑 귀청을 흔들었다.

그렇게 큰 소리가 나야 잡귀가 물러간다고 항상 보름쯤이면 아무리 추워도 아버지는 대나무를 준비하셨다.

거기에 무병무탈 하려면 나이만큼 불을 넘어야 한다는 말씀에 오빠나 언니는 불길이 잦아들면 풀쩍풀쩍 잘도 넘었지만 동생과 나는 아버지가 안아서 넘겨주시곤 하셨다.

이제는 나 혼자서도 자신 있게 넘을 수 있는 데 더 이상 달집도 없고 다리 밟기도 없는 보름을 보내곤 한다.

지금은 조상님께 성묘 하는 날로 알고 있는 한식은 조선시대에는 조정에서 새 불을 일으켜 백성들에게 나누어주는 날이었다고 한다.

강남 같던 제비가 돌아온다는 삼월삼짇날에는 무쇠 솥뚜껑에 화전을 부쳐 먹으며 아름다운 봄날을 만끽했고, 4월이면 초파일이 기다리고 있고, 오월이면 여름 농사 시작할 힘을 북돋아주는 단오가 기다리고 있었다.

찌는 듯 한 더위에 지칠 때쯤이면 펄펄 끓는 국물로 더위를 물리치던 삼복이 있었다.

견우와 직녀의 애절한 사랑이야기로 더 많이 기억되는 칠월칠석도 북두칠성에 제사를 지내고 성균관에서는 칠석맞이 특별과거를 치루기도 했다.

음력 8월이면 수확을 앞두고 큰 잔치를 벌이던 추석에는 송편을 만들어 먹고 달을 보며 풍년을 기원했다.

동지는 새해 채비를 하며 책력을 선물하고 악귀를 물리친다는 붉은 팥으로 팥죽을 끓여 먹었다.

배움마당에서는 “24절기란 무엇일까?” “명절에는 왜 떡을 해 먹었을까?”등 우리가 궁금해 할 만 한 명절에 궁금증을 짧은 질문과 답변으로 친절하게 해소해 준다.

마지막으로 익힘마당에서는 옛날물건과 요즘물건을 알기 쉽게 비교해 주기도 했다.


일가친척이 모여 명절을 쇠기보다는 여행을 가는 가족도 많아졌고, 자식들이 고향을 찾는 것보다 부모가 자식을 찾아가는 경우도 흔해졌다.

그래서인지 명절이면 고샅마다 몰려다니던 아이들의 모습도 찾아 볼 수 없고, 온 동네가 떠들썩하던 놀이판 소리도 들을 수 없다.

명절이 아니라도 마음만 먹으면 쉬 오고 갈수 있는 고향이고, 친척보다는 우리 식구끼리 지내는 게 익숙하다보니 아이들도 북적거리는 명절을 힘들어한다.

머지않아 우리의 다른 명절처럼 세배하고 떡국 먹는 설도, 송편 빚고 달 보며 소원 빌던 추석도 책에서나 볼 수 있는 명절로 전락해 버리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된다.

자주 만나지 못했던 가족을 만나 즐겁고 행복해 한다면 좀 힘들고 어려워도 일 년에 한두 번하는 고생이 결코 헛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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