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중 가장 놀라운 뉴스는 "北,핵무기 제조. 보유, 6자 회담 무기 중단"이였다. 평소 같으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넘겼을 뉴스였겠지만 듣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 졌다.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되었던 원자폭탄도 일본의 전쟁 종식을 위한 최선의 방법 이였고 우리의 독립을 위해서는 잘 했던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체르노빌에서 일어났던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건도 나와는 너무나 먼 상관없는 나라에서 일어난 일로만 넘겼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핵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에 부끄러워졌고 그 무서운 일이 나와는 상관없는 먼 과거에 이야기나 먼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준비되고 있는 불행이라는 생각에 견디기 힘든 공포가 몰려왔다. 휴가철이 막 시작될 무렵 롤란트와 그의 가족은 외할머니 댁인 쉐벤보른으로 떠나게 된다. 동서냉전시대이기는 하지만 설마 하는 생각에 평화로운 여행을 즐기는 가족들은 강렬한 섬광과 돌풍을 동반한 폭발을 만나게 된다. 어떤 상황인지 모른 체 외할머니 댁에 가보지만 그 곳 역시 폭발의 피해로 수많은 사상자와 화재를 목격하게 된다. 롤란트가족을 마중 나갔던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아 엄마는 폴다를 헤매다 돌아오지만 두 분에 생사는 알 수 없고 그 곳에 일어난 참상만을 보고 온다. 핵폭탄이 떨어진 다음날 피난민들이 몰려들지만 어느 곳에서도 도움에 손길을 받을 수 없고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게 된다. 부상자들과 원자병을 앓고 서서히 죽어 가는 사람들과 살아남은 사람들이 먹을 것을 차지하기 위해 최소한의 인간성마저 버리며 벌이는 일들이 공포로 다가온다. 약품과 의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치료가 아닌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병원의 전경과 부모를 잃고 거리를 헤매는 아이들의 모습은 지옥 바로 그 곳일 것이다. 핵폭발 3주 뒤 열세 번째 생일을 맞은 롤란트에게 엄마는 뽀뽀와 함께 "네가 살아 남기를 바란다." 라는 가슴 아픈 말을 해준다. 유디트 누나도 원자병으로 죽고 티푸스와 이질 등의 전염병이 창궐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고 동생 케르스틴 마저도 목숨을 잃게 된다. 그래도 새 생명은 엄마의 뱃속에 잉태되고 태어날 아기를 위해 보나메스로 떠나게 된다. 가는 곳마다 초토화된 도시들에 모습과 마주치게 되고 사람들의 냉대와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음을 넘나들게 된다. 되돌아오는 길에 엄마는 동생을 낳고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엄마의 죽음을 알아채기도 전에 태어난 동생이 방사능에 노출된 엄마 때문에 장애를 안고 태어나게 된 사실을 알게 되고 아빠는 아이도 엄마 곁으로 보내게 된다. 4년의 시간이 흐른 뒤 세상은 더 나아진 것도 없이 사람들은 피폐한 생활에 익숙해져 갈 뿐이다. 책을 읽고 있는 데 초등학교 2학년이 되는 아들이 무슨 이야기냐고 물었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해 줄 수 없었다. 내 아이에게 이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해서 였다. 안드레아스의 자살을 도울 수밖에 없었고 또 그 유모차를 가져올 수밖에 없는 상황을 어떤 말로 설명해 줄 수 있겠는가? 롤란트아빠에게 "살인자"라고 외치는 아이들에 모습을 보며 어른의 책임을 묻는 우리 아이에게 나는 책임 없다는 말을 어찌 할 수 있겠는가? 이야기가 종반으로 갈수록 좀 더 나은 삶들이 그려지길 바랬지만 핵을 그렇게 쉽게 사라지는 악마가 아니였다. 인간이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 만든 악마는 우리 땅 속에, 숨쉬는 공기 속에, 물 속에, 아이들의 피 속에, 전해지고 전해지는 무서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끝없이 경고하고 있었다. 히로시마의 원폭을 일본이 저지른 만행에 대한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핵이 우리의 미래를 삼켜 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어린이가 읽을 책이 아니라 어리석은 어른들이 먼저 읽고 생각해야 될 것 같다. 마지막으로 롤란트가 아빠대신에 맡게 된 학급에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었던 내용은 지금의 우리 어른들이 배워야할 가장 중요한 것일 것이다. 지금의 우리 아이들이 어른들의 잘 못으로 핵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로 자라는 어리석은 일은 없어야 겠다.
<너희들은 빼앗거나, 도둑질하거나, 죽이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너희들은 다시 서로 존중하는 법을 배우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는 도움을 줄줄 알아야 한다. 너희들은 서로 대화하는 법을 배워 당장 치고 박고 싸우기보다는, 어려움을 해결할 방법을 함께 어울려 찾아내야 한다. 너희들은 서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너희들은 서로 사랑해야 한다. 너희들의 세상은 평화로운 세상이 되어야 한다. 비록 그 세상이 오래 가지 않는 다고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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