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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아 파마 ㅣ 국시꼬랭이 동네 10
윤정주 그림, 이춘희 글, 임재해 감수 / 사파리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시골에서 태어나 속이 찰 때까지 시골에서 자라서 인지 아카시아하면 떠오르는 생각들이 참 많다.
10리나 되는 거리의 학교를 비 오는 날이 아니면 걸어서 다녔던 터라 신작로에서 좀 떨어진 숲에 봄이면 가득했던 아카시아 꽃이 먼저 떠오른다.
가시가 있어 조심하지 않으면 찔리기 일 수였지만 아카시아 꽃이 필 때는 가시쯤은 무시하고 나무에 매달렸다.
봄 햇살이 따뜻한 오후에 우유 빛깔의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달린 아카시아 꽃을 따서 쪽쪽거리며 꿀을 빨아 먹으며 걷다보면 10리라는 거리가 그리 멀지마는 않았다.
또 아카시아 줄기를 따서 친구와 누가 먼저 잎을 따게 되나 가위, 바위, 보를 하며 즐거워했고 혹 마음에 두고 있는 남자애가 있으면 아카시아 잎으로 점을 쳐 보며 마음 졸이기도 했다.
그리고 여자들만이 할 수 있었던 놀이가 있었는데 바로 천연 파마인 아카시아 파마다.
우리 엄마는 늘 농사일에 지쳐 있었고 층층이 집안 어른들을 모시고 살아야 했기에 그 흔한 립스틱 하나 없는 분이셨다.
그러니 다른 아이들이 엄마 화장품 몰래 바르며 놀 때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멋 내기는 아카시아 파마였다.
벌써 이십년이 훨씬 넘은 기억 속의 아카시아 파마를 영남이와 미희를 통해 기억해 내면서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고향 친구를 우연히 만난 기분이 들었다.
엄마 화장품을 몰래 바르고 젓가락으로 파마하다가 머리카락을 태우는 영남이와 그런 친구를 위해 아카시아 파마를 정성껏 해주는 미희, 그리고 껌 딱지처럼 영수까지 내가 잘 아는 아이들의 이야기 같다.
귀여운 영남이와 영남이네 방의 앉은뱅이책상과 커다란 달력, 가족사진, 그리고 신문지로 덮은 밥상까지 낯익은 풍경은 어린 시절 먹을 것은 풍족하지 않았어도 나가기만 하면 신나는 일 천지였던 내 고향이 생각나 한참을 들여 다 보며 웃음 짓게 된다.
이 책을 처음 읽을 때 우리 둘째의 나이가 7살이었다.
일곱 살이라 부끄러움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멋 내기에 관심이 많아서인지 아카시아 파마를 해 달라고 졸라 할머니 댁에 가는 길에 아카시아 줄기를 따서 해 본 적이 있다.
머리가 짧아 말기도 힘들었지만 아들이 생각했던 만큼 멋지게 안 나와서 실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엄마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이 하나 더 생겨 그것으로 만족해하며 즐거워했던 기억이 있다.
영남이를 통해 너무 작고 하찮게 보여 잊고 지냈던 내 고운 추억이 다시 생명을 얻게 되었고 아이와의 새로운 추억이 더해져 언제나 봐도 행복해지는 그림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