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도서는 열린책들에서 보내주셨습니다.>이번에 열린책들에서 동사 <하다>를 주제로 우리가 하는 다섯 가지 행동 ’걷다, 묻다, 보다, 듣다, 안다‘에 관해 25명의 작가가 참여해 <하다 시리즈>를 선보인다.그중 걷기에 좋은 계절인 가을에 맞춘 듯 다섯 명의 소설가의 걷기를 주제로 함께한 <걷다>가 시리즈의 첫 번째 책으로 출간되었다.김유담 작가의 <없는 셈 치고> 속 ’나’는 부모 이혼 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고아나 마찬가지인 처지가 되자 고모 집에서 친딸인 민아와 차별 없이 자란다.하지만 민아는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 때문에 가족과 연을 끊고 고모부마저 돌아가시자 암에 걸린 고모는 많은 것을 나에게 의지한다.성해나 작가의 <후보後步> 는 오랜 세월 철물점을 운영하고 있는 안드레아의 이야기로 의사는 퇴행성 관절염이 있는 그에게 관절에 무리가 덜 가는 뒤로 걷기를 권한다.퇴근 후 익숙한 거리를 뒤로 걸으며 젊은 시절부터 드나들던 재즈 클럽 상수시와 그곳에서 함께 하던 이들과의 추억을 되새긴다.이주혜 작가의 <유월이니까>는 함께 살던 이와 헤어져 직장을 옮긴 주인공이 동네 공원의 운동장 트랙을 돌며 만나는 사람들과의 이야기다.트랙을 걷는 주인공과 다른 트랙에서 일정한 속도로 혼자 달리는 여자와 화장실이 급하다며 자기 아내를 부탁하는 남자는 그의 걷는 일상에 어떤 변화를 줄지 궁금해하며 읽게 된다.가장 말랑한 이야기인 임선우 작가의 <유령 개 산책하기>는 늘 무슨 일인가를 벌이는 언니가 키우던 개 ’하지‘가 언니가 벌인 일을 해결하는 ’나‘ 앞에 유령 개가 되어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키운 지 3개월 만에 노견 하지가 갑자기 죽은 후 무료한 나날을 보내던 나에게 하지가 유령이 돼 나타나면서 나는 유령 개 산책을 시키게 되고 주위 사람들과 가까워지게 된다.임현 작가의 <느리게 흩어지기> 속 명길은 남편도 자식도 없이 혼자 사는 여자로 도통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한다.새로 등록한 글쓰기 강좌에서 친근하게 다가오는 성희와도 일정한 거리를 둔 명길은 글감을 찾기 위해 산책을 시작한다.달리는 것보다 느린 ‘걷다’라는 동사에서는 서두르지 않는 느긋함과 평화로움이 느껴진다.소설 속 인물들은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 걷고 무작정 걷고 누군가를 따라 걷기도 하지만 그들 모두 평화롭거나 느긋하지만은 않다.어떤 이는 어릴 적 자신의 보호자였던 이에 대한 의무로 함께 걷고 또 어떤 이는 걷기를 통해 옛 시절을 회상하기도 한다.‘다. 살려고. 기를 쓰고. 걷고. 뛰는 거예요. 죽으려고. 아니고. 살려고. 죽겠으니까. 살려고.“(p111이주혜, 「유월이니까」)모두 다른 목적으로 걷는 주인공들은 살기 위해서 걷고, 걷다 보니 살아지기도 하는 이들이다.유령이 돼 나타난 개와의 산책을 통해 다른 이들을 만나고 죽은 이의 무덤을 찍어 보내던 여자는 2년 만에 핀 치자꽃을 찍어 보내기도 한다.시간에 쫓기지 않고 고개를 들고 느긋한 걸음으로 걷다 보면 세상이 보이고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걷기는 시간의 여유보다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때만 가능한 행동이다. 라인업만으로 설레는 시리즈의 다음 행동의 이야기를 기다리며 매일 마주한 시끄러운 세상에서 그래도 걷다 보면 살아질 것이라는 주인공들을 보며 가을 산책을 재촉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