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로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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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시공사 서평이벤트에 당첨돼 제공받았습니다.>

영문학 강사인 시나 고스케는 동료인 오쓰코쓰 산시로와 신에쓰선의 어느 지역으로 휴가를 떠난다.
오쓰코쓰 산시로는 융통성이 없고 폭군의 기질이 다분한 사람이지만 계획을 세밀하게 세울 줄 아는 까닭에 그대로 따르면 대체로 만족하기에 함께 하게 된다.

처음 휴가지에서 옮겨간 K의 숙소에서 N 호반의 은퇴한 의사인 우도 씨의 집을 소개받게 된 둘은 조카딸과 단둘이 살고 있다는 호숫가의 우도 씨 집으로 출발한다.
그런데 N 호반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이상의 노파의 섬뜩한 예언을 듣게 된다.

“아, 피, 피, 냄새다. 나는 맡을 수 있어. 당신들 주변에 이제 곧 무서운 피의 비가 내릴 거야. N 호수가 피로 새빨갛게 물들 거야. 아, 무서워.” (p37)

무사히 우도 가에 도착한 둘은 반신불수로 수년 동안 누워 지내는 우도 씨와 아름다운 조카딸 유미를 대면하게 된다.
별 탈 없이 휴가를 보내던 집안에서 다른 이의 수상한 기척을 느끼게 된 후 한밤중에 무서울 정도로 아름다운 미소년 ‘신주로’를 목격하게 된다.

그 후 시나와 오쓰코쓰 산시로가 뱃놀이를 하던 중 근처의 화산이 분화하고 우도 씨가 신주로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되는 장면을 목도하게 된다.
유미 역시 신주로의 피습에 부상을 입게 되고 경찰의 대대적인 수사가 진행되지만 신주로의 행방은 묘연하고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신주로>는 죽음을 몰고 다니는 탐정 ’긴다이치 고스케’ 이전 작가가 창조한 탐정 ‘유리 린타로‘ 시리즈 중 국내에 초역된 작품이다.
긴다치 고스케가 “낡은 모직 기모노에 모직 하카마, 머리에는 쭈글쭈글한 형태의 찌부러진 벙거지 모자”를 쓰고 다니는 반면 유리 린타로는 “백발머리를 보면 일흔 살 노인 같지만 건강한 몸이나 까무잡잡한 얼굴“(p206)의 40대로 경시청 수사과장의 경력을 갖고 있다.

살인 사건의 범인을 이야기 시작부터 밝힌 소설이지만 살인의 이유를 알지 못하는 까닭에 살인자를 알고 있다고 해도 전혀 흥미를 반감시키지 않는다.
특히 신비한 외모를 가진 살인자의 탄생 과정은 나름 지식인에 의해 저질러진 괴기스러운 일이라 더욱 참혹하게 느껴지고 범인이 밝혀지고 난 후 드러나는 반전은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소설은 화자로 등장하는 시나 고스케가 살인사건의 목격자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진행방식이라 독자는 살인현장에 있는 듯해 읽다 보면 더 소름 끼치고 공포와 긴박감을 느끼게 된다.
DNA로 피해자를 특정할 수 없는 시절의 이야기이기에 목이 사라진 변사체의 신원을 증인의 말 몇 마디로 믿어버리는 시대지만 오래된 탐정 소설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재미와 일본특유의 분위기까지 느낄 수 있어 90년이 지난 소설이지만 나름의 재미가 있다.

거기다 단편 <공작 병풍>은 추리 소설은 아니지만 오랜 세월 전해진 병풍에 얽힌 이야기로 소설이 쓰일 당시 일본 사회의 모습과 전쟁 중 가족의 일상이 잘 드러나 고풍스러움과 더불어 현실감 있는 이야기로 읽힌다.
오랜만에 읽은 작가 특유의 퇴폐적이면서도 탐미적인 이야기는 다음 번역될 <나비 부인 살인 사건>을 더 기다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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