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없음 오늘의 젊은 작가 14
장은진 지음 / 민음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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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후로 1년째 하늘에서는 멈추지 않고 회색눈이 쏟아지자 도시는 회색빛으로 뒤덮인 ‘회색시’가 되고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회색인‘이라 부른다.
엄마와 아빠, 여동생은 보름 전 회색인이 되어 도시를 벗어났고 ’나‘는 가족을 따라가지 않고 도시에 남아 나이 든 개 반(半)과 함께 사는 그의 컨테이너 박스에서 생활하고 있다.
연락을 하겠다는 가족은 떠난 지 이주일이 지났지만 어떤 소식도 없고 도시는 점점 비어 가고 있다.

신발을 고치는 남자와 의사인 여자는 종말이 오는 세상에서 막 사랑을 시작했고 사람들이 떠나는 도시에 남아 늙은 개와 함께 그곳을 지키고 있다.
그의 영업장이자 거주지인 컨테이너 박스에는 아직 도시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이 사랑방을 드나들 듯 찾아오지만 어떤 희망도 없다.

회색시에는 세 부류에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생계를 버리고 행렬을 따라 회색시를 빠져나가려는 자들과 우리처럼 이곳에 남아 평소의 생활을 지키려는 사람들. 그리고 터전을 떠나는 것도 살림을 지키는 것도 여의치 않아 땅을 파고 지하 깊숙한 곳에 숨어든 자들. 그들은 대부분 도시의 약탈자가 되었다.(p47~48)

잿빛 눈이 내리는 도시는 겨울의 눈 내리는 날처럼 고요하지 않다.
비명이 난무하고 폭설은 창문을 때리고 땅은 진동하고 회색인의 기나긴 행렬 소리가 귀를 때리고 눈덩이가 굴러 떨어지는 소리, 사람을 바닥에 끌고 가는 소리, 그리고 스스로 추락하는 사람들의 소리까지 공포의 연속이다.

읽는 내내 급격한 기후 변화 후의 인간의 삶에 대해 다룬 영화의 여러 장면이 오버랩되고 앞이 안 보이는 어둠에 갇힌 것 같은 절망감이 덮쳐 진이 빠지는 느낌이다.
소설은 “그게 온다고 한다”로 시작해 지구 종말을 향한 카운트 다운을 세듯 번호를 매기며 이어져 간다.

‘나’의 곁에는 사랑하는 남자가 있고 컨테이너 박스는 외부와는 단절된 안전한 곳으로 느껴지지만 희망 따위는 찾을 수 없다.
망해가는 세상에 사랑이 존재하긴 하나 싶은 걸 보니 나이가 들긴 들었나 보다 싶다가도 온다는 그게 뭔지 궁금하고 언제 올까 궁금하고 진짜 오기나 할까 궁금해 단숨에 읽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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