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정의 상자
정소연 지음 / 래빗홀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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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래빗홀클럽 활동 중 래빗홀출판사에서 제공받았습니다.>

<미정의 상자>는 우주여행이 가능한 시대의 이야기인 “카두케우스 이야기”와 전염병이 창궐한 시대가 배경인 ”무너진 세상에서 우리는“으로 나눠진 소설집이다.
먼저 “카두케우스“는 항성계와 항성계 사이를 초광속 비행을 할 수 있는 기술을 독점하고 있는 회사로 인간들은 회사가 개척한 항성에 정착해 살아간다.

우주비행사들은 비상점을 통해 먼 항성계로 “도약”이 가능하지만 시간이 표준시와는 다르게 흐른다.
회사가 개척한 각각의 행성은 그 행성만의 주요 사업을 진행하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회사는 그 행성에서 철수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우주비행사가 되기 위해서는 카두케우스 비행학교에 입학해 여러 차례의 시험을 치러야 하는 까닭에
먼 우주에 있는 행성의 사람보다는 수도인 마키옌더에 거주하는 학생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소설집의 첫 번째 이야기 <이사>는 마키옌더 15섹터에 살고 있는 지후는 동생 지혜의 병을 고치기 위해 유명한 의료 행성인 가두알로 이사를 가야만 한다.
문제는 우주 비행사가 꿈인 지후에게 이사는 꿈과 멀어질 수밖에 없는 선택이기에 동생을 위해 이주를 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망설인다.

올 겨울은 유난히 춥고 길게 느껴져서인지 날씨 이야기가 중심인 <가을바람>은 사계절이 있고 그 계절만의 느낌이 얼마나 소중한 지 느끼게 해 준다.
<재회>에서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시험을 계속 치러야 할지 SOS를 보내는 우주 여객선을 구해야 할지 갈등하는 수미의 모습을 보며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함께 고민하게 된다.

두 번째 챕터인 ”무너진 세상에서 우리는“의 첫 번째 이야기 <처음이 아니기를>를 읽으며 코로나 19 팬더믹 시기를 떠오르게 한다.
동성을 좋아하는 현아의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는 친구 남희가 중국 어학연수 중 전염병에 감염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현아는 망설임 없이 중국으로 떠난다.

표제작인 <미정의 상자>는 우리가 이미 경험했던 팬더믹 시대를 다룬 이야기로 연인인 유경이 떠난 뒤 미정의 손에 들어온 “두 주먹보다 조금 큰 아주 깨끗한 정육면체” 상자가 일으키는 거슬러가는 시간의 경험에 대한 이야기다.
이 상자는 마지막 이야기인 “현숙, 지은, 두부”에서도 등장한다.

카두케우스가 개척한 행성에서 살고 있고 전염병으로 고립된 생활을 하는 등장인물들은 전혀 다른 시대와 장소가 배경인 이야기지만 현실의 우리들이 겪고 있는 여러 가지 사회문제를 떠오르게 한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도 어디에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주어지는 기회가 다르고 나의 이익과 타인의 이익 사이에서 갈등해야 한다.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네로보 항성계 주민들의 이주 신청이 자꾸만 겹쳐 보인다.

끝을 알 수 없는 우주와 언제 종식될지 모르는 전염병이 창궐하는 시대의 암울한 소설이지만 그 끝에서는 희망과 따듯한 마음 한 가닥을 건져 올릴 수 있었다.
나를 이해해 준 친구를 위해 전염병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고 친구를 만나러 가기도 하고 먼바다를 헤매는 배 위의 친구를 위해 메시지를 보내고 친구의 엄마와 마음을 나누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시간을 되돌리기도 한다.

막막하기만 한 우주에서도 전염병이 온 세상을 덮어도 사람들은 살아가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죽음에 슬퍼한다.
제자의 영민함을 알아보는 스승이 있고 사랑하는 이를 위해 위험을 감수하기도 하며 그를 위해 자신을 숨긴 채 몇 번의 시간을 되돌리기도 한다.
세상이 어떤 모습이든 우리는 살아갈 것이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살아가는 힘이 될 것이라는 자명한 이치를 다시 깨달으며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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