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넉 점 반>은 ’나리 나리 개나리’ ‘낮에 나온 반달’ ‘퐁당퐁당’ ‘ 고향 땅’ 등으로 유명한 윤석중 선생님의 시에 ‘아씨방 일곱 동무’를 쓰고 그린 이영경 선생님이 그림을 그린 우리시그림책입니다.이번에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넉 점 반’이 20주년 기념 개정판으로 새옷을 입고 출간되었습니다.책 사이즈가 살짝 커지고 표지 그림이 무심하게 여린호박을 따는 아기 모습에서 개미를 구경하는 아기가 그려진 그림으로 바뀌었네요.아기가 엄마 심부름으로 구복 상회 영감님께 시간을 물어보러 갑니다.“영감님 영감님 엄마가 시방몇 시냐구요.”“넉 점 반이다.”아기는 혹시 시간을 잊어버릴까 “넉 점 반 넉 점 반” 소리내 말해 봅니다.물 먹는 닭도 한참 서서 구경하고 개미 거둥도 한참 앉아 구경하고 잠자리 따라 한참 돌아다니다 분꽃 따 물고 니나니 나니나 노래 부르다 해가 꼴딱 져 돌아와 자랑스럽게 말합니다.“엄마 시방 넉 점 반이래.”그림책이 처음 출간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좋은 그림책의 생명력은 언제나 길고 강인합니다.20년 전 이 그림책을 처음 봤을 때 어린 시절 고향을 떠올리게 했다면 깔끔하게 새단장한 개정판은 세월이 지난 탓인지 이제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고향의 골목길을 사무치게 그립게 합니다.방안에서도 손님이 오는 지 볼 수 있는 유리를 끼운 창호지 바른 문과 벽에 걸린 사진들, 그리고 꽃이 한 가득 그려진 둥근 양은 밥상에 꽃무늬 벽지까지 어느새 어린 시절 할머니방으로 데려다줍니다.마을에 하나뿐인 가게는 없는 것 없이 모든 것을 갖춘 만물상입니다.주전부리는 물론 파란색 비닐 우산, 원기소 광고, 미원 등 가게 안에 물건들 모두 눈에 익습니다.아기를 따라 마을을 걸어봅니다.물 먹는 닭도 보고 아기와 함께 앉아 개미도 구경합니다.잠자리를 따라가다보니 논길을 지나 수수도 도라지꽃도 분꽃도 흐드러지게 핀 곳까지 따라왔습니다.이리 해찰하고 온 마을을 돌아다녔으니 집에 오니 해가 꼴딱 져 버렸습니다.아기는 늦게 왔다고 혼내지 못할만큼 귀여운 모습입니다.넉 점 반에 나가 다 저녁에 돌아와도 아이는 심부름을 끝낸 자신이 자랑스러운 듯합니다.윤석중 선생님의 시만 읽어도 좋지만 이영경 선생님의 그림과 만나면서 아기가 보는 풍경을 독자도 함께 볼 수 있게 됩니다.20년 뒤에도 여전히 사랑받은 것 같은 그림책은 잊고 있던 그리운 시절로 데려다주네요.시계따위 없어도 별 상관없던 시절, 언니가 있고 오빠가 있고 나의 젊은 엄마가 존재했던 그곳이 사무치게 그리워집니다.<본 도서는 창비그림책에서 진행한 20주년 개정판 서평단에 당첨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