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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최고은 옮김 / 북다 / 2024년 7월
평점 :
품절
열 권으로 완결될 줄 알았던 가가 형사 시리즈가 <희망의 끈>으로 다시 이어졌지만 ‘희망의 끈’에서는 가가 형사의 사촌 동생인 마쓰미야 형사가 주인공이라 새로운 시리즈가 시작되는 가 싶었다.
가가 형사 시리즈는 작가의 초창기인 1986년 <졸업>을 시작으로 장장 38년째 이어지고 있는 데 작가의 101번 째 작품으로 만날 수 있어 더 의미가 새롭다.
호화 별장지로 여름 휴가를 온 다섯 가족은 연례 행사처럼 진행되는 바베큐 파티가 끝나고 각자의 별장으로 돌아간 늦은 밤 파티 참석자 중 다섯 명이 살해되고 한 명이 다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전통있는 호텔의 고급 레스토랑에 젊은 남자가 고급 음식과 와인을 시켜 먹은 후 자신이 별장 살인 사건의 범인이라고 말하며 경찰을 불러줄 것을 부탁한다.
스물 여덟살의 범인 히카와 다이시는 부유한 가정의 아들이지만 가족에게도 외면 받는 히키코모리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단지 사형을 받고 싶어 살인을 저질렀다고 말할뿐 살인의 구체적인 방법이나 이유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범인이 사형을 당할 경우 사건의 진실이 영원히 미궁에 빠질 수도 있다는 사실에 유족들은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범인이 머물렀던 호텔에서 ‘검증회’를 열기로 한다.
그리고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여도 도움될 사람을 데려와도 된다는 조건의 검증회에 가가 형사는 남편을 잃은 하루나와 동행하게 된다.
부모를 모두 잃은 도모카는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기숙사 사감과 함께 참석하고 부인을 잃은 다카쓰카 회장은 지역경찰로 사건을 직접 조사한 사카키 형사과장과 함께 온다.
가가 형사의 사회로 시작된 검증회는 파티에 참석한 가족 모두에게 그날의 기억을 되짚어 가며 사건을 시간 순으로 정리해 나가기 시작한다.
늦은 시간까지 진행된 검증회는 다음 날 사건 현장에 나가 범인의 동선을 그대로 따라가며 진행되면서 빈틈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도모카와 함께 온 기숙사 사감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참석자들은 큰 혼란에 빠진다.
범인을 찾는 수사가 아닌 사형을 당하기 위해 살인을 저질렀다는 말만 남기고 묵비권을 행사하는 범인이 진짜 살인을 저지른 이유를 알기 위해 유가족이 모여 함께 추리해 나간다는 형식의 이야기다.
그러니 범인의 뒤를 쫓기 위해 급박하게 행동할 필요도 없고 절대절명의 위기를 맞지도 않는다.
그래서인지 첫째 날의 검증회는 다소 지루하게 흐르는 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사건의 진실과 마주하는 순간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완벽해 보이는 가족의 이면에는 비밀이 있고 더없이 친절한 이웃은 웃는 낯으로 대하지만 뒤돌아서서는 서로를 깍아내리고 자기들과 경제적 형편이 다른이를 보며 수근거리는 이중성을 갖고 있다.
검증회가 진행될 수록 부유하고 행복하게만 보이던 가족들의 비밀이 하나하나 드러나기 시작하고 모든 사실이 밝혀져 안도하는 순간 허를 찌르는 반전은 아침 드라마급이라 더 놀랍다.
특별할 것 없는 질문들과 참석자들의 사소한 태도에서 진실을 밝혀내는 가가 형사의 실력을 보며 앞으로 가가 형사 시리즈는 오래도록 이어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